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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주최 /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주말,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421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0)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치열한 무대, 고요한 풍경 ● 한성우의 그림에서는 그리는 과정에서 작가가 화면 안에서 고군분투하면서 겪어낸 일련의 드라마틱한 과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림을 바라보는 자에게 그 화면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작가의 궤적을 복기하게 만드는 상상의 무대가 된다. 무대의 주인공은 이미 사라졌고, 행위의 잔재들만이 그가 몰입했던 시간의 밀도를 전한다. 관람자는 그 모든 과정이 소진되어 흔적만 남은 결과로서의 그림을 본다. 그리는 행위가 끝나고 남겨진 부산물들이 곧 완성된 그림이 된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성우의 작업에서 화면을 떠나고 없는 작가의 부재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증명되는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상 한성우의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도 누군가 작업한 자취가 남아있는 빈 목공소가 그에게 환기시켰던 인상이었다. 눅진한 삶의 고단함과 노동의 치열함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자취들은 우리들 주변 곳곳에 있다. 지표 없이 떠도는 공간은 그곳에 있는 존재와의 관계로 인해 하나의 장소가 된다. 한성우는 아마도 그 장소에 남겨진 어떤 것들에 감정을 이입하여, 한때 그곳에 살아 있던 존재들의 궤적을 복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들은 그리는 행위에 의해 되살아나서, 캔버스 평면 안에 펼쳐지는 일련의 현재적 사건들로서 체현된다. 화가의 감각으로 소환하여 생기를 부여받은 자취들은 그리는 행위의 종결과 함께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캔버스는 그리는 자의 존재가 흔적을 남기는 또 하나의 장소가 되었다. 그 안에는 작가의 감정적 응어리로서 쌓인 물감 층들, 단번에 가로질렀다가는 이내 잘게 쪼개지는 세필, 예민하게 긁어낸 상처 같은 흔적에 이르기까지, 고조되었다가 결국엔 막을 내리게 될 일련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 작가가 주인공이 되는 이 무대의 현장에는 관객이 없다. 관람자는 무대 위를 종횡하던 붓질의 열기에 대한 잔존물로서 쌓여진 물감의 얼룩을 볼 뿐이다. 여기에서 주지되는 것은 치열한 사건이 방금 끝난 뒤의 정적의 한 순간이자, 폐허의 인상이다. 한성우의 작품이 주는 매력은 이처럼 작가가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몰두했던 치열함과 그것이 모두 끝나버린 후의 고요한 정적감이 함께 느껴진다는 점에 있다. 그 안에는 화면에 자신을 쏟아부은 듯한 밀도 높은 집중감과 함께,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관망하려는 시선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러한 특성은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 발생시킨 사건에 몰입하고는 다시금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대상화함으로써, 몰입과 관조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태도에 의해 획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성우의 작품을 어떤 사건의 무대인 동시에 풍경으로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된다. 예컨대 12개의 패널이 연결된 「무제 21(Untitled no.21)」(2018)과 같은 작품에서, 선의 강약과 붓터치의 물성으로 남은 그의 자취들은 연속적 화면 배치에 의해서 행위의 흔적을 주지시키는 한편, 흡사 숲과 같은 광활한 풍경의 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 「환절기(In-between seasons)」(2019)에서 한성우는 한 캔버스 안에 여러 개의 창문들이 열리는 듯한 다양한 크기의 프레임들을 도입했다. 개별적인 프레임 안에는 작가가 캔버스 화면과 투쟁했던 시간의 밀도와 그가 체감한 계절의 감각, 화면에 쏟은 감정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파편적 프레임들이 무작위하게 연결된 그림의 구도 속에서, 그 흔적들은 다시 전체적 시퀀스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관람자는 하나하나의 개별적 드라마를 갖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의 자취를 따라 화면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가는 이내 카메라를 줌 아웃(zoom out)한 것과 같은 화면 구성을 따라 나와서, 마치 먼 풍경을 바라보듯 그림 전체를 관망하게 되는 것이다. 송은 아트큐브의 개인전에 전시된 최근 작업 「균형 (Balancing)」(2020) 연작에서도 프레임의 연속적 배치가 시도되었다. 각각의 프레임 속 이미지들은 흡사 얼룩진 벽과도 같지만, 그것은 재현된 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린 흔적이 얼룩으로 남은 표면으로서의 벽이다. 한성우는 그렸던 것을 지우듯이 흐릿하게 만드는 방식을 통해서 개별적인 화면에 대한 몰입에서 한층 더 벗어난다. 결과적으로 그림은 더욱 먼 곳에서 관조하는 풍경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화가의 자취가 담긴 캔버스라는 하나의 장소를 풍경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화면에 남겨진 것은 풍경을 그린 붓질이 아니라, 그 자체로 풍경이 되는 붓질인 것이다.
