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덤과 까마귀, 씨앗괴물

김미래展 / KIMMIRAE / 金美來 / drawing   2020_0501 ▶ 2020_0513 / 월요일 휴관

김미래_서늘한 어둠아래 먼지가 별이 되고_종이에 연필, 먹지_59.4×84cm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0107e | 김미래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5월 13일_11:00am~01: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그리다 GALLERY GRIDA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2길 21(창성동 108-12번지) B1 Tel. +82.(0)2.720.6167 www.gallerygrida.com

눈에 나뭇가지가 박힌 옆집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돌무덤에 관한 이야기다. 까마귀에 관한 이야기다. 토끼 똥에 관한 이야기다. 씨앗괴물에 관한 이야기다. 숲 속에 서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 전부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이 모든 것 밖에 존재하는 이야기 일 줄도 모른다.

김미래_Wooosh Whoosh_종이에 연필, 먹지_118.3×84cm_2019

시간성 : 헵타포드의 언어 ●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 ● 김미래가 구축한 세계에는 페르마의 세계이다. 그의 드로잉 작업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선형적이지 않다. 시간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나의 사건은 어떤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하고, 그 사건 전체이기도 하다. 마치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영화 「컨택트」(2017) , 원제 「Arrival」의 원작)에서 외계인 헵타포드 사용하는 언어와도 같다. 김미래의 드로잉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동시에 제시한다. 시선은 분산된다. 그의 드로잉 작업이 어떤 특정한 곳에 시선을 둘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개의 조각 드로잉이 결합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몇 번째 파도」(2018)나 「39개의 돌무덤과 108마리의 까마귀들」(2019), 「삽질의 역사」(2019)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감상자는 김미래가 펼쳐놓은 플랫랜드에서 각자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읽어갈 수도 있다. 여러 이야기가 한꺼번에 들어있다. 이야기의 시작이면서 끝인 이미지들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아니다. 시작일 수도 없고, 끝일 수도 없는 이미지들이다. 작가의 드로잉을 한 눈에 파악하지 못하고 추상적 기호처럼 읽게 되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비선형적인 이야기의 구조 때문이다. ● 작가는 자신이 경험하거나 본 것, 사건·사고 이미지, B급 영화, 자극적이고 때론 폭력적인 장면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으로 나름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를 조금만 봐도 어떤 내용이고, 어떻게 전개될지 금방 안다"는 작가의 말이다(작가와의 인터뷰). 이것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그의 방식이 현재에 미래를 중첩해서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서 미래를 품고 있는 현재를 보는 방식, 즉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작가가 나름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사실과 현재와 미래("어떻게 전개될지 금방 안다")가 병존하는 구조를 작가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는 선후관계가 있어야 '전개'된다. 하지만 김미래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숙히 접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헵타포드의 언어와 닮아있다. 헵타포드의 말에는 말이 발화되는 순간 이미 끝이 동시에 들어있다. 김미래의 시간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병존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드로잉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는 시간의 전면화를 통해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혹은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구성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김미래_나뭇가지 살인마_종이에 연필, 먹지_63×59.4cm_2020

감정 : 평면을 움직이는 감정 ● "그런 것들[본 것, 사건·사고 이미지, B급 영화, 드라마 등]이 추상적으로 다가와요." - 작가와의 인터뷰 ● 김미래의 이야기는 정보가 아니라, 느낌이다. 작가가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은 말로 된(언어화된), 혹은 말로 바꿀 수 있는(언어로 환원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감정이다. 언어화할 수 없는 감정으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 그것을 느낌으로 표현한다. ● 일반적으로 이야기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정보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 즉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보가 되기 힘들다. 이야기는 정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압축해서 한 문장으로 말하거나, 줄거리로 짧게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정보가 되기 힘든 것처럼, 이해할 수 없으면 이야기로 그 본연적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것이 김미래의 '이야기'가 지닌 결여의 속성이다. 작가는 외부의 정보를 추상적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화되지 않은(할 수 없는) 원초적인 영역이다. 그로 인해 김미래의 '이야기'에는 정보값이 별로 없다. 이야기 영역 밖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 이렇게 작가가 정보(언어)가 아닌 추상적으로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야기의 선형성을 상실시키고, 시작과 끝,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감상자가 김미래의 이야기를 줄거리로 요약하거나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듣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이야기가 창작되기 시작할 때부터 이야기의 바깥(감정, 느낌, 추상성)이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느낌, 혹은 추상성은 왜 비선형적인가? 작가의 작업이 비선형적인 시간의 동시적 표출이 가능한 것은 여러 개의 조각 드로잉이 결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형식성이 크게 작용한다. 더불어 이야기의 원류가 되는 외부 자극(본 것, 사건·사고, B급 영화, 드라마 등)의 추상적 수용도 이러한 비선형적 시간의 동시적 표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을 통해 비선형적 이야기 구조를 미비하게나마 경험하게 된다. 꿈속의 이야기는 맥락이 없고, 갑자기 전개가 바뀌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하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은 그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으며, 간혹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때도 있다. 다시 말해서 꿈속에서는 낯선 상황(현재)에서도 그 이전 단계(과거)와 이후 전개될 상황(미래)까지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이것은 느낌, 혹은 추상성이 지닌 탈(脫)시간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김미래의 작업이 꿈속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느낌이나 추상성은 비선형적 시간일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낌이나 추상성이 변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느낌, 혹은 추상성은 순간적 감정이며, 그 감정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응축되어 있다. 따라서 김미래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처럼, 외부의 자극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을 때, 거기서 선형적 서사성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조건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품고 있는 느낌이며, 이 느낌은 감정을 흔들어 움직이지 않는 납작한 평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김미래_무한한 선택지_종이에 연필, 먹지_59.4×84cm_2019
김미래_오래된 바나나 껍질처럼 너덜거리는_종이에 연필, 먹지_59.4×63cm_2020

