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비전공자의 미술

김동형_윤종현_재즈민展   2020_0819 ▶ 2020_0910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0_0819_수요일_06:00pm

주최 / 갤러리 유진목공소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 갤러리 유진목공소 디렉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유진목공소 GALLERY EUGENE CARPENTERSHOP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89-2번지 1층 www.facebook.com/gallery.eugene.carpentershop

미술은 다른 전문 분야와 비교할 때, 업계 바깥의 관점에선 취미의 대상이기에 '생계와 무관하게' 곁에 둘 수 있는 타 분야의 전문 영역이기 쉽다. 미술계 바깥 사람에게 미술은 곧잘 선망의 대상으로 평가되는 바, 미술/예술을 현실과 분리된 이상의 영역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모든 문화권마다 뿌리 깊다. ● 미술평론가인 내가 상대하는 다수는 미술 전공자 그룹이다. 작가, 전시 기획자, 미술매체 관계자, 그리고 미대생과 만난다. 그렇지만 잊을만 하면 미술 창작에 뜻을 둔, 일면 없는 미술 비전공자로부터 연락이 끊임없이 온다. 이들은 자신의 작업을 내가 논평 해줄 수 있는지, 혹은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물어오는데, 예우를 넘어 저자세로 물어오기 십상이다. 취미의 대상인 만큼 다가서기 쉬운 반면, 비전공자에게 미술은 넘어서기 힘든 심리적인 진입장벽이 체감되는 모양이다. ● 다른 생업을 가진 미술 비전공자의 작업이란 내가 미술판에서 흔히 접해온 종류의 미술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동시대 미술의 진도와는 무관하게, 온전히 제작자가 중심에 놓인 미술. 미술(창작)을 향한 때묻지 않은 선망과 열정이 뒤엉킨 미적 태도. 대중 교양 프로그램이 반 고흐나 프리다 칼로 등을 묘사할 때 쓰는 상투적인 예찬을 고스란히 내면화한 마음가짐. 미술을 치유나 자기존재와 연관짓는 창작 방식. 미술 비전공자에게서 평균적으로 관찰되는 순수한 열정에 자못 놀라는 이유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미술 창작에 시들시들해진 전공자 그룹의 초상화가 내겐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아서다. 미술 전공자의 열정 결여에 대해 나는 '미대생이란 미술에 관심없는 대학생'이라는 농담으로 표현하곤 했다. ● '미술계' 내부에 머물다보면, 미술 창작에 열의를 품은 비전공자들이 얼마나 숨어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일면이 전혀 없는 비전공자로부터 이메일/카톡을 받으면서 비전공 미술 창작인의 수가 적지 않다는 걸 문득 짐작할 따름. ● 나는 올해 4월 '미술 비전공자에게 창작의 기본기는 무엇이냐'는 한 미술 비전공 대학생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궁리하다가 유튜브 영상의 주제로 다룬 바 있다. 격려 차원에서 제도권 미술 교육기관이 생기기 전에 독학으로 독보적인 입지에 오른 실존 미술가들을 거론하기도 했다.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반 고흐Vincent van Gogh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헨리 다거Henry Darger는 개중 일부이고, 현대적인 개념미술가로 오노 요코Yoko Ono, 지난 해 바나나를 덕트테이프로 벽에 고정시킨 작품, 코미디언Comedian(2019)을 $120,000 USD(1억 4,832만 원)에 판매한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상업미술을 공부한 키스 해링Keith Haring이나,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짧게 다니다 그만둔 재스퍼 존스Jasper Johns까지 범용적으로 미술 비전공자 출신으로 묶을 작가들을 나는 유튜브에서 인용했다. ● 『미술 비전공자의 미술』에 초대된 작가 셋의 구성은 이렇다. 예명 재즈민을 쓰는 창작자는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올해 개업한 변호사 배민신이다. 윤종현은 11년째 전통창호를 짜는 전업 목수다. 김동형은 미술을 비전공한 점에선 앞의 둘과 같지만 전업 미술가의 정체성을 지닌 채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김동형의 작업이 재즈민 윤종현에 비해 가장 주류 미술의 빛깔을 띈 이유도 그가 미술계에 속한 인물이어서 일 것이다. ● 이 전시는 미술 비전공자들의 작품 세계를 일괄할 수 있도록 그들이 종래 완성한 구작과 나란히 신작 한점을 선보인다. '미술 비전공자'라는 주제에 맞춰, "미술 창작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신작을 출품하도록 요청했다.

