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0_0828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희정_김영진_박다솜_박진희_서원미 송수민_이민경_장은경_최모민
2020 금호창작스튜디오 15기 입주작가전 『또 다른 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전시 입장료는 무료이며, 예약자에 한해 매 정시와 30분에 입장이 가능합니다. (네이버 예약 링크 : https://vo.la/qSnmu)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2,3층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긴 밤은 낮을 염원하게 하는 한편 밤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밤의 조건인 어둠은 낮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을 감추고, 감각 기관 중 우위를 차지하는 절대적 눈을 의심케 하며 다른 감각들을 깨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감지하게 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생경함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밤의 메타포는 현실의 암울함만을 지시하지 않는다. 밤은 빛이 결여된 어둠으로 인해 참담하고 막막한 심상을 쉽게 연상하게 하지만, 이 결핍의 상태는 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이 밤 안에서 빛을 발견해야 한다. ● 금호창작스튜디오 15기 입주작가전 『또 다른 밤 The Other Night』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가 언급한 '밤'의 개념에서 착안했다. 『문학의 공간 L'espace litteraire』에서 블랑쇼는 밤이 지닌 속성에 주목하고 이를 예술과 연결 짓는다. 그에 따르면 밤은 본질적인 무엇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시공간이며, 예술가는 자신의 가장 깊은 내밀성을 향하여 '최초의 밤'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또 다른 밤'에 도달하여 자기 자신과 그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의 메아리를 듣게 된다. 이 메아리는 결국 그 자신에게 하나의 현전을 가져다준다. 또 다른 밤의 다가옴을 예감하는 자, 즉 예술가는 밤이 만들어내는 비본질적인 순간에 자신을 맡기는데, 모리스 블랑쇼에 따르면 내맡기는 그 자체가 본질적이다. 밤의 모습과 닮아 있는 예술의 창작 과정은 낮이라는 가시적인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의 내밀하고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 전시 『또 다른 밤』은 우리를 둘러싼 현상 속에서 비가시적 진리를 모색하는 아홉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지난하고 고독한 창작의 과정 속에서 각자의 언어로 어떤 본질에 시각적 몸을 부여하는 작가들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며, 개별의 사유를 모두의 것으로 전환시킨다. 이들의 작품은 블랑쇼가 언급한 또 다른 밤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낮이라 비유할 수 있는 가시적인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다층적인 사유와 감각을 제공하는 이들의 시각은 최초의 밤을 지나 깊숙이 도래한 어둠에서 길을 바라볼 수 있는 지표를 제시한다. 이처럼 예술이 이끄는 밤은 단순히 낮과 비교되어 빛이 차단된, 활동적인 낮이 통제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 이러한 밤에 대한 사유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밤'과도 연결된다. 바디우는 "낮에 반대하여 일으켜진 어둠"을 "제한적인 동시에 무한한 행동이 일어나는" 상태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진정한 어둠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그 자체의 고유한 명령"을 만들어 내야 하며 완전치 않지만 어둠이 있도록 하여 모험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기 다른 주제와 관점으로 아홉 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시각을 펼쳐 보이는 이번 전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밤을 다시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어쩌면 밤은 햇빛이 반사시키는 가시적인 색을 모두 소거하고 각각이 본연의 형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근원적 상태로 우리를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라는 바디우의 언급처럼, 우리의 진정한 만남은 이 또 다른 밤에서 시작된다. ■ 한누리
강희정 작가는 언어의 전달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차원의 문제들을 고찰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2013년부터 진행해온 「책 상자 Box Book」 시리즈는 작가가 수집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상자 표면에 붙여, 하나의 입체 형태의 책을 고안한 것이다. 「책 상자」 시리즈는 정보로서 섭취되는 책의 속성에서 벗어나 보는 이의 움직임을 유도하며 또 다른 감각의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Box Book - Penthesilea」는 이전의 「책 상자」 시리즈에서 재료와 소재를 좀 더 확장한 작업이다. 독일의 소설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희곡 『펜테질레아 Penthesilea』를 모티프로 하는 이 작품은 소설 속 아마존 여전사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왕인 아크나톤의 조각상 이미지, 그리고 클라이스트의 죽음을 다룬 영화 「아무르 포 Amour fou」 속 여인의 모습을 참고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책 상자」 조각에서 병치하고 있다. 다양한 재료로 조합되는 이미지들은 각각이 지닌 의미와 시각적 정보가 혼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창작자를 통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이미지를 고찰한다.
