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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1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생성을 향한 해체 - 김완 『Touch』展 - 1. 시각에서 촉각으로 ● '보이는 고로 믿는' 시각 중심의 근대 사회는 '스펙터클'하다. 감각도, 인식도, 신념도 모두 이미지화되어 제시된다. 표준화되고 과장되어 제시되는 이미지로 인해 실재와 실체는 소외당한다. 실재와 환영과의 경계는 무너진다. 현대인들은 제시된 시각적 이미지에 압도당한다. 현대인들의 판단력은 마비되고, 영혼은 상실된다. 현대인은 영혼을 잃었지만,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작가 김완의 '터치'작업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터치'에서 김완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경계'를, 사회역사적 차원에서는 '신화적 이미지'를 작업 대상으로 한다. 그는 삶과 죽음, 실재와 환상의 경계와 그 너머를 고찰하고, 신화적 대상과 유물들의 실재를 탐색한다. 그는 재현하고자 하는 경계 및 대상과 스스로를 일치시키지 않고,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 이미 기존 담론에 의해 주류화된 문화는 표준화되고, 표준화된 문화는 부동성, 지속성, 동일성, 연속성 등을 강요한다. 김완의 작가 정신은 기존 담론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고, 재현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의심을 품는다. '방법적 회의'로서의 '의심'은 '터치'로 이어진다. 김완은 '터치'를 통해 환상과 실재의 경계, 신화와 실제의 경계선을 해체하고, 그 너머를 사유한다. 김완에게 '터치'는 시각 예술이지만, 시각을 초월하여 '촉각'을 통해 형상이 드러내고자 하는 존재의 실재와 그 실재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2. 경계의 미학 ● 김완의 골판지 작업은 그 자체로 경계의 선상에 있다. 제품의 훼손방지와 운송을 위해 존재하는 골판지는 그 필요를 다하면 버려지는 소모품이다. 신(神)은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체를 창조한다. 작가 김완은 버려진 골판지에 호흡과 기, 자신의 상처와 혈흔까지 불어 넣는 '터치'를 통해 예술품을 창조한다. 시차를 두고 골판지가 중첩될 때, 존재의 시공간 역시 중첩된다. 골판지의 '선'이 존재가 살아가는 세상과 현실이라면, '색'은 작가의 영혼이다. '색'은 '선'과 융합되어 폭력적인 현실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인 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래서 김완 작가의 작품은 현실성과 초월성의 경계에 위치한다.● 김완의 경계는 평면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의 경계는 입체적이며 복합적이다. 삶/죽음, 감성/지성, 관념/경험, 현실/이상, 희망/절망 등 대립 관계에 있는 것들의 경계이다. 김완의 작품은 경계와 그 너머를 사유한다. 그가 경계를 사유한다는 것은 대립된 양극단을 하나의 시야에 두고 포괄하여 넘나드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죽음, 현실, 좌절, 절망 등 회피하고 부정하고 싶은 생의 모습에 김완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을 입힌다. 죽음이든 현실이든 고통이든 김완은 그 또한 세상과 인간 삶의 모습이기에 그 모든 것을 끝까지 사랑한다. 그래서 주어진 죽음과 현실을 바깥에서 부정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예술인 작품속에 죽음과 현실을 품는다. 죽음과 현실의 내부에서 죽음과 현실을 사랑하고 초극하기 위해 자신의 시점을 경계선에 위치시킨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대립된 것들의 경계에 서서, 그 모두를 전망하며 대립된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 남루하고 버려지는 현실의 골판지가 현실을 초월하는 예술 작품으로 변모되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양립할 수 없는, 대립되는 양극단인 삶/죽음, 이상/현실, 희망/절망 등을 하나의 작품 안에 품음으로써 경계를 해체한다. 그래서 김완의 작품은 역설의 미학인 동시에 경계의 미학이다. ● 김완의 작품에는 대립되는 극단적인 경계들이 아름답게 공존한다. 감성이 넘치지만 지적이며, 일상적이지만 심오하다. 죽음이 있는 현실속에서 이상을 추구하며, 절망속에서 희망을 전망한다. 한쪽의 선택을 강요하는 경계선에 서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경계선은 세상과 생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열정이 집결되어 있기에 오히려 눈부시게 아름답다. 양면의 대립각이 극단에 치달을수록, 자기 앞의 생과 현실이 가혹할수록, 다양한 색과 빛을 발하며 깊이 있는 지성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감성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 세상을 사랑할 것을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명한다. 고난과 고통에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고통의 내부에서 고통을 초극하여, 유한적이고 우연히 주어진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하여야 함을 주장한다. 그래서 김완의 작품은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모서리를 통한 김완의 '터치'는 생에 대한 반란이 아닌 혁명으로 이끄는 하나의 균열이다.
