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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 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 (소격동 125번지) Tel. +82.(0)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우민정 개인전 『달 표면 깎아내기』에 부쳐 ● 흙은 물을 머금으며 질펀하게 나무판 위로 펼쳐지고 얇고 균일한 표면이 되었다. 며칠을 말라가면서 물기가 완전히 제거된 면은 단단한 벽이 되었다. 우민정 작가는 이 벽면 위로 날카로운 송곳으로 선을 깎아내며 그림을 그린다. 선은 힘을 주는 대로 얇고 가늘게, 혹은 깊고 두껍게 만들어진 흔적을 만들어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송곳을 쥔 힘의 강약은 흙을 긁어내는 소리, 흙이 깎이며 떨어져 나가는 감촉 등 작가의 감각으로 되돌아 왔다. 작가는 손끝에서 전달되는 진동이 온몸에 반응하는 이 느낌에 빠져들곤 하였다.
2020년 7월 9일 갤러리 조선에서 오픈하는 우민정 작가의 개인전에서는 흙으로 만든 벽면에서 깎아낸 선의 형상 위로 채색한 「미루어 짐작하다(2019-2020)」 시리즈, 벽의 효과를 그린 채색화의 표면 위에 이미지를 중첩하거나 나열한 「I TRIED(2019-2020)」 시리즈, 그리고 영상 작업 「비나이다 비나이다(2020)」 등을 선보인다. 특히 흙을 직접 조성하여 만든 '벽'이라는 바탕은 우민정 작가의 작업개념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형식이다. 「미루어 짐작하다」 시리즈는,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달의 표면을 그린 것이다. 달은 우리에게 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신월과 만월 간의 모양이 계속 바뀌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밤의 어둠으로 인해 검게 덮여 있던 겹을 걷어 또 다른 풍경을 드러내 주기도 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유동성은 달이라는 대상이 항상 제자리에 머무는 정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동시에 끊임없는 변화를 인식하게 하는 존재로서의 이중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벽면 위로 긁어낸 자국으로 만들어진 얇은 저부조의 느낌에 가깝다. 평면 회화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 송곳으로 패인 선의 깊이와 굵기 등의 흔적이 물질감을 더욱 강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표면을 깎는 작가의 행위로부터 전달되는 감각적 경험이 긴밀하게 연동된다. 깎고 긁어내는 과정에서 작가가 직접 손으로 느낀 물질감의 진동으로 그려진 표면과 신체 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선지 위에 그려진 이미지들인 「I TRIED」시리즈에서 드러나는 동적인 구도, 그 구도 안에서 만들어지는 생명력이 특히 눈에 띈다. 작가가 표현하는 대상은 주로 유기적 형상이며, 생명체이며 곡선이다. 거대한 곡선으로 사람의 얼굴을 화면 가득 채워 넣는가 하면, 곡예를 하는 인체의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배치, 식물, 물, 불, 바람 등의 자연 현상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어우러져 화면 속에서 곡선의 반복과 중첩, 이어짐 등을 드러내며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는 흙벽이라는 고정되고 단단한 물질적 감각과의 대조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자연물이 아니더라도 그가 관찰하고 반복적으로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 건축 요소로서의 조형적 형상조차 곡선으로 만들어진 형상인데, 그의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도의 건물 벽면에 뚫린 창 모양이 그 예이다.
"처음 벽화작업의 시작은 그 벽에 틈을 내고 그곳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열린 틈을 통해서 벽과 대화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틈을 내고 색을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다 만든 흙 가벽을 만져보면 서늘하다가도 따뜻하다. 흙은 내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시 돌아갈 장소이다."(작가 노트 중) ● 본래 가루였던 흙을 벽면의 형태로 만드는 행위는 순간을 기록하고 박재할 수 있는 단단하고 고정된 장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에게는 그리는 행위가 단지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고 있다. 그의 작업 노트에 기술되었듯 단단히 고정된 벽면 속에는 사실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삶의 연속성이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민정 작가의 벽면은 미시적인 동시에 거시적 세상의 모습을 띤다. 우주의 중심은 달이 되고 달의 표면 속에서 작가가 그려낸 이미지들은 작가가 보고 있는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을 반복하는 함축적 세상을 만들어낸다. 벽면 속에서 작가의 모습이 있고 그가 시도하는 세상과의 대화를 연결해줄 작은 균열이 생성되기도 하고 작가가 깎아내는 흙벽의 굴곡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반복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삶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설치 작업 「비나이다 비나이다」는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의 흔적을 남긴다. 이는 비누로 만들어진 형상을 두고 실제로 접촉하는 동안의 형태가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영상이다. 점점 소멸해가는 비누 흉상을 통해 경험적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이 방법론은 흙벽을 조성하여 깎아 나가면서 표면의 이미지를 변화하게 만드는 행위의 기존 작업과도 상통하는 개념을 가진다. 물질적 매개가 되는 흙으로부터 작가가 행위하는 '깎아내기'의 경험이 그러했듯, 이 비누 조각에 대한 애초 작가의 의도는 더 실용적이며 직접적인 방법으로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작가는 물리적 변화 너머의 감정적인 변화를 겪는다. 비누 조각은 작가의 흉상을 만든 작업인데, 이를 만져서 점점 사라지는 자신의 얼굴을 대면하는 동안 작가는 결국엔 모든 변해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 안타까움, 자꾸만 사라져가는 현재의 소중함 등 감정적 요소가 남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과의 예기치 못했던 조우는 벽면을 긁으면서 작가가 경험하고 마주치는 우연한 효과, 즉 벽의 틈과 균열 등을 마주하면서 가능성을 확장하게 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기법과 기교, 실험 등이 먼저 눈에 띄는 단계에 있는 우민정 작가의 다양한 시도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이 작가의 행위가 중첩되면서 다양한 경험이 되고 이 경험들이 벽에 새겨지면서 추출되는 것들이 다음 단계로 연장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벽에 남겨진 흔적은 작가의 기억과 경험의 기록이며, 즉흥적인 움직임에서 발화된 순간의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긁어내고 접촉하면서 변화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또 다른 생명력을 가진 어떤 것으로 발화할 수 있는, 흔적 이상의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행위와 기록이 작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가능성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도 우민정 작가의 작업 태도로부터 기대되는 지점이다. ■ 김인선
Vol.20200709c | 우민정展 / WOOMINJUNG / 禹旼廷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