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 북구예술창작소_소금나루 작은미술관 후원 / 국민체육진흥공단
관람시간 / 온라인 전시
소금나루 작은미술관 울산 북구 중리11길 2 북구예술창작소 Tel. +82.(0)52.289.8169 cafe.naver.com/bukguart
하나의 색으로 수렴되지 않는 ● 이신영은 특별한 대상들을 담아내지 않는다. 유명하거나 사연을 가진 사람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그의 영상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는 울산에 정착하여 주변 지역을 리서치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커뮤니티에 개입하고 그들의 모습을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 말 그대로 재현(represent)하는 작업은 작가의 선별된 시선으로 타자의 모습을 대표해버리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예술가는 이런 타자화나 재현의 역학에서 오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신영이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며 수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하면서도, 그 목소리들을 엮어 하나의 네러티브로 수렴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단지, 목소리들을 풍경과 뒤섞으며 조용히 형상을 빚어낸다.
최근작 「The Face」의 오프닝 쇼트에는 울산 북구 염포동을 항공뷰로 담아내는 장면이 길게 이어진다. 하늘에서 마을의 이미지를 포착한 그 롱테이크 쇼트는 흑백으로 시작하지만, 아주 천천히 색채를 되찾아간다. 시간을 따라 부지불식간에 점점 되돌아오는 색깔들. 그런 연출은 물리적인 공간에 시간이 쌓이며 장소나 지역의 문제로 번져나가는 것을 은유하는 형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히 눈에 띄는 색채가 있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의외로 화면을 주로 채우는 것은 초록색이다. 그것도 자연의 초록색이 아니라, 전형적이고 획일적인 한국 특유의 도시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초록색. 네모난 건물들은 하나같이 초록색의 옥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점점 채도를 올려가며 보게 되는 그 장면에서 드러나는 것은 모두 같은 색의 옥상들이 아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획일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녹색의 옥상들이 모두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얼룩덜룩 벗겨지거나, 빛이 바래거나, 혹은 새것같이 반짝이는 제각각의 녹색들. 어찌 그것을 획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하나의 녹색으로 수렴되지 않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다른 색으로 번져나가는, 색의 이행을 보여주는 무빙 이미지가 그곳에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그 오프닝 쇼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똑같아 보이거나 아주 평범한 것들에서 다른 것을 포착하는 힘은 이신영의 작업에 핵심에 있다. 오래된 동네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내면서도, 그는 전형을 만들지 않는다. 이신영이 담아내는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긍지가 흘러넘친다. 특정한 사건에 대한 비극적인 기억이나, 개인과 역사가 만나는 국면을 열어내는 것도 아니다. 단편적인 기억과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존이 이신영이 담아내는 지역의 이미지에 근간이 된다. 지역 리서치 연작들은 개별적인 영상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것을 지속해나갔을 때 그것이 하나의 아카이브, 혹은 아틀라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신영 자신만이 다시 그릴 수 있는 얼굴들과 목소리들의 지도 체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작은 마을에서 포착되는 미미한 빛들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내는 별자리(constellation)를 구성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방법론으로 지역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면, 지역적 인식의 체계를 단순히 '공장지대'나 '고래마을'과 같은 식으로 수렴시키는 재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일상적인 풍경으로 그려지는 지도를 상상한다.
비교적 특정한 문제를 다루는 「잿빛 사이 푸른빛」에서도 색채를 다루는 방식은 눈에 띈다. 작가는 여기에서도 흑백 화면과 컬러 화면의 교차를 사용하는데, 물 바깥에서 해양쓰레기를 청소하는 잠수부들의 모습이 한참 흑백으로 이어지다가 그들이 탁한 바닷물에 뛰어드는 순간, 화면에 색채가 돌아온다. 문제는 바닷속이 흑백의 세계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탁해서 색채가 돌아온 것이 아주 미세하게만 감각된다는 점에 있다. 그런 미묘한 색채의 차이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해양 생태계라는 구체적인 사안을 다룰 때도 「잿빛 사이 푸른빛」라는 제목처럼, 그 '사이'의 틈새에서 이미지들이 슬쩍 솟아오르게 한다. 나아가 이신영의 작업 자체가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필름, 무빙 이미지, 나아가 「Colored People」 같은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사용하는 작업들까지. 다채로운 색깔로 번져나간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제 그의 작업은 다큐멘터리적 작업을 넘어, 픽션으로까지 나아 가려 한다.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여러 빛깔들 사이. 그 길 위에 서 있는. 이신영이 만들어나갈 이미지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권태현
Vol.20200910i | 이신영展 / LEESHINYOUNG / 李信榮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