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은혜_박지혜_이명미_전주연_최기창
주최 / 의정부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의정부미술도서관 Art Library of Uijeongbu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로 248 Tel. +82.(0)31.828.8866 www.uilib.go.kr
의정부미술도서관은 2020년 7월 28일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을 담은 기획 전시 『텍스트, 콘텍스트가 되다』展을 개최한다. 도서관 속 미술관이라는 의정부미술도서관의 건립 의의와 정체성에 맞는 기획 전시로 텍스트를 소재로 한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강은혜, 박지혜, 이명미, 전주연, 최기창 등 다섯 명의 작가는 언어와 글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현대미술작가로 이번 전시에서 회화, 설치, 영상 등 총 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도서관은 전국 최초의 미술관과 도서관이 융합된 공공도서관으로 예술 서적을 비롯하여 4만 여권의 책과 예술 작품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책과 미술 작품이 공존하는 곳이니만큼 시각예술 이미지에 텍스트가 결합된 작품으로 미술도서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텍스트는 강렬한 색채의 대형 페인팅 안에 아기자기한 오브제로 장식되어 하나의 '놀이'가 되거나, 여러 관계 속에서의 새로운 형태의 사랑 노래가 되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은 위로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또한 한글을 해체, 분해하여 해석이 불가능한 코드가 되기도 하고, 바닥에 잔디처럼 깔려 목적성이 제거된 물질로만 남기도 한다. 이렇듯 작가들은 텍스트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하며, 언어와 문장, 파편화된 단어들은 각각의 작품 안에서 의미있게 생동한다.
강은혜 작가는 공간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글을 사용하여 공간 특정적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분해하고 재조립하여 추상적으로 패턴화한다. 강은혜는 의정부미술도서관 내부 전면의 가로 34미터, 세로 12미터를 가득 메운 창문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작품 「코드명L」(2020)을 계획하였다. 「코드명L」(2020)은 작가의 작품 중 다이크로익 필름지를 사용한 첫 설치작품이다. 책장을 형상화한 650여 개의 창문은 그리드가 되어 작가의 패턴화된 코드를 담는다. 수직, 수평의 선들은 천장과 바닥을 잇기도 하고, 교차되기도 한다. 다이크로익 필름은 각도와 빛의 세기에 따라 색이 변하는 특수 필름지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색이 달라진다. 또한 해가 깊숙히 들어오는 오후 시간에는 창문을 통과한 빛에 의해 작가의 패턴들이 바닥에 새겨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컬러 그림자들이 또 다른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관람객들은 단순화된 선들로 이루어진, 그리고 빛에 의해 색이 끊임없이 변하는 컬러 조각들을 유추하고 해독하며, 감상하게 된다. 이처럼 작가는 한글의 조형적 특징을 건축적 공간과 조합하여 공간이 주는 힘을 극대화시킨다.
박지혜 작가는 이분법적으로 양극단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에 대하여 꾸준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3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 중 신작인 2점은 공간을 마주하고 받은 영감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가는 평소 생각하던 사회적 문제나 사건을 머릿속에 스크랩해두었다가 마땅한 공간과 조형적 아이디어가 마주하는 순간이 오면 그것을 비로소 풀어낸다. 「단 한번이라도」(2020)는 무척이나 쉽고 간단하지만 사람들이 좀처럼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말을 영문으로 새긴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손바느질로 25미터의 얇은 커튼 천에 "Yes, of course. You're right. Totally. Go ahead, darling." 이라는 문구를 한 땀 한 땀 새겨넣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말이 필요했던 누군가는 영원히 듣지 못했던 말이다. ● 「단 한번이라도」(2020)의 왼쪽으로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부풀었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미니 에어간판 「Y」(2020)가 있다. 사람들은 유독 남을 평가하는 것에 너그럽지 못하다. 여기서 작품 제목인 「Y」는 Yes or No에서의 Y로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좀처럼 선택받지 못한 긍정의 대답이다. 2분의 휴식 후 벌떡 일어나는 기특한 「Y」에게서 우리는 언제나 긍정의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이명미 작가는 과감한 붓터치와 감각적이고 자유로운 화면 구성이 특징이다. 강렬한 색채와 화면을 가득 메운 오브제들의 시원한 배치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일상적 소재인 컵, 의자, 책상, 그릇 등을 주제로 그린다. 또한 단추, 스티커, 장난감 등을 그림에 붙여 보는 재미를 더한다. 「Talking About Dinner」(1999)는 작가의 일상이 녹아나는 작품이다. 주부인 작가가 늘 보고 다듬고 사용하는 야채와 조리도구 등을 텍스트와 함께 화면에 그려 넣었다. 「마셔버리자」(2002)는 작가에게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것 등을 파편적인 단어들로 작품 속에 쏟아내고 있다. 「나와 같다면」(2011)에서는 작가의 놀이적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어린이용 캐릭터 스티커로 붙이고, 가사의 단어마다 손바느질로 이미지 혹은 같은 의미의 영어 단어를 새겼다. 관람객은 노래 가사 속 단어를 한 글자씩 짚어가며 스티치된 영어 단어와 이미지를 매칭시키며 감상하게 된다. ● 이렇듯 이명미는 '놀이'의 개념을 회화 작품에 담는다. 일상적이지만 개인의 경험과 상황을 아이의 그림처럼 과감하게 생략하고 과장시켜 그리고, 그림 속에서 쏟아져나오는 단어와 문장들을 찾아 읽고, 문장과 오브제를 연결시켜 해석해보는 모든 행위는 작가에게도 관람객에게도 하나의 '놀이'가 된다.
