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주)라텍_라벨스하이디
관람시간 / 10:00am~10:00pm
523쿤스트독 523KunstDoc 부산시 사상구 강변대로532번길 94 2층 www.523kunstdoc.co.kr
한때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며 산 적이 있었다. 그 세세한 계획들이 실패하자 실망조차 하지 않는 비겁한 방법을 알아갔다. 소중한 가치들은 손바닥의 모래처럼 찰나에 빠져나갔고 세상에 온전한 내 것 하나 없었다. ● 지구반대편 그 스산한 곳을 자처했던 이유를 쌓여가는 물건으로나마 증명해야 했다. 온 몸에 덕지덕지 붙은 불안을 떨쳐내려 매일 사람의 온기가 떠난 낡은 물건들을 안고 그 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봐, 내가 이렇게 심미안이 좋아! 그래 봤자 신명 나게 사용하다 어느 날 버려진 것들에 말이다.
살아 갈 날이 아득해서 자고 일어나면 칠십 먹은 노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폐허 속 먹고 사는 문제에 허덕이느라 삶의 본질이나 이유 따윈 사치인 1920년 전후를 생각했다. 생존에 밀려 골칫거리인 책을 시작으로 무용하여 사라질 물건에 다시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그 것들은 한 세기의 풍파를 고스란히 겪으며 현실에서 외면당한다 해도 징징대지 않는 다른 종이니깐. 10년쯤 지났을 때 누군가 나를 헤비빈티지컬렉터라고 불렀다.
트럭 2대 분량의 물건들을 버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더블린의 그 좁은 스튜디오는 넘쳐나는 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물이 생활영역을 잠식하고 이내 그 일부가 되어버렸다. 더 가질수록 외롭고 비참 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자 다시 불안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원래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 색다르고 멋진 일상을 쫓으며 도망쳤지만 오늘도 비참했다. 물건은 나날이 쌓여갔고, 한국으로 20kg의 책박스 8개를 보내고선 저녁은 2유로짜리 불어터진 파스타. 이 얼마나 모순된 삶인가!
현대의 소비자는 '나=내가 가진 것=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으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며 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 갈 것임을 에리히 프롬은 일찍이 예견했다. 생각해 보면 하나라도 손에 놓칠 세라 욕망이 이룬 풍경 속에 줄곧 걱정을 채웠다. ● 가치가 희석되고 퇴색 된 이 물건도 다시 그럴싸해 질 수 있을까? 꼭 쓸모가 있어야 어디 가서 부끄럽지 않을 피곤한 삶을 대신해서, 이것들은 계속 무용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면 단점과 장점이 동전의 앞뒤처럼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불안과 안정이 어느 하나 우위가 아니라 얽매여 있음을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해서 삶의 헛점을 찾아 묻고 퇴색된 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겠다. 그렇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관철할 권리가 있다. ■ 김지연
Vol.20200727b | 김지연展 / KIMJIYEON / 金智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