김동형_위대하거나 빌어먹거나_단채널 영상, 사운드_00:04:48_2018
김동형_Behold_단채널 영상_00:21:41_2017

김동형은 전업 작가에게 제한적으로 문호가 개방되다시피한 미술 창작스튜디오에 2차례나 선발되어 입주 생활을 했고, 토탈미술관처럼 입지가 굵은 동시대 미술관이나 K현대미술관처럼 대중적 수요에 충실한 신생 전시장에 초대되는 등, 가장 비전공자답지 않은 결과물과 맞닿은 작가 생활을 이어왔다. ● 그의 작업에서 가장 비중이 커보이는 비디오 아트의 지난 영상들은, 동일한 행동의 반복을 하나의 패턴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반복이 자기 스타일로 굳었다. 옥상에서 뒷모습의 남성이 해가 떨어질 때까지 깃발 흔들기를 반복하는 「Behold」(2017), 1970년대 후반 교복차림의 이름모를 여학생들의 소풍 기념사진을 스캔하고 출력하기를 반복해서 기념사진 속 인물 형상이 지워지고 추상이 되고, 추상 그 자체도 변모하는 「77년 4월 21일 봄 소풍 영락 기도원에서 광분이와 함께」(2016), 전후 맥락을 알 수 없는 9개의 독립된 움직임이 시퀀스처럼 반복하는 「위대하거나 빌어먹거나」(2018) 등 김동형의 스타일은 사뭇 결말 없는 '지루한 반복'이 시작과 끝이다. 이 반복을 통해, 무언가 결말이 있어야 할 시간예술과 스토리텔링을 공백이 대체한다. 이 무모한 반복 패턴이나 선명한 스토리가 누락된 공백은, 김동형이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 같기도 하다. ● 김동형과 나는 2013년 초 겨울, 미술 오디션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다. 그 해 CJ E&M에선 미술 오디션 방송 「아트 스타 코리아」 제작에 들어갔고(본 방송은 2014년 3월 시작) 김동형은 오디션에 응모하여 최종 선발된 도전자 15명 중 한명이었고, 나는 도전자들을 상대하는 멘토와 심사위원 역할로 출연했다. 도전자 대부분은 미술 전공자 혹은 전업 작가였으나, 개중 3명이 미술 비전공자였다. 비전공자의 창작 활동을 유심히 주목해온 나로선 그 셋을 편애한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윤종현_가파른 나선형 계단 위의 내 마음_호두나무_147×44×35cm_2020
윤종현_5월24일의 드로잉_오일 파스텔에 스크래치_79×54.5cm_2020

11년째 전업 목수인 윤종현은 작년 12월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첫 개인전 서문에서 나는 모호한 이해 불가 상태'가 지배하는 동시대 주류 미술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해석의 단서나 은유없이 작가의 내면을 재료의 물성을 앞세워 선명하게 표현한 윤종현의 지난 그림들이 해석하기에 오히려 어려웠다고 토로한 바 있다. ● 지난 10년간 틈틈이 '그녀'를 그린 초상화 구작들과 전공을 살린 목공 신작 2점으로 첫 개인전을 치룬 윤종현은 이번 그룹전에선 올해 예정에 없이 만나 연인으로 발전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혼인신고까지 한 모로코 여성 에이미와 교제할 때 느낀 감정을 옮긴 평면 드로잉들과 목공 신작 1점을 출품한다. ● 목공소 일이 끝나고 틈틈이 완성한 평면 드로잉은 현란한 색채와 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점에선 지난 그림의 연장선에 있지만, 총천연색 오일 파스텔로 덮힌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스크래치해서 대상을 떠오르게 만든 신작들에선 어떤 형상들이 뒤엉켜있으나 작가의 설명이 없는 한, 그것이 무엇을 재현한 건지 통 알아채기 어렵다. 그만큼 전적으로 주관적 감정의 산물로서의 형상회화가 올해 제작된 신작 드로잉이다. 아울러 짧은 제작 기간 완성한 목공 신작은 개인전 때 내놓은 첫 목공 조각의 연장선에 있되, 전작을 뛰어넘는 상상의 탑으로 쌓아올렸다. 속이 텅빈 골격 지지대와 가파른 나선형 계단이 결합되어, 불안과 안정이 공존하는 목조품이다.