드로잉 : 플랫랜드를 넘어선 확장된 드로잉 ● 최근 김미래는 새로운 형식의 확장된 형태의 드로잉을 제시한다. 마치 소설 『플랫랜드』(1884)에서 플랫랜드(2차원)에 사는 정사각형이 스페이스랜드(3차원)에서 온 구(球)의 도움으로 플랫랜드를 넘어섰듯이, 작가는 편평한 플랫랜드에 주름을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바로 전면화했던 형태를 다면화하는 시도와 화면 안의 드로잉을 화면 밖으로 확장하는 시도이다. 최근 선보인 드로잉북 「모공:무덤」(2019)이나 여러 개의 조각 드로잉을 순차적으로 엮어서 슬라이드 환등기에 비추는 형식은 전자이고, 드로잉과 어우러진 설치 작업은 후자이다. 하지만 사실 이 시도는 작가가 이미 보여줬던 과거 작품의 변증법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예전에 책 작업과 유사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서사적 작업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드로잉과 설치를 결합한 작업을 2016년까지 줄곧 해봤다(「Welcom」[2016], 「거리의 무법자」[2016], 「검은산」[2015], 「야구빠」[2012], 「훈련소」[2012]). ● 전자의 시도, 즉 드로잉북과 슬라이드 환등기 작업은 선형적 시간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면화를 통한 비선형적 이야기 구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도록 선형적 시간성을 선택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드로잉북 「모공:무덤」(2019)과 슬라이드 환등기 작업은 그 내용이 '수미쌍관(首尾雙關)'으로 처음과 끝이 맞물려 있다. 처음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이것은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과거인 시간성이다. 결국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원형적 시간성이다.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컨택트」(2017)에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표현한 헵타포드 언어의 모양이 원형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페르마적이었다. 이것을 상기한다면, 원형과 원형적 시간성은 동시적 시간성에 대한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미래의 드로잉북과 슬라이드 환등기 작업이 보여준 '수미쌍관'의 원형적 시간성은 여전히 과거, 현재, 미래의 동시적 시간성에 대한 상징성을 작품에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이야기의 선형적 서사성으로 타협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시간성과 서사성을 실험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후자인 드로잉과 설치의 결합은 이전에도 이미 보여줬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재료적인 측면에서는 훨씬 정제되어 있다. 작가가 보여준 일련의 설치작업은 드로잉의 확장이었다. 다시 말해서 드로잉에 있는 내용이나 재료를 플랫랜드 바깥인 현실에 설치하여 화면 안 드로잉이 바깥(현실)으로 확장되어 느낌을 줬다. 특히 최근 설치작업이 나무로만 구성된 점은 주목해야 한다. 작가는 "[드로잉에서] 숲속의 나무를 베고, 그것을 주워서 구조물을 만들고, 그것을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것을 반복한다. … 가볍고 쓰러질 것 같고 불안함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 [드로잉에] 등장인물이 나무를 사용하기 때문에 설치할 때도 나무만 사용하여 가볍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라고 말했다(작가와의 인터뷰). 다시 말해서 드로잉 밖 현실의 설치가 재료적인 측면이나 감정적인 측면에서 드로잉의 확장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시키면서 플랫랜드의 이야기를 현실로 전이(轉移)하고 있다. ● 김미래는 자신이 품고 있는 예민한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기 위해 0.5mm HB 샤프를 고집한다. 딱딱하면서도 진하지 않고 살짝 연하게 나오는 0.5mm HB 샤프가 지닌 미묘한 느낌이 자신이 느낀 예민한 감정을 세밀하게 드러내기에 좋은 재료였다고 말한다. 작가는 감정을 예민하게 다룬다. 그 감정은 플랫랜드와 현실을 넘나들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도록 이끌고 있다. ■ 안진국

Vol.20200502a | 김미래展 / KIMMIRAE / 金美來 / 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