김영진 작가는 심상을 유도하는 언어의 특징을 활용하여 3차원적으로 경험되는 공간을 구축하거나 해체하는 다매체·설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영상 작업 「공간의 다섯 가지 형태」에서부터 출발하였는데,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한 하나의 공간 속 구조들을 다섯 종류로 분류하고 이를 조합하여 다섯 개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김영진 작가는 건물을 건축하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그가 바라보는 공간의 구성 요소를 언어로 묘사한다. 문이나 벽, 기둥 등의 요소들은 파편적 형태로 그려지나 단어가 문장이 되고 한편의 글이 되듯, 타이핑되는 글자들은 하나의 건물을 구성해 간다. 영상과 함께 제시된 사진과 조각 작품들은 심상 속 공간의 모습 일부를 시각화한 것이다. 확대되거나 일부만을 잘라내어 제시된 각각의 형태들은 무한한 형태의 공간을 암시하며, 시각에 머무르는 2, 3차원의 공간을 다차원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박다솜 작가는 현실에서 만연하게 나타나는 변형과 그것으로 인한 상실에 저항하기 위해 꿈의 방법론을 회화에 적용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벽에 붙인 테이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접착력을 상실해 가거나 단단했던 건물이 점점 노후되어 녹이 슬고 금이 가는 것처럼,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변형되어가는 사물들을 통해 물질의 유한성을 발견한다. 이 변형의 순간들은 아직 도래하진 않았으나 언젠가 분명히 다가올 상실의 감각을 일깨운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작가는 현실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한다. 이 시공간에 대한 힌트는 꿈 속에서의 경험에서 얻었는데, 사건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꿈의 일시성은 어떠한 왜곡이나 변형도 낯선 것이 아닌 오히려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러한 꿈의 속성은 박다솜 작가의 회화 속 인물에서도 나타나는데, 정확하게 분별되는 형태이기보다 덩어리나 흔적에 가까운 인물은 보편적 의미의 껍질을 벗고 다른 사물들과 구분되지 않는 알 수 없는 형상이 된다. 이처럼 현실의 사고 속에서 제한적으로 작동되는 물질이나 감정들은 박다솜 작가의 회화에서 자유로운 또 다른 '몸'을 얻는다.
박진희 작가는 실제 공간이나 장소에서 파생된 기억과 상상을 바탕으로, 추상적 형태의 사적 공간을 창출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회화 작품들은 가상의 습지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에게 자연은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공간이다. 이전에는 도시 속 특정 공간 또는 사물을 비유하는 재료가 사용되었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자연 그 자체가 전면에 나타난다. 추상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묘사된 풍경은 식물의 줄기나 꽃, 대기의 습도 등을 암시하고 오묘한 빛깔의 색채들을 통해 각각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나의 퇴적층을 연상케 하는 화면의 레이어들은 촉각적인 감상을 유도하고, 화면 위로 자유롭게 구사된 작가의 붓놀림은 그의 작업 과정에서의 행위를 유추하게 하며 화면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평면의 화면이지만, 무언가 감춰져 있거나 곧 어떤 것의 출현을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는 박진희 작가가 꿈꾸는 세계의 모습과 닮아있다.
서원미 작가는 잊혔거나 혹은 계속 소환되는 기억을 역사적 사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회화의 언어로 풀어낸다. 작가는 우연히 이야기로 전해 듣게 된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서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개인의 역사는 한국 근대사와 6.25 전쟁을 관통한다. 그리고 후대에 전해지는 그의 삶은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대형 회화 작품 「유령들」은 전쟁의 민낯을 파헤친다. 작가는 실제 전쟁의 이미지들과 상상의 이미지들을 병치하여 화면을 구성한다.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풍경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듯 보이지만, 이미지 위로 덧발라지고 뭉개진 물감은 눈앞에 다시 나타난 과거에 대한 기억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서원미 작가가 "얽힌 시간들의 폐허 속 잠글 수 없는 유령들"이라고 표현한 회화 속 인물들은 생의 존재로 살아 숨 쉬던 과거의 인물이자 상상의 물결 속에서 그 인물의 삶을 맞닥트린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은 과거의 그들과 오늘의 우리를 서로 바라보게 한다.
