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유망작가 릴레이 3

전동진展 / JEONDONGJIN / 全東珍 / mixed media   2020_0803 ▶ 2020_0822 / 일,공휴일 휴관

전동진_0에서 0에 이르다_퍼포먼스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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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 2020_0803_월요일_08:00am~05:00pm

▶ 작가 인터뷰 영상

주최 / (재)행복북구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어울아트센터 대구시 북구 구암로 47(관음동 1372번지) 갤러리 명봉 Tel. +82.(0)53.320.5120 www.hbcf.or.kr

선을 긋는 행위와 흔적으로 시간을 기록하는 전동진 작가의 오브제 작품이 설치되고 작가의 몸을 오브제로 활용한 퍼포먼스가 전시 첫날 시연된다. ● 전시장은 집요하리만치 반복적으로 그어진 선으로 빼곡히 매운 작가의 드로잉 노트, 그 드로잉 기록이 담긴 영상, 드로잉 노트를 제작할 때 사용한 제작의자를 설치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이 세 가지는 작가의 전시메시지를 드러내는 표현매체이다. ● 삶에 대한 욕망으로 드러나는 사유들을 전동진 작가는 2019년부터 500일이 넘는 현재까지 끊임없이 반복된 선긋기로 채웠다. 매일 매일 차곡차곡 쌓은 선으로 매워진 모눈종이에는 삶의 욕망을 억누른 작가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 어울아트센터

전동진_0에서 0에 이르다_퍼포먼스_2020
전동진_0에서 0에 이르다_퍼포먼스_2020

전동진의 예술적 행위 : '미묘함, 그 지속 가능성' ● 예술적 행위는 삶을 살아가는 일상성을 근저로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삶의 일상성을 벗어난 예술적 논의는 허구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적 행위의 주된 요건은 예술적 행위를 낳는 작가의 실생활 속 일상성이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 놓여있는지가 중요하며 또한 어떠한 과정과 경유를 거쳐 그것들이 예술적 행위로 표출되어지는지가 주요한 예술적 논의의 대상이 된다. 예술적 행위를 수행하는 작가가 전제한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다.

전동진_NO.1_DATE.01012019(gmt+9) ~ 오늘_영상, 사운드_2019~
전동진_NO.1_DATE.01012019(gmt+9) ~ 오늘_영상, 사운드_2019~

작가 전동진의 예술적 행위는 작가적 삶의 일상성을 배경으로 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이 삶의 일상성을 '미묘함'으로 괄호 쳐 놓고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로써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행위의 '지속가능성'은 그 권익을 보장받고 있다. 작가의 예술적 과정 속 지속가능성은 이 일상성을 기반으로 하고 그 일상성은 작가 자신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작가의 예술적 표출과정을 동반한다. 이 모든 것이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일상성을 배경으로 성립되고 있다. 주목할 바는 작가 자신은 주어진 일상성에 대한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그 일상성 속에 예술적 행위의 욕망이 내재함을 근저로 할 뿐이다. 한편으로 보자면 이러한 바는 이른바 작가로 하여금 작가적 욕망의 무력화를 꾀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이곧대로 작가적인 욕망의 무력화로 귀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욕망은 삶의 무기력함에 대한 탈피를 동반하는 욕망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작가적 욕망은 작가 자신의 예술적 행위의 '지속성'과 '미묘함'에 대한 행위적 촉구를 자극한다.

전동진_NO.1_DATE.01012019(gmt+9) ~ 오늘_모눈종이에 연필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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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_NO.1_DATE.01012019(gmt+9) ~ 오늘_모눈종이에 연필_2019~

예술에 있어 욕망의 추종은 일면의 공포를 유발한다. 이를 수용하자면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것은 인간적 행위의 당연함과 연계된다.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작가가 말하는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점은 작가로 하여금 예술적 행위의 배제를 배태케 한다. 하지만 전제한 논제는 작가로 하여금 작가의 예술적인 지속 가능성을 보장케 하는 촉매이기도 하다. 이때의 욕망에 대한 욕망이 공포에 둘러싸인 공포로부터 탈피케 하는 작가적 정신이자 작가적 행위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촉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예술적 '욕망을 욕망하지 않음'은 그렇게 작용하고 있다. ● 작가는 전제한 바에 따름으로써 욕망의 공포로부터 탈피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공포의 탈피를 통한 미묘함의 지속 가능성으로 이행 가능케 된다. 전제한 공포의 배제 심리가 욕망과 충돌하고 그 충돌의 힘의 무력화를 위해 미묘함, 즉 일상적 행위의 서술이자 일상적 요인들의 묘사를 지속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미묘함과 견주어 나갈 수 있는 예술적 과정을 낳는다. 이것이 작가에게는 예술적 행위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행위의 지속성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예술적 행위의 지속성을 가능케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전동진_NO.1_DATE.01012019(gmt+9) ~ 오늘_영상, 사운드_2019~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작가의 삶의 근저에는 작가적 미묘함이 내재한다. 이것이 작가에게 주어진 '미묘함'이란 현실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욕망을 대신한 현실을 예술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욕망을,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의 예술적 가능성은 그 의미를 확립한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로 하여금 예술적인 행위의 지속성을 현시 가능케 한다. 작가가 스스로의 욕망을 욕망케 하고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근저의 결과물을 양산하는 것이다. 작가가 삶 속 미묘함을 찾아나서는 행위는 그래서 욕망을 벗어나려는 욕망에 이르는 길을 택하게 되었고 이러한 행위들의 반복이자 지속성을 근저로 예술적 행위의 지속성이자 그 미묘함의 지속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 일상적 삶의 세심함을 기록하기 위해... (2020. 7. 15.) ■ 홍준화

전동진_2020 유망작가 릴레이展 3_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명봉_2020

미묘함 그 지속가능성_욕망을 욕망하지 않는다. ● NO.1_DATE.01012019(gmt+9) ~ ● 현전의 삶은 욕망한다. 두려움은 욕망의 그림자다. 하나의 실천이 필요하다. 미묘함은 삶을 욕망하지 않는다. 다만 삶을 세심하게 다룰 뿐이다. 실천은 미묘함을 통해 지속가능해진다. 두려움을 지운다. ●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속에서 무엇인가 이루어낸다는 것이 가능 할까? 무엇을 욕망하며, 어떤 결정을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참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사유가 언어가 되어 밖으로 드러나면 무기력한 나를 발견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펜과 종이를 꺼내들었다. 욕망이 종이를 채워 무엇도 할 수 없다. 그 것을 멈춰야 한다. 벽지를 보고 조금 열린 창문 틈을 보았던 이미지가 새겨진다. 그리고 방안지의 작은 칸들을 응시하고 짧은 선을 그었다. 한 장을 채워나갔다. 숫자를 적었다. 그것의 새로운 이름이다. 나의 이름은 지워졌다. ● 오늘도 한 장의 종이에 그 선을 긋고 이름을 지웠다. ■ 전동진

Vol.20200803d | 전동진展 / JEONDONGJIN / 全東珍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