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판타지 Scarlet Fantasy

낸시랭展 / Nancy Lang / painting   2020_0822 ▶ 2020_0905 / 일요일 휴관

낸시랭_Taboo Yogini-Scarlet F1009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00604d | 낸시랭展으로 갑니다.

낸시랭 인스타그램_@nancylang_art

초대일시 / 2020_0822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이유 GALLERY 2U 서울 강남구 논현로134길 15 1층 Tel. +82.(0)2.3446.1788

삶이 더하여진 예술가의 끊임없는 기도 ● 콜라주(collage), 블라크나 피카소가 자신의 페인팅에 신문이나 사진 이미지를 부착하며 파피에 콜레(papiers colles)라불리던 이 작업 방식은 이후 여러 작가들을 통해 더 다양한 온갖 재료가 차용되고 붙여지는 작업 화풍으로 진화한다. 피카소의 콜라주에 큰 영향을 받았던 대가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는 자신의 콜라주 작업을 모음, 합체를 뜻하는'Combine'이라 불렀다. 여기서 더 나가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콜라주를 페인팅에 한정하지 않고 "조각 작품이다"라고 까지 했다. 라우센버그의 콜라주 작품은 현재 현대미술에 수많은 개념예술가들에게 영감이 되는 설치예술의 자극이 되기도했다.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라? 일상의 소재를 그러니까 자신이 덮었던 이불(Bed,1955)을 캔바스 화폭으로순수회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도 라우센버그의 시대를 앞서간 작업들이 우선이었다.(화랑은 처음에 이 작품을 전시장에 거는 것을 아예 거부했었다) 영국 여성 작가 트레이시 에민은 라우센버그의 2차 평면을 3차원 설치 작업(My Bed, 1998)으로 오마쥬를 하기도 했다.

낸시랭_Taboo Yogini-Scarlet F1010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0

뭔가 당시 제도권 화가들에게는 반항적으로 보였던 라우센버그의 창작활동들은 정작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때 다다이즘도 네오리얼리즘도 아니라 했다. 그는 뒤샹의 작품세계에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 그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뒤샹(Marcel Duchamp)의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1913)를 보고 "있는 그대로도 이쁜데 기존 미술계에 대한 반항의개념(다다이즘)이란 것은 도대체 난 잘 모르겠다"며 굳이 자신의 작품에도 근엄한 이론 따위를 붙이지 않았다. 예술사가들은 라우센버그의 행보가 없었다면 앤디워홀이든 리히텐슈타인으로 이어진 팝아트(Pop art)는 없었을 거라 평가를 하는데 구겐하임 디렉터 토마스 크렌스(Thomas Krens)는 라우센버그를 20세기 후반기의 피카소라고 그가 남긴 업적을 높이칭했다.

낸시랭_Taboo Yogini-Scarlet S1011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20

낸시 랭은 2003년 작품활동 초기 로봇 장갑을 두른 소녀가 명품백이나 꽃을 들고 있는 작품, 콜라주와 페인팅 /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된 당시 한국 화단에 기존 회화 작품들과 차별되는 신선한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영화 아이언맨(2008년)도 나오지 않은 시기라 여성작가가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 수트(방탄)를 작품의 소재로 차용한 점에 나는 의아했다. 작품안 등장하는 여성들이 사랑하는 루이뷔통, 샤넬 가방은 익숙한 오브제이다. 그런데 왜? 건담 로봇이 회화의 재료로 작품에 부착되고 중무장한 로봇 장갑을 두른 소녀가 캔버스 중앙에 전사처럼 떠있는 듯한 이 작품을 '터부요기니'라부를까? 터부라는 '금기'와 요기니라는 '수행'을 합체한 상징이라니? 이 둘의 다른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은 뭘까? 한국 화단에도 변화가 많았던 2000년대 초반 낸시 랭이 터부요기니 작업을 꾸준히 발표하는 동안 나는 당시 그의 작업의 의미를 깊이 살펴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낸시 랭도 라우센버그처럼 굳이 자신의 터부요기니 작품에 대해고상하고 근엄한 이론 따위를 설파하지 않았다. 낸시 랭의 신선한 데뷔 이후, 수많은 전시회와 TV방송을 통해서 팝아티스트로 알려지고 유명해진 그는 영국의 트레이시 에민처럼 한국의 대중들이면 누가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셀러브리티 아티스트가 되었다.

낸시랭_Taboo Yogini-Scarlet F1012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20

그녀가 여러 매체를 통해 전천후 아터테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였던 2012년, 어느날 우연히 본 한 프로그램에서낸시 랭은 한 논객과 맞짱을 뜨고 있었다. 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듯 채널을 고정했다. 아 이거구나!(생생했던 당시의모습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알고보니 터부요기니 작품속 장갑을 두른 소녀는 낸시 랭 그 자체였다. 당시 토론 진행자를상대하는 낸시의 말은 논리로 먹고 산다는 많은 기성세대(꼰대성,근엄주의)를 곤혹스럽게 하였고 그녀는 보이지 않는 방탄을 두른 채 낡은 기성세대의 가치와 어디서든 출몰하는 전근대적 남근주의 언어폭력에 의연하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낸시는 자신을 공격하는 권위적 발언을 특유의 솔직하고 유연한 말투와 재치로 다 튕겨내고 있었다. 예술가라는 그녀의모습은 분명 그 어떤 스타보다 신선했다. 낸시랭은 권위주의에 절은 꼴통 논객이 넘을 수 없는 철옹성의 존재감을 내뿜었다.

