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민수_김승현_김윤경_박보정_이은재
주최 / (재)행복북구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어울아트센터 대구시 북구 구암로 47(관음동 1372번지) 갤러리 금호 Tel. +82.(0)53.320.5120 www.hbcf.or.kr
창작에 임하는 진솔한 작가적 태도 ● 『2020 Eoul's View Project』는 김민수, 김승현, 김윤경, 박보정, 이은재 작가 5인이 가지는 창작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매체와 표현기법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그동안 작가들은 자신의 관점과 경험에서 우러난 조형적인 독창성을 작품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또한 공통적으로 행복북구문화재단의 『유망작가 릴레이』展을 통해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여러 모습을 회화와 설치 작업으로 표현했으며,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모 선정 등의 다채로운 활동으로 역량을 쌓아왔다. 전시는 시각예술로 풀어내는 작가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Ⅰ. 인간의 활동을 저변으로 하는 인간 행동 중 가장 비중이 큰 인간 행위는 '보는' 행위 이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먹어 보고', '입어 보고', '말해 보고' 등처럼 ' ~ 해 보고' 란 언어적 표현으로 이행하는 점을 보더라도 자명하다. '봐(View)' 라는 언어적 의미는 보지 않으면 어느 것도 어느 행위도 다음 단계로 이행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포용한다. 'View' 라는 사전적 의미를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일련의 해명 차원에서 언급해 보자면 그 말은 명사로는 경관, 시야, 견해, 관점 등으로, 동사로는 '바라 보다', '둘러 보다', '여기다' 등을 함의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본 전시의 주요 요체가 관객을 위한 행위적 요체로서 '봄(View)'이란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작과 전시기획이란 점이다. 이는 '본다'는 작가적인 예술적 행위의 구조 속 '봄(View)'의 관점을 관객으로 이동시켜 양자가 공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만큼 전시를 통해 관객들은 작가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봄'이란 행위와 그에 따른 인식 및 창작들이 작품을 대하는 관객인 자신들과 어떤 공감을 유도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작가들과 자신들 간의 세계에 대한 '봄'이 어떠한 차별성을 유도 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주요 요체라 할 수 있다.
Ⅱ. 작가들은 작가들 나름의 '보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조망한다. 또한 이로써 작가는 그들 나름의 세계에 대한 세계관이자 인식, 관념을 형성한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들의 보는 행위는 작가들의 행위적 결과물들로서 작품 및 작가적인 예술적 행위들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만든다.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각양의 예술적인 시지각적 상들은 작가들 나름의 세계를 대하는 작가적 '관점(View)'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행복북구문화재단 『유망작가 릴레이』展인 『2020 Eoul's View Project』展 전시기획은 '창작에 대한 다양한 작가적 태도'라 명명된 전시를 전제로 '작가들 자신의 관점과 경험에서 우러난 조형적인 독창성'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는 이들 전시를 통해 '시각예술로 풀어내는 작가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 중 하나' 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Ⅲ. 작가들의 예술적인 세계관적 도식은 다양하게 현시되는 만큼이나 명료함과 불명료함을 동시적으로 수반한다. 그런 만큼 작가들에 의해 양산된 작품들을 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쉽고도 또 다른 한편으론 어렵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의 예술적이자 시각적 요소들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작가들 마다 각기 다른 관점과 방법을 동원한 결과물인 작품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김민수 작가의 작가적 관점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상적 욕망'이 어떻게 발현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그래서 작가는 욕망이란 요체를 일상의 '영웅'에 두고 이 '영웅들의 이야기'를 예술적 요인들로 발현시키는데 주력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일상화해 '소비할 수 있는' 것으로 치환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것들 만화영화 속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사소 하지만 우리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일상의 소품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이들 예술로 환원된 사적인 욕망의 소유물들이 결국 소비로 이행하기를 바라는 작가적 바람, '아트 소비'로 이행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 김승현 작가의 회화관은 세계의 편재를 이루고 있는 현시된 이미지들에 대한 해체와 관계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해체가 아닌 해체된 부분들의 조합을 지향한다, 그래서 작가는 색채를 동원한 'Composition'이란 문자적 요소를 작품제작의 요건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시각적 이미지들의 범람과 그 이미지들의 서로 간의 간섭에 대한 '제약'을 위한 예술적 해명을 도모한 결과이다. 