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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0_0414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사이아트 도큐먼트 CYART DOCUMENT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0)2.3141.8842 www.cyartgallery.com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잠시 쉬어가기 위해 걸터앉은 벤치 옆에서 아주 오래된 표지판 하나와 만나게 되었다. 색이 다 바래서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 아주 낡은 표지판이었다. 분명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세상에게 버림받고 잊혀진 채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폐기된 로봇처럼 아무런 표정 없이 서 있는 그 표지판과 마주하면서 나는 어쩐지 슬픈 느낌보다는 위안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여러모로 안 풀리는 삶 속에서 모멸감을 넘어 세상 속에 존재한다는 감각조차 옅어져가던 나에게 그 표지판은 뭐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존재하고 있음_ 을 선언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정보망 아래 주관되고 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져만 간다. 그에 비례하여 이상적 세계관과 각자의 현실에 대한 괴리는 한없이 벌어지기만 한다. 세계는 팽창해가고, 개인으로서 나의 존재는 점점 작아지고 옅어지고 이내 소멸해간다. 그러나 그 오래된 표지판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사실 세계(World)는 존재하지 않는(-less)다고. 세계란 그저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을 딛고 일어서 마주하게 되는 공허한 풍경일 뿐이라고. 그 안에 그저 내가 있고 당신이 있는 것 뿐이라고, 말이다. ■ 이인협
Vol.20200414a | 이인협展 / LEEINHYOEB / 李仁浹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