3. 신화와 탈신화 ● 삶의 고뇌와 고해를 초극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종교의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 삶의 고통을 넘어선 희망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음악의 성인' 베토벤, 인간 내면의 절망과 위안에 대한 갈망을 캔버스에 담은 고흐, 부와 평안을 버리고 남미의 자주적 독립을 위해 투쟁의 삶을 살아간 체 게바라, 헐리웃 영화의 심벌인 먼로, 탁월한 지성의 전형인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신이 떠나버린 세상에서 '초인'이 되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것을 주장한 철학자 니체, 미의 화신인 비너스, 르네상스의 시발점이자 대표작이 된 모나리자, 미술계와 무관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 종교와 예술, 학문과 대중 매체에서 신화화된 존재들이다. '신화'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신화는 사회에 '안정'과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활용되고,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된다. 김완 작가의 '해체' 작업은 '현재의 필요에 의한 해석', 그것도 유일하고 지배적인 해석에 의문에서 시작된다. 그는 지배적으로 주어진 '신화'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주어진 세계와 역사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세계에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또한 해체함으로써 대상의 탈신화화를 시도한다. ● 데리다는 해체의 '전략적 이중성'을 강조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압바우 Abbau', 즉 형이상학적 역사의 파괴와 해체를 위해서는 해체와 동시에 건설을 뜻하는 것이다. 김완 작가의 해체 역시 '해체'하는 동시에 '건설'한다. 우선 재현 대상의 윤곽선을 흐리고, 입체적 효과를 통해 형상을 해체한다. 작가에 의해 새로이 구현된 형상은 가까이에서 보면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거리를 두고 이동을 하다가 특정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의 형상이 보이게 된다. 즉 초기작품에 의해 형상화된 작품은 '현존'도 '부재'도 아닌 어떤 것으로, 그 흐릿한 형상과 함께 기존 의미는 해체되고, 관람자에 의해 새로이 재구성되는 형상과 함께 의미가 생성된다. 해체를 통해서 지배적인 해석이 사라짐으로 대상들은 탈신화화되고, 관람자가 생성해 내는 의미에 의해 다양한 해석과 형상이 공존한다. 그리고 관람자 자신이 재구성한 예수 그리스도, 베토벤, 고흐 등등의 이미지를 새로이 품게 된다. 이러한 관람 과정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기존 담론이 구축한 지배적인 해석에 존재하는 균열을 감지하게 된다. 주어진 지배적 해석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자기만의 해석이 과거에 이미 주어진 지배적 해석만큼의 지위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견해를 소중히 여기며, 나의 해석처럼 시공을 초월한 타인의 해석을 존중하게 된다. 김완 작가의 '터치'가 지향하는 '해체'는 수단으로서의 '해체'이다. '해체'가 지향하는 목적은 파괴와 제거가 아니라 자유와 생성이다. 재현 대상과 해석의 주체들을 음험한 목적을 지닌 지배적이고 유일한 목소리로부터 해방시킨다. 재현대상은 다성적인 목소리에 의해 다양한 관점에 의해 해석됨으로써 자유를 획득한다.
4. 타인과 세계를 향한 해체와 터치 ● 근대와 자본주의 사회는 시각을 제도화함으로써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을 현대인에게 강요하였다. 현대인들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을 강요당했고, 그로 인해 감각은 마비되었고, 영혼은 점점 소멸되었다. 작가 김완의 전시 '터치'는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성찰의 방법인 '촉각'을 제시한다. 김완은 대립된 가치가 공존하는 세상과 생을 초월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각도로 바라볼 것을 경계와 윤곽선을 해체하는 '터치'를 통해 제안한다. '터치'를 통해 개인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세상과 타인에게 쌓아올린 보호 장벽을 스스로 해체할 것을 말한다. '터치'를 통해 우리는 타자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할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레비나스는 '터치'를 '존재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 '타인을 향해 자신을 여는 것'으로 규정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딱딱한 껍질처럼 감싸고 있던 경계와 윤곽선을 허물어뜨려 타인을 향해 자기 존재를 열어가는 것이 '터치'이다. '터치'를 통해 자아의 불순한 욕망들을 해체한다. '터치'를 통해 경계를 넘어서 자신과 대조되는 반대항목들을 수용함으로써 단절되고 완고한 자아의 한계를 극복하고 타인과 연대를 형성한다. '터치'를 통해 오인과 기만의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 열린 세계를 생성한다. '터치'를 통해 개인 상호 공감과 연대를 실천할 새로운 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정해성
Vol.20200909b | 김완展 / KIMWAN / 金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