재즈민_뉴욕 브라이언트 공원 그림 모델_종이에 수채, 색연필_41.5×33.5cm_2019
재즈민_T그림 그리던 내게 다가 온 자그레브 소년_종이에 색연필_55×44cm_2019

변호사 배민신은 올해 5월 문래동의 한 전시장에서 재즈민이라는 예명으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것이 이미 세 번째 개인전이라 했다. 미술 비전공자의 작품 혹은 전시에는 미술계에서 약속처럼 굳은 관행이 쉽게 변형되어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가령 미술판에선 오후 6시 전후를 전시 오프닝 시간으로 정하는 암묵 같은 게 있지만, 재즈민의 개인전의 일정표를 보니 오후 2시를 오프닝 시간으로 정했고, 미술판에선 전시 철수 전야이기 마련인 전시 끝나는 날조차 클로징 초대일로 정해놨더라. 작가와의 대화는 미술계의 부대 행사이긴 하지만, 재즈민의 개인전처럼 한 전시에서 2회 이상 진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전시회 개최와 진행을 관행에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추억과 관계에 맞춰 전시회가 쓰이도록 신경 썼다. ● 무엇보다 전시장 벽엔 무심하게 붙인 A4용지에 인쇄된 단어들은 별 내용이 없었기에 오히려 생각할 지점을 만들었다. A4용지 위엔 '여행 사람 자연 친구 동물'이 적혀있었다. 이는 누구건 현실에서 연관성이 깊은 평범한 키워드일텐데 5개의 키워드를 창작의 모티프로 삼아 제작한 전시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술 전공자라면 대놓고 자기 주제로 꺼내기 힘든, 때묻지 않은 동심의 주제다. 전시장 벽면에 작품 가격을 구입자가 정하도록 한 이유를 큼지막하게 써붙인 건, 심하다 싶을 정도의 순수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벽에 걸린 초상화들의 얼굴빛은 또 어떤가. 모델의 객관적인 외관이야 어떻건 전적으로 작가의 주관으로 풀이한 다채로운 색상의 얼굴들. 연두색 낯빛에 파란 콧잔등을 가진 여성, 녹색 이마와 주황색 빰 그리고 빨간 코를 달고 있는 남성. 모델을 찍은 사진과 재현된 초상화 사이의 격차와 변형 정도는 제 3자가 낄 수 없는 작가와 모델 사이의 밀도를 뜻할 것이다. 전시장 벽면에 A4용지로 붙인 '여행 사람 자연 친구 동물'이라는 키워드로 보나, 작가노트로 보나, 재즈민의 작업은 관계미학적이다. 재즈민에 대한 촌평을 구상하며 우연히 내 블로그를 살피다가 연전에 짧게 요약해 둔 영화 리뷰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2012)라는 영화로, 공식 카피 중 이런 문장이 보였다. "The greatest art form is friendship. 최상의 예술 형식은 우정이다." ■ 반이정

p.s.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2019년 12월 전업 목수 윤종현의 개인전으로 개관전을 열며 미술 비전공자와 관계를 맺으며 시작한 전시 공간이기도 하다.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미술 비전공자의 미술'이라는 주제를 이번 기획전 1회로 한정하지 않고, 고정된 프로그램으로 연속 기획할 방침이다.