낸시랭_Taboo Yogini-Scarlet T1013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20

당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수많은 현대 예술가를 키운 뉴욕의 전설적 화상 레오 카스텔리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 질서에 라우센버그는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라 했던 기념비적 언사가 떠오른다. 예술가라면 꼭 이런모습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자체도 모호했던, 예술가의 자리가 항상 결핍되고 부재했던 시대에 낸시 랭은 라우센버그가선배 화가인 드 쿠닝이 준 그림을 열심히 지워 하얀 공(空)의 상태를 만들 듯(Erased de Kooning's Drawing, 1953) 과거의 낡은 한국 예술가 모습을 지워내고 낸시 랭이란 새로운 존재감을 예술계에 새겨 넣은, 그녀는 한국에 등장한 새로운 차원의 작가가 분명했다. 낸시와 한 논객의 토론은 낡은 과거를 지우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가의 등장을 보여주는 방송이었던 것이다. 이는 진지한 추상표현주의(모호한 논리와 비약의 세계 / 과거)를 두고 눈에 보이는 명료한 획을 스윽~ 그었다는 라우센버그의 새로운 행보와 개척의 철학을 떠올리는, 예술 경계를 허물은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라우센버그가 기존에 자리잡은 무거운 세계를 지우며 어떤 한계를 시험하고 싶었다는 것처럼 내가 본 낸시 또한 터부요기니의 전사처럼강렬한 예술적 존재감으로 무장한 채 전방위적으로 한국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낸시랭_Taboo Yogini-Dreamer M212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53cm_2020

낸시의 터부요기니의 작품은 앞서 라우센버그의 콜라주가 콤바인으로 진보하듯, 작가가 내밀한 개인사와 치열한 현실을오뚜기처럼 딛고 일어나 꾸준히 매진한 예술창작의 개척정신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증거이자 예시이다. 작품 터부요기니중 하나를 보면 한쪽 발목 아래가 어떤 신체의 장기(간 혹은 콩팥)와 같은 최근에는 꽃이라는, 무거운 몸둥이(본체)를 물리적으로는 지탱 할 수 없는 상징적인 것이 합체되어 있고 다른 한쪽 발목은 아예 형체가 모호한 (발 대신 다이아몬드 형태의) 기호로 처리되어 있다. 나는 작가가 표현한 작품의 상징이 항상 궁금했다. 낸시랭이 예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받지 않은 예술가의 퍼포먼스(2003년)에서 터부요기니를 처음 언급하였고 영국 여왕 생일때 '거지여왕 퍼포먼스'(2010년)로 논란이 되었을때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오마쥬 한 것 같은 목발을 짚고 있는 자신을 통해, 한쪽 다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달하려는 그녀가 오래 고민한 퍼포먼스를 통한 어떤 고백(결핍)은 콜라주와 페인팅으로도 완성된 터부요기니와 심리적으로 모두 끈처럼 연결되어 있는 어떤 상징(코드)을 발견하게 한다. 이 코드는 현재라는 작가의 삶속일상성과 멈추지 않는 변화를 은유와 상징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이 은유는 계획되었다기보다 즉흑적이며 즉물적이다. 라우센버그가 캔자스 미대 졸업 직후 작업 활동을 위해 파리에 도착하자 자신이 "내가 이곳에 40년 늦게 왔다"며 파리에서의 활동을 접고 미국의 노스 캐롤라이나의 실험미술학교 블랙마운틴(Black Mountain College)으로 돌아간 일화가 있는데 예술가는 어떤 계산이나 예측을 거부했었다.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창작활동이 "일종의 스포츠와도 같다"하였는데"무엇을 할지 미리 알았다면 아예 그만 두었을 것이다" 할 정도로 자신의 감각, 즉흥성을 작품에 담아내는데 탁월했다. 낸시가 자신의 저서 타이틀로 「난 실행할 거야, 2010」라고 선언을 했었던 것처럼 작가의 예술 활동은 생각이나 계획이 안개같은 추상의 방향으로 향하기보다 자신만의 예술 행위로 어려운 현실은 쉽게, 구속과 업악은 해방과 자유로 풀어가는, 쉼 없이 난제를 돌파하는 적극적 방식을 보여준다. 이제 낸시 랭의 새로운 신작들 「스칼렛 시리즈」를 보면 이 즉흥성과즉물적 감각이 치유의 메세지로 전환되어 터부요기니란 방탄을 깨고 나온, 숨겼던 것이 드러난 진짜의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낸시랭_Taboo Yogini-Dreamer M213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53cm_2020

"모든 형태가 결국 내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칸딘스키의 말,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발전시키고 순화시키며 예술은 자기 고유의 형식으로써 사물에서 영혼에 이르는 말을 주고 받는 언어라 했던, 영혼이 예술이란 형식을 통해서만 획득한다는 '일용할 양식'에 대해 생각해보면 낸시의 작품은 반복적 형태로 조합을 계속 이어가는 사라질 사물들을 맹목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닌 어떤 충분한 목적을 품고 있는 예술가 자기만의 언어, 예술가가 작품으로 써내는 어떤 기도처럼 볼 수있다. 낸시의 삶은 분명 자신이 만든 콜라주(덧붙임)에 기도를 새긴 것이다.

