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ile Masterpieces

신호철展 / SHINHOCHEOL / 申豪澈 / mixed media   2020_0703 ▶ 2020_0718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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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에이앤에이갤러리 ANA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76 Tel. +82.(0)2.730.1995 blog.naver.com/ana-gallery www.instagram.com/anagallery_official

우리들의 외딴섬, 아트 월드 ● 갤러리에 들어서면 반들반들한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박스들이 보인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해외로 운송하는 크레이트 박스다. 얼핏 보면 평범한 나무 박스를 가져다 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지점토를 주물러 만든 '가짜' 박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울퉁불퉁한 표면 위로 얇게 칠해진 수채물감,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넣은 "FRAGILE", "HANDLE WITH CARE"라는 문구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실제로 무언가를 담을 수도 없는 박스들이 왜 여기에 놓여 있는 것인가? 2017년, 신호철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설치 스텝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각국의 파빌리온 앞에 줄지어 있던 대형 크레이트 박스들은 아우라를 뿜어내며 선망의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 예술계가 벌이는 초호화 이벤트 가운데, 특히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것은 작가로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므로, 아직 주류에 진입하지 못한 작가들은 성공의 상징물인 크레이트 박스를 가만히 노려볼 수밖에 없다. 언젠가 자신의 작품도 저 박스 안에 담길 날을 고대하면서 말이다. 신호철도 예외는 아니다. ● 「Fragile Masterpiece」 시리즈는 어떤 작품을 '훌륭한' 작품으로 간주하는 인정 시스템을 모방하면서, 이 제도의 취약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우선 크레이트 박스라는 소재 자체가 이중성을 띤다. 견고하게 제작된 박스의 겉면에는 '취급 주의' 표시가 새겨지며, 일차적으로 이 문구는 안에 담긴 작품이 '깨지기 쉬운(fragile)' 것임을 알린다. 그런데 이러한 경고는 단순히 물리적인 파손 위험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박스 속 작품이 갖는 '명작(masterpiece)'의 권위마저 절대적이지 않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크레이트 박스가 문화권을 넘나드는 국제적 이동에 필요한 것임을 떠올릴 때, 이 통찰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실, 예술제도는 외부의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의해 재구성되므로, 명작을 가리는 결정은 항상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예술계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뉘앙스를 풍기면서, '순수예술'이 마치 외딴섬처럼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영구불변의 가치를 지닌다는 믿음을 (여전히) 재생산한다. 신호철은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허상임을 폭로한다. 특히 난파선의 갑판처럼 산산조각 난 크레이트 박스는, 예술계 내외적인 압력에 의해 폭발한 뒤 헛되이 부유하는 미적 가치들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이사이에 놓인 「황금사자상」, 「올해의작가상, 에르메스미술상」은 권위 있는 미술상을 패러디한 작품이며, 「계약서」는 지점토 위에 유명 전시 공간의 계약서를 베껴 위조 서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모방 과정에서 세부를 놓치지 않는 집요함을 보이는 한편, 어린아이가 만든 것처럼 귀엽고 엉성한 미감을 공유한다. 이는 신진 작가로서 절실히 예술계의 인정을 바라면서도, 그런 노력 자체를 무용한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제스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진지함 속의 유머'는 「Wish List」 시리즈에 속한 두 점의 회화에 압축된다. 하나는 삼청동에 위치한 어느 유명 갤러리에 크레이트 박스 작품이 걸려 있는 상상을 그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명 브랜드의 가죽 자켓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 두 작품을 나란히 보면, 이제 쇼윈도에 걸린 옷처럼 작품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디스플레이 되는지'가 제일 중요해진 상황, 즉 작품이 욕망할 만한 대상으로 '브랜딩'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재를 씁쓸한 웃음으로 직시하게 된다. ■ 홍예지

Vol.20200705f | 신호철展 / SHINHOCHEOL / 申豪澈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