주목할 점은 이때 작가가 말하는 제약은 이미지들의 실제적 경계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제약이 각각의 이미지들이 스스로 확립하고 있는 경계의 확장과 와해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 작가는 이미지들의 재배치이자 재조합을 스스로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현을 작가는 색채와 문자의 반복적인 재배치이자 재조합을 통해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들 색채적이자 문자적 제약을 위한 '구성(Composition)'이 창작적 형성의 모토라 간주했기 때문이다. ● 김윤경 작가의 작품은 '노랑'이란 색채적 환경이 보는 이의 감정을 압도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노랑이란 색이 갖는 의미가 기억의 혼재, 기억의 혼미, 기억의 결핍과 연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기억이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시각적 힘을 상실한다. 이른바 기억의 퇴색을 초래한다. 이러한 기억의 퇴보이자 퇴색은 기억의 시간적 경과와 관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는 기억의 힘 발휘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였고 그 장치를 다름 아닌 '박물관'의 세계사적 소환에 두었다. 박물관에 전시되고 수장된 유물들이 기억의 퇴화이자 기억의 모호함을 늦추어 주거나 회복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작가는 기억에 대한 의미를 박물관과 연계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기억을 이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박물관 속 전리품이자 수장품들을 매개로 작가 자신의 세계관적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 박보정의 'O Wonder' 씨리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놀라운 시각적 고발을 기반으로 한다. 삶에 대해 작가는 '워매 놀라우이'라고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애초에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놀랍지 않은 이러한 일상 속 기억의 편린들을 선묘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림 속 이미지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워매 놀랍네'라는 의미의 'O Wonder'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이란 편린, 즉 조각난 기억의 개별적 부분들은 그리 대단치 않지만 그 기억이란 편린들의 조합은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삶 속 편린들을 나열하면서 조합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일상 속 실재하는 기억의 파편들을 선묘라는 꼴라쥬 형식으로 조합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 이미지들은 그렇게 우리들을 '놀래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이들 꼴라쥬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놀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시각적으로 현시해 내고 있는 것이다. ● 작가 이은재는 현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현실을 허상이라 부른다. 그가 원하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허상이라 여기는 현실, 즉 작품세계를 지칭한다. 이러한 측면은 작가가 '눈앞의 이미지들은 수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변모하기' 때문 이란다. 그 변모의 과정이 현실을 허상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현실 속 이미지들의 끊임없는 '모임'과 '흩어짐'이 변모를 선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세계적 관점은 이들 두 세계, 즉 '현실이란 허상'과 '허상이란 현실'의 예술적인 조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들 과정을 통해 작가는 현실이란 허상을 현실화해 내고 있다. 따라서 진일보하게도 작가는 주어진 조건을 이미지로서의 형상조합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체적 사물들의 조합을 동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관점을 표명하고 있다. '설치' 라는 시각적이자 조형적 표현 방식을 통해 실물들을 조합해 나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Ⅳ. 작가들의 예술관은 그들 나름의 '관점(View)', 즉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이나 그 각각의 요인들이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유도되는가는 그렇게 중요치 않다. 작가들에게 주어진 모든 예술적인 관점이자 세계관은 작가들이 살아온 그 간의 작가적 체험이자 삶을 근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이나 이들 관점이자 세계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작가는 없다. 또한 전제한 바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관람자들 역시 없다. 그래서 작품을 대하는 관람자들은 작가들의 세계관적 발로인 작품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관념과의 조우, 작가가 표출해 낸 작품 속 세계관을 자신의 세계관과 연계시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2020 Eoul's View Project』展을 새겨 보자.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조망을 위한 '뷰(View)'를 위해... ■ 홍준화