몰입하는 행동과 생각하는 시선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냄으로써, 한성우는 자신이 작업실에서 보내왔던 시간들을 그의 전체적 삶의 장면 속에 위치시킨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리기를 지속해야 할 어떤 이유를 찾고 있는 듯하다. 한성우의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게 되는 것은 쉽사리 포착되지 않는 것을 붙잡기 위해 하나하나의 붓질로 쌓아나간 예술가의 시간이다. 공기처럼 언어화되기 어려운 비정형 상태로 존재하는 삶의 감각들을 포착하려는 그리기의 과정은 목표의 완벽한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성을 담보하고 있기에 한성우의 그리기는 부단한 만큼이나 더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부정사를 쌓아서 하나의 긍정의 문장을 만드는 느낌"이라고 언급했듯이, 추구하는 것을 향한 시간의 쌓음이 만들어낸 풍경은 실상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물성만큼이나 구체적이다. 고군분투한 자취가 남겨진 화면을 통해서, 이제는 화면이라는 그 장소를 떠나고 없는 작가의 부재를 통해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그리는 자로서 쌓아온 예술적 시간의 부산물인 그의 치열하면서도 고요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 이은주
균형 ● 한성우의 회화는 벽이나 바닥에 남은 흔적을 닮아있다. 흔적은 어떤 의도로부터 탈락된 자리에 남는다. 흔적은 과정의 증거다. 시작과 끝이 정해진 무수한 시간을 받아낸 얼룩이다. 쌓이고, 떨어지고, 긁히고, 무너지고, 다시 쌓이는 흔적은 추적할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사건에서 비롯하는 분명한 사실들이 존재하는 상태다. 한성우는 이런 흔적의 성격을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그리는 태도이자 방법으로 옮겨왔다. 납작한 캔버스 표면 위에서 물감에 물감이 덧씌워지고, 뭉개지거나 떨어져 나가고, 스미거나 무너지는 그의 회화는 이미지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끊임없이 유보하면서 그가 바라본 대상의 현실이 고정된 인식에 붙잡히기 이전의 감각을 드러낸다. ● 『균형』은 보고 그리는 행위 안에서 대상과의 거리 감각을 느끼고 조율해 온 과정을 두 가지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다. 뭉치고 흩어지면서 전시장 벽면을 점유하는 「사계-환절기」 시리즈는 흔적의 방식을 계절과 계절 사이, 언어로 고정되지 않는 시간인 환절기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상상한 장소의 풍경을 그리고 지우기를 거듭하는 작가의 제스처는 사건의 증거로서 캔버스 위에 켜켜이 축적된다. 세 폭이 나란히 놓여 대형 화면을 구성하는 「균형」 시리즈는 작업실 내부의 벽을 경계로 나뉜 작업의 흔적들을 본 것을 실마리 삼아 보다 직접적으로 표면의 이미지를 그렸다. 상상하거나 기억 속에 남아있거나 실제로 본 벽의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질감으로 한 화면 안에서 교차하면서 보는 이의 시선이 표면에 함몰되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게 한다. ● 대상은 지각하는 순간을 둘러싼 분위기와 분리될 수 없고, 풍경은 그렇게 매 순간 새롭게 탄생한다. 한성우의 회화는 비교적 선명한 이미지에서 점차 대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작업으로 이동했지만, 그 대상은 이미 그리고 여전히 부수적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었고, 캔버스 표면에 드러나는 작가의 제스처는 선명해졌다. 건물 옥상의 냉각탑을 그릴 때도, 무대의 뒤편이라는 장소를 상정하고 그곳을 그려나갈 때도, 그의 그리기는 자신이 보는 행위를 통해 감각한 풍경의 분위기를 체현하는 것이었고, 그 이미지는 구체적인 감각을 좇아온 경로가 된다. 지금 바라보는 어떤 자리가(상상이건 실재이건) 의미에 포섭되지 않게 부단히 붓질을 번복하는 한성우의 그리기는 구상과 추상의 관습적인 구분 사이에서 또 다른 자리를 상상하게 한다. ■ 송은 아트큐브
Vol.20200626f | 한성우展 / HANSUNGWOO / 韓成宇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