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청북도_청주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현대 도시에서 사라진 것 중 하나는 '적막함'이다. 낮이나 밤이나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각종 소음과 빛으로 가득하다. 평범한 현대 도시인에게 '고요하고 쓸쓸한' 상황에 놓일 기회도, 그런 감정을 느낄 기회도 좀처럼 드물다. 출퇴근길 비좁은 버스, 옆 사람에게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식당, 옆 사람의 모니터가 훤히 보이는 사무실, 작은 소음까지 다 전달되는 아파트, 실시간 댓글이 빗발치는 SNS 속 세상까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소란스럽고 질척거린다. 현대 도시의 미술 역시 세상을 닮았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심을 끌고, 대화를 촉발한다. 세상이 소란스럽듯, 미술도 소란스럽고, 세상의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로 왁자지껄하다.
이미연의 회화를 보고 오랜만에 '적막함'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아는 얼굴은 고사하고 사람 자체가 없을 것 같은 깊은 숲속을 걸을 때를 떠올렸고, 시야에 건물과 도로 대신 산과 하늘, 구름만 보이는 순간을 상상했다. 막막하고 무섭지만, 한편으로 작은 빛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순간, 자연 속의 한 존재로서 내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되어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던 그런 순간들이 말이다. ● 쿠어(Chur)와 마톤(Mathon) 지역에서 그린 작품들은 이른 아침부터 한밤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산과 하늘, 구름, 방목 중인 동물 몇 마리 등 화면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간소하다. 산 중턱에 걸친 구름, 저녁 해가 만든 노을 등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지 않을 자연의 변화가 더 크고 강렬하게 드러난다. 「Calanda_7:50 am_27/02/19」에 아침 하늘은 맑고, 「Calanda_9 pm」에서는 신비스러운 보랏빛을 띠었다가, 「Moon over Calanda」에서는 캄캄한 먹빛이다. 도심에서 시간의 흐름, 낮과 밤의 변화를 전등을 켜고 끄는 것으로 간략하게 체험하는 것과 달리, 변화를 만들어내는 자연의 힘이 더 선명하고, 인간은 그 변화에 따르게 된다. ● 엥가딘(Engadin) 지역에서의 작품에서는 거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더 깊게 느껴진다. 산장에서 내려오면서 작가는 "인간의 삶이 속하지 않는 세계에서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작업 노트에 남겼다. 「Engadin Woods」 시리즈를 비롯한 작품에는 곧게 수직으로 뻗은 나무숲이 화면 가득 그려져 있다. 이 숲의 주인은 견고하게 서서, 그 땅을 지켜온 나무들이며, 인간은 조심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단숨에 인간을 집어삼킬 수 있는 거대한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그 숭고함의 미학을 표현했던 것처럼, 이미연의 회화에서도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이 갖게 되는 두려움과 놀라움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진정한 황야의 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사흘 동안 3000m 높이의 산들을 넘고, 그 산의 계곡, 빙하를 건너며 단 한 사람도 만나지 않는, 거대한 자연 안에 던져진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작가 노트는 작가가 마주한 풍경을 통해 체험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러한 자연을 만난 작가의 태도이다. 작가는 그러한 경외감에 짓눌려 허무주의에 빠졌던 낭만주의자들과 달리, 그 속에서 자신의 몸에 그 경험을 새기고, 다시 몸으로 그 경험을 표현해낸다. 거대한 나무 아래 핀 작은 꽃들을 조심스레 돌보듯 (「Engadin Woods #30」),그리고 높이를 알 수 없게 뻗어 오른 나무를 거침없이 수직으로 내려긋고, 그 위에 세월의 두께를 그려 얹었다. 빽빽한 숲을 멀리서(「Engadin Woods #31」)도 내려 보며 그 넓이를 가늠하고, 「Engadin Woods #27」, 「Engadin Woods #19」 등의 작품에서는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연약한 꽃, 굳건한 나무, 다 제각각인 나뭇가지와 표면과 그것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숲속, 자연에서 부분과 전체를 읽어낸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원근을 강조하지 않은 회화이지만, 이미연의 풍경을 볼 때 그림 속의 인물로서 나무를 올려다보고, 고개를 숙여 꽃을 내려다보며, 숲속의 철길을 따라가 보게 된다. 작가는 거리를 두고 풍경을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산에 몸을 비벼가며 걷고 오르고 내리고 오롯이 몸으로 기록하고 눈으로 기록하고 느낌으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작가는 경외감의 대상인 풍경 속에 들어가, 그 속에서 걷고, 머물면서 온몸으로 겪어낸 경험을 그린다. "정신적 한계가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 두려움이 무엇인지, 높이와 넓이가 무엇인지, 산장의 안전함이 무엇인지, 이슬이 무엇인지, 제일 작은 꽃들의 색이 무엇인지,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작업 노트) 작가가 '알게 된 것'들은 작가의 몸을 거쳐, 관람자의 몸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태도는 풍경 속에 들어가 길을 걷고 폭포를 올려다보며 회화 자체를 풍경 속에서 '유(遊)'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산수화의 관점을 연상시킨다. 산수화가 감상자 역시 그 풍경 속으로 함께 들어가 두루마리를 풀어가면서 여행하도록 했던 것처럼, 이미연의 회화는 산, 눈, 나무, 구름으로 이루어진 풍경 속으로 이끈다. 즉, 여기서 회화는 시각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을 권유하는 주체가 된다.