부귀영화는 작업의 모티브가 된다. 현대인의 욕망을 귀엽고 밝은 만화 속 영웅들의 모습에 담아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고 싶다. 해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복을 받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다. 서민들의 염원을 담아 목욕재계하고 기도한 후 부귀영화를 위한 민화를 그렸던 옛날 무명작가들처럼 복을 담은 인형 - art toy로 염원을 확장한다. art toy를 보며 '즐거운 감정을 소비'하고, 캐릭터가 그려진 옷에서 '복을 입기'가 표현된다. '아트를 소비하다' ■ 김민수
창작을 촉발하는 것은 새로운 영감 보다는 새로운 제약이 아닐까. 어느 날 컴퓨터 화면에서 마주한 나와 비슷한 그림이, 어느 전시장에서 느낀 익숙한 분위기가, 다시 그림을 덮고 엎고 지우게 한다.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소재가 있을까? 새로운 붓질이 있을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이 가능할까? 그래서 결국, 나는 제약에 반응하는 모습이 이미지가 되는 그림을 그리려한다. 넘지 말아야 되는 경계를 정하고, 경계를 따라 붓을 움직이고, 경계와 경계 사이에 색을 채우고 혹은 이 제약을 모두 무시하며 캔버스 위 제약에 반응한다. 그리고 신체가 캔버스에 반응을 멈추는 시간까지 반복한다. 그 때 마주하는 이미지는 새로운 것일까? ● 컴포지션 시리즈는 악기로 음악을 연주할 때 악보를 읽는 것처럼, 밑그림이 그림과 조각을 제작하도록 만든 악보라 상상하며, 악보를 읽고 연주하듯이 붓으로 칠하고, 손과 도구로 만들어 붙이기를 반복하며 제작한 작품들이다. 보통은 악보에 그려진 대로 연주를 하지만, 연주자의 악보 해석과 편곡에 따라 곡의 분위기와 연주가 전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컴포지션 시리즈 역시 같은 밑그림에서 그리기, 만들기가 시작되지만 과정과 결과물은 각 작품마다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다. ■ 김승현
인터넷을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의 홍수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순수 회화'란 용어는 빈껍데기만 남은 말 같다. '무엇을 그릴까'라는 화두는 역사를 거치며 더 많은 레퍼런스를 거르고도 남는 그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하겠지만 제목만 바뀐 것일 뿐 내용이며 심지어 등장 인물의 이름도 비슷한 드라마나 영화, 화성이 거의 똑 같은 여러 음악들처럼 '독창성'이란 '저작권'이란 용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등장하던 여러 오브제들을 변형, 재구성하여 회화, 설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고 화재로 인해 원본이 소실되고 흑백의 사진만 남아 있어 원래의 색채를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카라바조(Caravaggio)의 작품을 모사하여 나의 색채를 가미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렇게 패러디한 옛 대가들의 작품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재패러디하고 변형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습관이나 패턴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천, 마스킹 테이프, 프린트, 미러지 등의 사용을 통해 물감과의 이질감 혹은 조화를 이끌어 내는 우연적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투명 미디움을 겹쳐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추이를 나타내고 싶었다. 두 개의 원본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결국 어디에나 있는 원본, 하잘것없는 것들이 갖는 의미에 대한 강한 그리움의 표현이며 내 안에 무수히 담겨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나를 찾는 일, 나만의 바니타스(Vanitas) 화법에 관한 것이다. ■ 김윤경
우리의 삶은 기억에 각인되는 특정의 사건들이 차지하는 시간보다 그것들의 사이를 지탱하는 평범한 일상의 시간이 더욱 많다. 평범한 일상을 너무 당연시 여기지만, 당연한 듯한 일상은 당연하지 않은 비일상을 통해 그 가치를 내보인다. 지금, 어느 평범한 날의 당연한 일상을 영영 잃어버렸다. 그것이 물리적 시간에 의한 자연적 소실이라면 이만큼 비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의 경과로 망각하기에는 그것이 너무나 선명한 까닭에, 그것은 마치 방금 꾼 미몽 같다. 꿈은 사적인 삶이나 일상이 낳은 우회한 파편들의 모습이다. 또한 그것들을 함축하여 저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 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한 이미지들을 캔버스 속 공간에 콜라주를 통해 그 파편들을 재배치하고 덧붙여, 무질서하고 어겹된 꿈길의 모습처럼 저장한다. 물리적인 시간과 거리를 초월한 꿈의 공간에서 만큼은 조명 받지 못했지만 항상 우리 곁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그 평범한 일상이 살 수 있도록, 그 곳에 그것을 붙잡아 두고 싶다. 내 앞에 놓인 비일상이 다음 삶의 평범한 일상이 될 때까지. ■ 박보정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해가는 이미지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조합되었다가 흩어지고, 또 다시 조합되기를 반복한다. 현실은 쉼 없이 변해가는 허상들로 가득 차 있고,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허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는 실상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완전한 것에 대해 인간이 꿈꾸는 것은 원래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고, 모든 일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명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관계맺음의 과정 중, 어느 순간 허상의 이면에서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던 실상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 이은재
Vol.20200608b | 2020 어울즈 뷰 프로젝트 2020 Eoul's View Projec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