갤러리 유진목공소

부대행사: 『미술 비전공자의 미술』 좌담 - 일시: 2020.0829(토요일) 16:00~17:30 - 장소: 갤러리 유진목공소 - 진행: 반이정(미술평론가 · 갤러리 유진목공소 디렉터) - 화자: 김동형·윤종현·재즈민, 이민재(갤러리 유진목공소 매니저) - 주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미술 창작자들의 작품 전시와 더불어, 관련 주제로 초대 작가와 기획자와 함께 좌담회 자리를 마련한다. 좌담을 통해 제도 미술계의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미술 비전공자의 미술 세계와 창작 욕구를 화두로 다룬다. 주제에 관심 가진 이의 참석을 환영합니다.

갤러리 프로그램: 미술가 황소영의 요가 클래스 - 미술가 겸 요가 강사 황소영의 요가 클래스는 전시기간과 무관하게 상시적으로 신청을 받아 갤러리 내부에서 진행하고 있다. - 목요일 15:30~16:30 / 토요일 13:00~14:00 - 문의 : 010-9893-6672 / 인스타그램: @h_sososo

1.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30년째 운영 중인 유진목공소 옆에 자리한 화랑으로, 2019년 12월에 개관한 이래 2020년 초『서울신문』『국민일보』등 일간지와 여러 매체에 현역 미술평론가가 디렉터로 참여해서, "과거 전성기를 누렸으나 어느 순간 잊혀진 중견 작가나 주목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도 조명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로까지 연계하는 화랑"을 표방하는 보기 드문 미술 갤러리로 소개된 바 있다.

2. 14세부터 55년간 줄곧 목수로 일한 윤대오 사장이 아들 윤종현과 운영 중인 유진목공소는 KBS-TV 교양프로 『낭독의 발견』(2010) 국민일보(2020) 등 대중매체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3. 목공소로 유명했던 홍은동 문짝거리에 재개발 바람이 일면서 목공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는 와중에 현재 남은 목공소 두 곳 중 한곳이 유진목공소다. 이곳은 '전통창호'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목공소다. 2019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방한한 첫날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배경으로 선 만찬장 상춘재의 전통 문창살 99짝의 교체를 담당한 목공소가 유진목공소다.

4.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분야가 다른 세 사람이 운영한다. 반이정(1970) 디렉터/공동대표 ● 미술평론가. 「중앙일보」 「시사IN」 「씨네21」 「한겨레21」 「한겨레」 「경향신문」등에 미술 칼럼과 시사 칼럼을 연재했다. 「교통방송」 「교육방송」 「KBS」 라디오에 미술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송은미술상 등의 미술상 심사위원과 많은 미술 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 선발 심사위원을 지냈다.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예술판독기』 『사물판독기』 외에 여러 책을 썼다. 유튜브 채널 '반이정의 예술판독기'를 운영하며, 네이버 파워블로거에 선정됐다. 이민재(1967) 매니저/공동대표 ● 전직 과학교사.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고『현대미술의 이해』 『모마 포토그래피』같은 시각예술 전문서적과, 물리학자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같은 과학서를 번역했다. 윤종현(1983) 공동대표 ●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5년여를 충무로 영화계에서 『얼굴 없는 미녀』『효자동 이발사』『거울 속으로』등에 조명팀으로 참여했고, 그후 수행자가 되기 위해 해인사와 불국사에서 1년 반여 행자 생활을 하다가 하산했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아버지 목수 윤대오 사장과 유진목공소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평생 미술 작가로 존재하길 꿈꾼다.

5. 갤러리 유진목공소가 기획하는 전시의 지향점은 왕성한 전성기를 누렸으나 어느덧 잊힌 듯한 중년작가를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일과, 진가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미술가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갤러리의 지정학적 위치에 걸맞게 목공의 미학과 홍은동 목공거리의 역사를 주목하는 전시도 계획 중이다. ■ 갤러리 유진목공소

Vol.20200819c | 미술 비전공자의 미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