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희정_석다슬_이경민_한우리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17717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 11 www.17717.co.kr blog.naver.com/sunmoonceo
우리는 항상 지나간 것을 떠올리고, 이제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라진 것들을 열망한다. 이번 전시 『절대사라지지않는다』는 4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사라짐'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대상의 상실 과정을 경험하는 주체의 태도를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예술작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사라짐'은 어찌 보면 너무 진부하고 추상적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거나 떠나 보냈을 때 남는 애도, 그리움, 혹은 주체 자신의 제거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본 전시에서는 '상실 이후'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대상이 사라지는 과정을 경험하는 주체의 다양한 시선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곧 사라질 것을 알지만 그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사라지는 대상을 붙잡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라진 이후 남겨진 기억을 환기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표상되는지 4명의 작가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한우리의 2채널 영상 「희미한 파타 모르가나」(2020)는 작가의 아버지가 치료를 위해 침을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컬러와 흑백으로 구성된 영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소멸해 가는 존재를 보여주며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은 욕망을 시적이고 정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 한 자리에 놓여 있는 과일, 흘러내리는 양초, 끓어오르는 커피포트 등의 미장센은 한 폭의 정물화같이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끊임없이 변하는 물질의 상태를 보여준다. 침을 놓으며 미세하게 움직이는 노인의 손 근육은 숙련하기까지 쌓아온 오랜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게 하며, 손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간의 세월이 새겨진 지층에 다름없다. 관람자는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일련의 영상을 보며 그들의 행위에 개입하지 못하고 마치 창을 통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강희정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떠올리는 행위로서의 회화작업을 선보인다. 작가에 따르면 이러한 작업 형태는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는 대상을 다양한 이미지로 떠올리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과 인물은 그 다양한 이미지들 중 하나다. 그림 속 인물들은 반쯤 돌아서서 있거나 어두운 배경에 묻혀 있다. 구체적인 표정과 형태가 생략된 인물의 모습은 작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언젠가 만났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기억에서 조금씩 지워져 간 사람들은 그의 회화에서도 반쯤 추상화되어 일부분만 그려져 있다. 인물화와 비슷한 맥락에서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 책이라는 매체를 사용한다. 그러나 강희정은 책의 내용(텍스트)보다는 사라질 것들이 담겨 있는 시간 층위의 산물로서 책 그 자체에 주목한다. 「책 상자」(2018)의 경우, 지난 전시의 리플렛이나 엽서로 콜라주하여 종이상자를 조각형태로 만든 작품으로, 작가는 책 자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멸해 가는 기억을 책의 내용이 아닌 책이라는 공간 그 자체로 기록하는 것이다.
석다슬은 이미 사라져 부재한 존재,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에 생겨난 또 다른 형상에 주목하여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작가는 케이크 상자를 화폭에 담았는데, 달콤한 생크림이나 초콜릿 케이크를 그려 넣는 대신에 빈 상자를 택했다. 탁한 오렌지, 올리브, 회색의 색 대비는 하루가 끝나갈 때의 저녁노을처럼 축하 이벤트가 끝난 후 밀려오는 아쉬움과 공허함과 닮아있다. 그러나 관람자는 처음 화면을 마주할 때 이것이 케이크 상자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한다. 클로즈업하고 화면을 잘라내어 상자와 그림자 사이에 기하학적인 도형을 남겨놓았다. 이러한 효과를 통해 작가는 관람자가 화면의 대상이 무엇인지 바로 인지하기 보다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관찰을 유도하며,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과 재현 속 시간이 얽혀 복수의 시간성을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이경민은 버려진 물건, 이미 경험했지만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장소, 공간 등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존재하는 불완전한 것들을 건축적인 설치 작업으로 표상한다. 거처를 자주 옮겨 다닌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 공간과 장소에 버려진 오브제를 수거해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낮의 집, 밤의 집」(2020)은 작가가 청주 레지던시에 거주하며 수거한 버려진 기물들로 제작되었다. 연극 무대처럼 세팅되어 있는 테이블과 작은 소품들은 일상의 사물들이지만 왠지 익숙하지 않다. 인과관계 없이 병치된 사물들은 오히려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있어야 할 내용물이 비어 있기 때문이리라. 프레임만 남은 액자, 빈 의자, 빈 컵, 빈 접시...모듈 형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놓이는 공간에 따라 가변적으로 그 형태가 변하듯, 버려지기 전 담고 있었을 추억, 손때가 제거되고 외피만 남은 오브제들은 관람자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중첩되어 각기 다른 시공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어떤 존재이든 시작과 끝이 있다. 존재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자연스럽고 불가역적이다.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일까? 우리는 사라지는 혹은 사라진 대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며 또 떠올린다. 장 보드리야르는 『사라짐에 대하여』에서 “아무것도 간단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은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라고 기술한 바 있다. 4명의 작가들은 '사라짐'을 둘러싼 개인의 경험을 각기 다른 매체와 예술실천으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들의 작업에서 대상의 상실, 사라짐은 절망이나 슬픔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라짐'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끝내 사라지지 않은 채. ■ 현오아
Vol.20200528f | 절대사라지지않는다-IT NEVER DISAPPEAR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