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7:00pm / 화요일 휴관
갤러리 아쉬 헤이리 GALLERY AHSH HEYRI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5-8 Tel. +82.(0)31.949.4408 www.galleryahsh.com
한 직선이나 평면과 직각을 이루는 직선을 수선이라 하고, 이때 수선과 일정한 직선이나 평면이 만나는 점을'수선의 발'이라 한다. 네작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리적인 시공간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떠다니는 점들로 바라보고 현실세계라는 평면에 선을 내리는 행위를 통해 각자의 생각이 머무르는 지점을 공유한다.
김자영 ● 이 작품은 심연과 같은 외로움의 가운데, 아무 생각도 할 필요 없는 어딘가로 아주 잠깐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제작되었다. 잠시만이라도 사고가 정지되고 몸과 마음이 부유하는 편안한 곳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파란 구멍은 나에게 그 미지의 곳, 꿈의 공간으로 떠나는 구멍이 되어준다. 괴로운 순간을 마주할 때 그리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희망의 탈출구 과 같은 나만의 공간을 상상하곤 한다. 감정이 크게 동요하는 순간, 아니 어쩌면 그 순간보다 더 많은 시간 나는 꿈을 꾸는 것과 같은 가상의 공간과 자주 마주치곤 한다. 이 공간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을 품은 곳으로, 더 나은 현실을 위해 꾸는 꿈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이 공간과 마주치는 동시에 나는 필연적으로 '지금, 여기'에 괴로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께 인지하게 된다. 유토피아적 공간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나 결핍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현실에서 얻지 못한것에 대한 갈망에서부터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만들어낸 미지의 구멍은 현실에서의 괴로운 나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상의 유토피아적 공간을 꿈꾸는 것이 현재를 부정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이상향을 꿈꾸는 부정적인 특성을 가진 허상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러한 상상은 현실과 가상 두 공간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며 우리를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시켜 혼란스럽지만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신다인 ● 시작은 하수구 구멍에서였다. 일상적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묘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작은 틈새 너머나 하수구 구멍 속 같이 절대의 어둠으로 드리워져 있을 것 같은 그 공간과의 마주함은 나를 더 깊은 사유로 나아가게 한다. ● 어느 날 문득 바라본 하수구 구멍 속의 깊이는 마치 끝이 없을 것 만 같이 까맣고 무서웠다. 그 속은 나의 상상으로 채워졌고 꽉 차버렸다 싶으면 구멍은 더 깊이 더 깊이 길을 만들어갔다. 사유를 촉발하는 매개체는 나의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 어떤 날은 길을 걷다 발견한 어떤 문틈사이가, 어둑어둑 해질녘 즈음 골목에 끝에 드리워진 주인 없는 그림자가, 누군가 버려놓은 비어있는 화분이, 반쯤 열려있는 종이 상자가 나에게는 모두 하수구 구멍과 같다. '시작은 하수구 구멍에서였다'로 시작되는 이 노트의 수상한 첫 문장처럼, 일상 속 구멍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할 때 나의 사유의 여정은 펼쳐진다.
윤서정 ● 우리 삶의 주체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뿌리로서 신체는 생물학적, 사회적, 언어적인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교차 지점이다. 특수한 문화와 구체적인 현실의 상황을 경험하는 신체로부터 발생하는 차이는 곧 우리 자신을 보편적 정체성으로 환원시킬 수 없고, 고유한 발화 위치를 지니면서 끊임없이 변화 가능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작가에게 신체는 경험과 욕망을 돌아보게 하는 출발점이자 주체성을 탐구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 「Playground」는 이항 대립적으로 구분되는 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신체를 표현한다. 일상의 요소와 신체가 만나 새롭게 생성된 신체는 주체성을 찾아가는 유희의 장을 만든다. 이들의 만남에는 어떠한 목적이나 필연성도 없다. 그저 이질적인 신체들이 우연히 마주쳐 상호적 관계를 이루고, 언제든 해체되어 다른 것들과의 연결을 향해 갈 수 있는 일시적 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 「열린시간」은 다양하게 체현되고 추상화 될 수 없는 여성의 몸을 자궁으로 은유하였다. 그 자체로 현실적이고 특수한 경험이 내재된 물직적 토대로서 여성의 몸은 그에 관한 경험들이 모여 공유될 때 지배적 언어로 재현될 수 없는 여성적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이소영 ● 여성적 공간은 결국 우리가 회귀하는 궁극의 장소를 상징한다. 이 곳은 이분된 경계가 모호해지고, 결코 나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타자와 뒤엉키는 코라(Chora)라는 여성적 공간이다. 이소영은 여성적 공간에 대한 생각을 자신만의 예술적 표현으로 옮기며 주체의 원초성이 재현되는 힘이자 주체의 정체성이 해체되는 공간, 그리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타자들과 뒤섞이면서도 자신과 차이를 확보해 나가는 상호주체적 삶의 방식으로써 재해석하고자 한다. ● 작품 「Belly Button」시리즈는 주체가 최초로 만나는 타자와 융합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그 융합이란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동시에 의미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이 흔적은 주체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타자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타자와 분리된 상흔이 아물고 나면 우리는 또 다시 수많은 타자와 연결되고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과 타자간의 공백을 인지하게 된다. ■ 갤러리 아쉬 헤이리
Vol.20200823b | 수선의 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