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과수원갤러리 Gwasu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106-9 (삼청동 56번지) 3층 Tel. +82.(0)2.733.1069 @gwasuwon
1. 타인 ● 리투아니아 출신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후 자신도 유태인가스실로 향할 운명에 처했지만, 프랑스군으로 참전 중 전쟁포로가 되었다는 이유로 대량학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곧 다가 올 죽음의 공포에 묵도해야했던 그의 비극적 경험은 그의 생존 이후 자신의 철학적 활동에 있어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나는 "타자의 얼굴"로 대표되는 그의 사상을 접하며, "타인의 헐벗은 얼굴의 현현이 곧 자신의 윤리적 존재 가치를 완성할 수 있다"고 하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그의 논리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겠다. '나'라는 주체는 타인의 벌거벗은 얼굴이 호소하는 고통과 도움의 요청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고의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초월적/윤리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자가 민낯으로 요청하는 도움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내어주고 반응하는 적극적 행위가 곧 내 존재의 완성을 이끌어낸다니, 이 얼마나 불편하고도 당연하여 반박을 무색하게 하는 논리인가. 더불어, 고통에 일그러진 타인의 얼굴은 단순히 '나'라는 주체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아닌, 내가 윤리적 주체로서 바로 설 수 있도록 명령하는, '주인 같은 객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에 크게 반향하게된 나는 타인의 얼굴은 물론이고, 내 자신의 벌거벗은 얼굴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 나 ● 나는 매일 내 안에서 부동하며 조용히 대립하는 서로 다른 유형의 규칙과 오만, 그리고 작은 욕망이 빚어내는 갈등과 그 결과로 뒤따르는 회한으로 인해 조금씩 쇠하거나 회복하는 자신을 무기력하게 관망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 속 타자와의 관계가 내게 전하는 고단함으로 착인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반복적인 루틴은 매일 내 스스로가 습관적으로 도발하는 자기 비판적 내전(內戰)임을 고백해야겠다. 전쟁에서는 사상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부상은 치료를 필요로 한다. 하루를 각박하게 살아내야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나의 자상(刺傷)외에는 어떠한 종류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일까. 애초에 자기애로부터 비롯된 나의 부상은 앞서 언급한 "타자의 얼굴"에 대한 몰이해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할때, 나의 무지와 애타심의 부재가 결국 또 다른 고통이 되어 내게 되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3. 다름의 공존 ●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내 개인적 혼돈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나 다른 형상의 사물, 또는 상이한 현상들이 공존하는, 기이하면서도 중립적인 영역의 아름다운 지형을 본다. 언뜻 서로 타협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 오랫동안 평화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국경없는 상상 속의 영토, 그 안에서 만개한 붉고 푸른 자연과 잔혹하게 칼을 휘두르는 인간욕망의 완력이 병립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절대적인 옳음과 그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 선과 악의 관점이 교차하는 곳, 이곳에서 모든 것이 양립할 수 있고 주객이 바뀌는 공정한 순환은 유지된다. 나는 그 모순들의 공존이 엮어내는 기구함과 눈부심을 지도위에 표기하고 응시하고자 할 뿐이다. 이것을 나는 전쟁이라고 부르고 시각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나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 이경훈
Vol.20200925c | 이경훈展 / LEEKYOUNGHOON / 李庚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