상대적으로 좀 더 인위적인 풍경, 건축물, 평화로운 풍경 등을 그린 벨기에에서의 작품에서는 인간을 압도하는 대자연의 위협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서도 기운 생동하는 자연과 사물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이 풍경 속에서 살아 있는 것도 살아 있고, 구름과 빛처럼 생명이 없다고 우리가 믿는 것들도 변화무쌍하다.
유례없는 전 지구적 팬데믹을 겪으며, 현대도시의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생사를 가르는 위협 앞에서 중요한 것과 아닌 것, 지켜야 할 것과 아닌 것들을 예민하게 구별해 내야 한다. 우리가 지배한다고 믿었던 것들에게 역공을 당하고, 견고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새롭게 세워야 할 가치관과 기준 중에서 가장 먼저 짚어볼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자연과의 관계일 것이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이 개체 중 하나로 머물고 있는 대자연을 바라보고,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하고 조화롭게 살 방법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이미연의 회화는 개인적 이유로 머물게 되었던 특정한 지역에 대한 기록이지만 낭만적인 이국 풍경이 아니다. 인간이 환경을 체험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제안이면서, 소란스러운 미술 동네에서 벗어나서 바라볼 때, 여전히 남는 미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만약 이 그림들이 낯설게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미술 동네의 '유행'에만 함몰된 상태라는 뜻이다.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루고,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도 동시대 예술의 역할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처럼, 미술계의 유행과 사교활동, SNS를 걷어냈을 때, 무엇이 우리가 믿는, 우리가 지향하고 실천하는 미술일까. 이미연의 담담하고 간결한 화면 앞에서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산, 스위스 ● 2018년 4월, 선물같이 찾아온 마톤 Mathon 에서의 한 달살이,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2018년 12월부터 다시 들어와 살게 된 스위스의 시골 마을 쿠어 Chur. 한국의 산에 익숙해서 그런지 주위에 애착이 느껴지며, 한편 도시에서 태어나 멀리 바라보기만 하고 자주 가지는 않았던 산을 이곳에서는 몸을 비벼가며 걷고, 오르고, 내리고, 그 안에서 몰랐던 경이로움, 기쁨, 두려움을 느꼈다. 이곳의 산은 너무나 높고 인간이 속할 수 없는 거대한 영역으로 다가오며 그 안으로 내 두 다리와 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은 오래간다. 자연스레 이 경험들이 작업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오롯이 눈으로 기록하고 몸과 느낌으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섬, 고향 ● 애잔하면서 제일 정다운 풍경. 인간적 스케일의 다가갈 수 있는 풍경. 언젠가 살아내면서 경험하고픈 풍경. 집이면서 집이 아닌, 집이길 바라는 풍경.
두더지, 벨기에 ● 2018년 벨기에 시골 하셀트 Hasselt에서, 체류증 비자를 위해 머물러야 했던 6개월 동안 폐교된 학교 안에 있는 작업실 중 하나를 얻어 작업을 이어갔다. 매일 자전거로 작업실을 오가며 보이는 먼 곳의 지평선은 물 위의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는 붕 뜬 느낌을 주고, 지나치는 길가의 집들은 창문들의 요상한 배열로 웃으며 우는 얼굴을 하고 있고, 그 뜰들의 식물은 필요 이상으로 정돈되어있고, 간간이 공중에 당나귀 울음소리가 들리고, 긴 앞머리에 숏 다리 말들이 풀을 그냥 먹는 게 아니고 질겅질겅 먹고 있고, 온 사방에 두더지가 파서 쌓아놓은 흙이 음표처럼 퍼져있고, 50년 전에 왔어도 같은 풍경이었을 듯한 이 모든 것은 정체된 고인 물 같고, 왠지 슬프면서도 말도 안 되게 익살스러운 조합들로 웃을 수밖에 없는 '웃픈' 만화 같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 이미연
Vol.20200516f | 이미연展 / LEEMIYEON / 李美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