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디지털을 모르고 디지털은 우리를 모른다

시리얼타임즈 C.RealTimes(강민준, 김민경, 송천주)展   2020_0918 ▶ 2020_1008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수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9:00pm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예술공간 봄 ART SPACE BOM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76-1 Tel. +82.(0)31.246.4519 www.artspacebom.com

나아가면 흉하지만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 동양사상의 근본이 되는 주역(周易)에는 64개 괘가 있다. 그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괘는 화수미제(火水未濟)다. 화수미제에는 강변 앞에 선 새끼 여우가 등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린 여우는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과감히 강을 건너지만 결국 반대편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강을 건너지 못한 상태로 64괘 주역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완성되지 못했음에도 화수미제는 나아감으로써 형통하다고 풀이한다. 과연,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끝나는데 왜 형통한 것일까? 삶은 성공 혹은 미완성이라는 한 상태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주와 지구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때문에 영원한 행복이 지속되는 이데아에 도달하려고 하는 건 자연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 자연에서는 완성 혹은 미완성이 없다. 매 순간 들어오고 머물다가 나가는 변화가 있을 뿐이다. ● 『우리는 디지털을 모르고 디지털은 우리를 모른다』 전시 제목은 이제니 시인의 시,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에서 차용했다. 모른다는 건 무지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정의내리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의하지 않음은 고정된 의미에 붙들리거나 단일한 목소리로 포장되는 것을 경계하며, 매 순간, 의미를 유보하고, 오로지 의미의 유보 과정으로만 세계에 주관적인 감정을 내려놓으려는 시도이다. 어린 여우가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은 채 주역이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리얼타임즈는 디지털에 관한 정의를 유보함으로써 가상 공간 안에서 언제나 다르게 형성되는 사건과 부유하는 이미지와 발화되는 언어를 열린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본다.

강민준_Revealation 묵시_UWB 3D Positioning, MPU, headphone_가변설치_2020
강민준_Revealation 묵시_UWB 3D Positioning, MPU, headphone_가변설치_2020

시리얼타임즈 강민준은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공감각을 통한 감각 확장을 이야기한다. 공감각은 어떤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감각이 동시에 다른 영역 감각을 일으키는 일이다. 학창 시절 배운 '푸른 종소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시각을 차단하고 청각에 의존해 공간을 인지해야 하는 강민준의 작업은 마치 박쥐가 된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공감각이라는 확장된 감각을 전자 신호로 일깨워 인간을 넘어 타 생물체와도 교감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전자 신호는 들뢰즈의 '~되기'를 실현 가능케 함으로써 종적 횡단을 형성하는 교량이 된다. 작품 속 디지털은 무한한 의미의 감각 확장과 잠재적 대상으로 거듭난다.

김민경_거꾸로 매달린 사람_2채널 비디오_00:06:07_2020
김민경_12번째_혼합매체_25×36×50cm_2020
김민경_차투랑가_혼합매체_190cm(반원)_2020

김민경은 상하좌우를 뒤집은 무의식 포터(porter)를 만들어 의식적 움직임과 무의식적 움직임을 탐구한다. 여기서 무의식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이나 꿈속 상태 아닌, 자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의식적 움직임은 인간이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동화 처리해 익숙한 행동을 하는 습관적 움직임을 말한다. 그의 작품은 기계를 쓰고 눈앞 화면을 보며 움직이는 HMD(head mounted display)를 통해 관객을 '거꾸로 뒤집힌 세계'로 불러들인다. 마치 VR과 같은 화면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작업은 인식 주체로서의 몸 즉, 현존하며 세상과 교감하는 '몸'을 다시 인지하게끔 한다.

송천주_My best friends_프레임, 사진_16×21cm_2020
송천주_Oh my world_단채널 비디오_00:02:13_2020
송천주_Bug zapper_모니터, 디빅스, 와이어, 곤충 모형_가변설치_2020
송천주_The weight of Internet(2020)_저울, 컵, 물_23×30×26cm_2020
송천주_Blue screen_단채널 비디오_00:09:20_2020

송천주는 코로나가 발발하기 이전부터 개인적인 병으로 수 개월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때 모니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이 느꼈던 바를 이미지와 설치 작업을 통해 전달한다. 근대 이후 수학 언어를 활용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컴퓨터 속 '가상 세계'는 실험실과 같은 무균과 무중력 상태를 기본값으로 취한다. 실제 같지만 3D 모델링을 통해 창작한 송천주의 작업은 모든 박테리아와 세균이 멸균된 진공 상태와 같다. 그의 작업은 현실 도피 수단으로써 가상이 아닌, 가상 세계에서 만나는 게 기본이고 신체적 교류는 선택 사항이 되는 코로나 시대를 암시하기도 한다. 현실에서-』가상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가상에서-』현실을 생각해보도록 그 전제를 뒤엎는 것이다.

시리얼타임즈 C.RealTimes(강민준, 김민경, 송천주)_우리는 디지털을 모르고 디지털은 우리를 모른다展 _예술공간 봄_2020
시리얼타임즈 C.RealTimes(강민준, 김민경, 송천주)_우리는 디지털을 모르고 디지털은 우리를 모른다展 _예술공간 봄_2020

시리얼타임즈의 전시에서 디지털은 '도구'를 넘어 감각 횡단이 이루어지는 다리, 의식과 무의식을 터널처럼 오갈 수 있는 포터,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 등 무한한 의미로 거듭난다. 어린 여우가 앞으로 나아가면 흉하지만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선인의 지혜를 해석해본다. 디지털도 마찬가지로 정의 내리거나 도구로 단정하지 않는 불안을 안고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몰락의 가능성과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드는 가능성이 열리는 게 아닐까. 니체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시리얼타임즈는 이번 전시를 통해 디지털을 단지 매체나 기계로 단정하지 않고 그 의미를 확장함으로써 본질적인 감각과 의식 그리고 관계를 되돌아본다. ■ 반시안

Vol.20200919c | 우리는 디지털을 모르고 디지털은 우리를 모른다-시리얼타임즈 C.RealTimes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