전주연 작가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엄숙하고 수직적인 위계 구도를 가볍고 수평적인 구도로 전환'시켜 그 위에서 역동적인 신체 활동을 한다. 「Field of Study」(2020)는 빼곡하게 적힌 알파벳들이 겨우 읽는 행위가 가능한 최소의 간격으로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설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처음으로 작가가 퍼포먼스 영상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이전의 「Field of Study」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의한 텍스트를 발췌하여 '읽히지 않는' 문장으로 설치했던 반면 2020년의 작품은 '읽히는' 문장으로 해석 또한 가능하다. 텍스트 자체보다 의미 구조를 물질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작가는 내용을 굳이 숨기지 않으면서 이전 작업보다 더 객관적인 견지에서 텍스트를 바라본다. ● THE AIM OF BADMINTON 으로 시작하는 이 기나긴 문장은 배드민턴의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배드민턴이란 빼곡한 규칙을 읽어서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신체 활동으로 동작을 익혀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설치 작품과 함께 볼 수 있는 영상에서 두 명의 퍼포머는 텍스트 필름지로 제작된 배드민턴 규칙 위를 뛰어다니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 전주연 작가는 유학 시절 영어가 몸에 들러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어로도 어려운 정치학과 철학을 외국에서 공부했던 작가에게 영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자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작가에게 있어 간절히 해석되길 바랐던 텍스트들은 이제는 바닥에 깔려 밟힌다. 텍스트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목적성을 가진다. 이러한 목적을 지우면, 오히려 텍스트는 더 가볍게 쓰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텍스트의 외부에서 우리는 더욱 자유롭게 텍스트를 해석하고 유영할 수 있는 것이다.
최기창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흑연과 경면주사를 이용한 프로타주 버전의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2020)를 선보인다. 작가는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8미터 높이의 벽에 애국가, 군가, 찬송가, 대중가요 등에 포함된 사랑의 가사 부분을 조합하여 한 글자, 한 글자를 음각으로 손수 새겼다. 장소 특정적 작품이기에 전시 종료와 함께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작가는 프로타주로 이 작품을 떠내 남겼다. 삶의 원동력이라 생각되는 사랑의 속성을 탐구하고, 추적하는 작가는 사랑의 가사를 이어 붙였고, 그것이 사라질 것 같아 벽에 새긴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전시 종료 전 프로타주로 작품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 2020년 프로타주 버전은 대형 장지 8장에 흑연으로 문질러 음각 조각을 떠낸 뒤, 경면주사로 색을 입히고, 8장을 이어 붙이는 배접 작업을 거쳐, 비단으로 덧대어 족자의 형태로 재탄생되었다. 작가가 말하는 사랑의 속성은 이 작품과 작가 간의 관계에서도 통용되는 것인가 싶을 만큼의 오랜 시간과 지난한 과정과 노력으로 완전히 새로운 물성과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새긴다'는 것에서 흔적을 '남긴다'로 전환된 이 행위는 사랑의 형태 또한 변한다는 것과 상통한다. 작가는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로 '사랑의 속성'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날로그적 '읽는' 행위에서 벗어나 시각적으로 '보는' 현대의 삶을 살고 있는 만큼 텍스트라는 것은 읽어야만 하는 것에서 나아가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것으로서 변모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명미 작가의 스티치는 박지혜 작가의 커텐 손바느질에서 비로소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강은혜 작가의 패턴화 되어 읽히지 않는 선들은 이제는 읽히는 전주연 작가의 텍스트 잔디에 이르러 텍스트의 읽힘과 쓰임에 대한 간극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텍스트에 대한 각기 다른 의미 부여와 조형적 형태로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관람객들은 상충되는 텍스트들 사이에서 글자와 문장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며, 텍스트의 본질에 대하여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장예빈
Vol.20200728c | 텍스트, 콘텍스트가 되다 From Text, To Contex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