송수민 작가는 특정 상황이나 사건과 같은 고유의 맥락으로부터 이미지를 추출하여 새로운 맥락의 풍경으로 재창조한다. 작가는 특히 상반되는 상황, 재난과 일상의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 "재난인지 일상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 현실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심을 조형적 언어로 풀어낸 '패턴 시리즈'는 자연물의 형상과 재해의 이미지를 반복적인 패턴으로 전치한 작품이다. 각각의 대상이 지녔던 색이나 구체적 모양을 지우고 외곽의 형태만을 남기는 작업 방식은 외피를 통해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고자 하는 안일한 믿음의 태도에 파동을 일으킨다. 290cm의 거대한 회화 작품인 「The Shape of White」 또한 '패턴 시리즈'의 연장 선상에서 선보인 작업이다.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의 형상인지 아니면 폭발로 인한 연기의 잔여물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경계의 이미지를 통해 송수민 작가는 가변적인 오늘날 이미지 소비의 양상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본래의 이미지가 지닌 의미의 고유성에 대해 질문한다.
이민경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하는 사물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탐구한다. 친숙한 주변 사물 또는 일상적 공간의 구성 물질을 늘어트리거나 수축시키는 등 본래의 성질에 변형을 가하여 여러 촉각적 감상을 일으키는 상태로 재탄생 시킨다. 이렇게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된 조각들은 기존 성질에 또 다른 서사가 덧대어지고, 이는 보는 이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로 파생된다. 이민경 작가는 촉각적 전환과 같이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변화를 모색하는데,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모양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조각들은 하나의 온전한 조각으로 보이기보다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부분의 형태를 지닌다. 이러한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것의 나머지를 연상케 하거나 또는 이 조각이 겪었을 시간과 기억을 상상하게 한다. 이처럼 작가는 사물이 지닌 사적 또는 미시적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사물이 내포하고 있는 매개체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장은경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모양의 원형을 탐색하는 조형적 실험을 지속해 오고 있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하는 패턴이나 모양의 시작점을 자연으로 보고,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의 현상 속에서 규칙을 찾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잊힌 추상」 시리즈는 추상의 옷을 입은 자연의 질서들을 담고 있다. 자연의 질서는 하나의 언어 또는 모양으로 축약되기 어렵지만, 작가는 오랜 시간 관찰해온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제스처로서 추상의 형태를 빌려온다. 그리고 이에 대해 "본질을 잊은 추상"이라 설명하는데, 그의 표현처럼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단조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연 속에 기생하는 인간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감추기 위해 오랜 시간 자연을 축약해서 바라보았다. 장은경 작가가 전시에서 펼쳐 보인 인공적 자연의 모습들은 이러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최모민 작가는 회화라는 지지체를 통해 구상적 회화에 수반되는 서사와 구성의 한계 혹은 가능성을 실험해 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늪에서」와 「매달리다」 시리즈는 각각 특정 장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옷을 벗어 늪에 던지는 사람들, 또는 늪 주변에서 라면을 먹고 책을 읽으며 잠을 청하기까지 하는 한 인물, 그리고 나무에 매달리기 위해 아파트를 밟고 올라서거나 웃통을 벗고 매달리려 애쓰는 남자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와 위태로운 긴장감을 유발한다. 각기 다른 사이즈와 재료를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그려진 두 시리즈의 회화는 비슷한 듯 다른 상황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회화의 상황을 하나의 서사 구조로 읽으려고 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을 밀어내고, 묘사된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의미없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한 작가의 모색은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라 말할 수 있다. ■ 금호미술관
Vol.20200830c | 또 다른 밤 The Other Night-2020 금호창작스튜디오 15기 입주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