낸시랭_Taboo Yogini-Dreamer M215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53cm_2020

기도 ● 낸시랭은 2013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17년간 투병하던 어머니가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3년 넘게 공황장애를겪었다 고백했다. 긴 시간 동안 어머니의 장기는 계속 썩어가면서도 낸시의 한쪽 발처럼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어머니가 고통을 이겨내며 살기를 바란 낸시의 열망은 작품안에서도 간절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딸의 기원과 달리 곁을 평생 지켜주지 못하고 떠났다. 낸시는 어린시절부터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교회를 다녔다. 집안을 무책임하게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대신하여 기도로 아버지의 부재, 단절을 이기고 견뎌내려 애썼다. 터부요기니에 장갑을 두른 소녀의 다른한 발목은 낸시 그녀의 절름발이 같은 결핍을 극복하고자 하는 기도, 즉 빛과 구원의 열망이 기호(의미심장한 맹세)로 믿음으로 그려졌다. 이 아픔은 또한 알고보니 작가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살펴보면 남녀라는 성을 모두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고민하는 어떤 지점을 건드린다.

낸시랭_Taboo Yogini-Dreamer M217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53cm_2020

사랑 ● 낸시 랭의 '터부요기니' 평면 전면에 숫자로 새긴 암호는 사랑이 기본 바탕이 되는 세상을 암시한다. 이 세상이 여성이란이유로 퍼붓는 온갖 차별과 야유 비난과 폭력을 어린시절 낸시는 "사랑과 긍정의 힘이 결국 이 모든 모순과 불완전을 이겨낼 것" 이라는 다짐을 영혼에 이르는 말(예술적 언어)로 새긴 것이다. ● 여성이 통제되고 재단되는 남성주의 사회에서 터부요기니는 '자유롭지 못한 자유'에 대한 통렬한 예술가의 고찰이며 작가의 삶은 계속 진화하는 터부요기니(작업)에 지치지 않는 희망을 깊은 은유코드로 심어 두었다. 낸시는 분명 자기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이후 낸시의 행보를 지켜본 관객은 낸시를 해석이 아닌 공감의 대상으로 더 관찰하고 있다. 낸시가 다양한 매체를 부딪히며 대중과의 소통으로 이뤄낸 기존에 낡은 예술적 관념과는 차이를 두는 특별한확장, 다양한 사회적 접근, 섬세한 작업 디테일의 흔적은 한국 역사 내에 여성성의 변화 궤적, 더 발전된 방향으로 향하는여성 예술가의 진보 과정의 진통(시행착오)을 극복하는 용기도 함께 보게 한다. ● 낸시랭이 오랜시간 동안 작업으로 지켜온 터부요기니라는 의미심장(significant)한 맹세는 이제 '스칼렛'(Scarlet)시리즈라는 새로운 결심에 다았고 홀로 우뚝 일어선 한 여성은 이제 터질 듯한 꽃의 만개로 소리없이 절규한다. 이 외침을 그녀의 하나님과 어머니는 들을까? 분명 그럴 것이라 믿는다. 이제 소녀는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숨겨둔 곳에 아름다운 것이자란 그 자리를 감추지 않는다.

낸시랭_스칼렛 판타지展_갤러리이유_2020

상처 ● 소녀는 장갑(방탄)이란 껍질을 깨고 나와 이제 장갑안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스칼렛, 이렇게 상처에서 자란 꽃은그 어떤 모습보다 당당하다면 더 당당하다. 보라, 낸시의 작업에 회오리치는 슬픔을 깨뜨리고 터뜨리며 만개한 꽃들을. 여성이 받은 모든 주홍글씨가 낸시랭의 작품안에서 형용 할 수 없는 감흥들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또한 아문다. 작품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문명의 기계와 무기는 이 만개한 꽃들이 절대 연약하지 않다 말한다. 그리고 피어나고 있다. 이 문화가 더나은 문명, 더 나은 가치로 조금씩 더 큰 소리로 빛과 기도로 울려퍼지고 있기에…예술은 결코 시들거나 죽은 적이 없다. 앞으로 사그러 들거나 죽지 않을 그것! 작가는 오늘도 자신의 골방(화실)에서 문을 닫고 기도를 그린다. 그녀의 고백과 기도를 작품으로 만나며 누군가는 꼭 그 값을 갚으리라 생각하며 이 글을 남긴다. ●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and shut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in secret. And your Father who sees in secret will reward you." (Matthew)박장호

Vol.20200822c | 낸시랭展 / Nancy Lang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