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민아_김소희_김영진_박상아 신상우_이승종_이혜진_장은비_전태형
기획,설치,디자인 / 디비판화작업실 주최 /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후원 / 교육부_한국연구재단_서울교육대학교 국립대학육성사업단
관람시간 / 12:00pm~07:00pm
서울교육대학교 샘(SAM) 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ART MUSEUM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96 사향융합체육관 1층 Tel. +82.(0)2.3475.2490
겨울 版畵 고맙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저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십니다. - 기형도, 「램프와 빵 -겨울 版畵 6」 전문 ● 모든 판화는 '겨울 판화'다. "[...]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오래 된 書籍」 중) 라고 읊조리던 젊은 시인 기형도는 유고(遺稿)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을 세상에 남겼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이 시집에는 '겨울 版畵'라는 부제가 붙 은 7편의 시가 들어 있다. 과연 시인에게 '겨울'은 무엇이었고, '판화'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겨울 판화'는 무엇일까?
'겨울'과 '판화'는 제법 잘 어울리는 단어이다. 두 단어에는 지난(至難)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두 단어는 뭐든지 쉽고 빠르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복제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한다. 판화 작업에서 '겨울'은 최악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석판화를 찍 기 위해 차디찬 물을 해면에 적시는 손은 꽁꽁 얼어 있다. 감광 후 나일론 망―통상 '실크 샤'로 불린다―을 씻어내고, 부식이 끝난 후 동판을 씻어내는 물 묻은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 쇠로 만든 육중하고 차가운 프레스는 겨울에 유난히 돌리기 힘겹다. 무겁고 차가운 금속과 대 면하고, 차디찬 물에 손 담그는 것은 결코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추운 날씨로 굳어 있는 잉크의 점도(粘度)를 높이기 위해 나이프로 이리저리 개는 것도 쉽지 않다. 차가운 온도 때문에 종이에 찍힌 잉크가 쉽게 마르지 않는다. 작업은 더디게 진행된다. 종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 겨울의 판화는 지난한 시간의 산물이다.
하지만 '겨울 판화'는 그 어려움이 주는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시인 기형도는 판화가가 아니다. 그래서 그가 전문적인 작업 과정을 알고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그의 시에는 겨울에 판화를 한다는 것의 의미뿐만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판화가 감동을 주는 까닭을 깨닫게 이끌어준다. 시인은 마치 판화에서 에디션(edition)을 내듯이 겨울의 시간을 1~7까지 번호를 붙여가며 거듭 '겨울 판화'로 짓는다. '복수(複數)'의 '겨울'을 내놓은 것이다. 이 시들에는 겨울의 냉기가 시어 사이사이를 휘감는다. ● 시인의 겨울은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날리던 밤"(「바람의 집 -겨울 版畵 1」)이고, "얼음가루 꽉 찬 바다"(「聖誕木 -겨울 版畵 3」)이 다. 겨울 도시에는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도시의 눈 -겨울 版畵 2」) 하지만 이런 차가운 시 어는 우리의 마음에 닿는 순간 시린 아름다움으로 뒤바뀐다. 리플렉트(reflect). 시어가 마음에 박힐 때, 서늘함은 아련함이 된다. 마치 판을 찍기 위해 제판한 원판이 판화 작품으로 찍혔을 때 좌우가 뒤바뀌는 것처럼―공판화는 바뀌지 않는다―, 시(원판)의 원뜻은 마음에서 뒤집힌다/반향된다(판화). 이게 가능한 것은 '겨울'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우리 모두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울의 차가움을 느끼며 겨울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사실 판화는 늘 '겨울'이다. 여기서 '겨울'은 계절의 의미를 넘어선다. 단순히 계절의 측면에서 겨울은 판화 작업하기 힘든 계절이다. 하지만 겨울이 지닌 상징성을 가지고 매체의 층위에서 바라봤을 때, 단시간에 쉽게 복제하고 출력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복제매체들 속에서'판화'는 '겨울'이다. 육중한 쇳덩이와 위험한 도구를 매만지며 더디고 복잡하고 지난한 공정을 통과해야만 하기에 '겨울'의 매체이다. 그렇다면 '겨울'은 부정적인가? 더디고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은 고통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함은 기억의 순간을 만든다. 삶의 마디, 삶의 분절점(分節點)을 형성하는 것이다. 잊히지 않는 시간이 지난함을 거치며 생성된다. 이것은 부정성과 고통 을 초과하는 지점이다. 특히, 이 지난함이 감각과 결합하면 더욱 깊숙이 기억에 각인된다. 기형도가 냉기가 서린 시간을 '겨울 판화'로 거듭 소환한 이유는 그 시간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 문이다. 그가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나오던 냉기를 느꼈고, 얼음가루 꽉 찬 풍경을 봤고, 전쟁처럼 내리는 눈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각의 기억은 얼마간 윤색되어 언제든 현재로 소환된다. 그리고 읽는 이(혹은 보는 이)의 마음으로 리플렉션(reflection)된다(뒤집힌다/반향한다).
비물질적 과정 속에서 체험적 기억을 (거의) 가질 수 없는 매끈한 디지털 기술복제매체는 몸을 써서 물질을 깎고 제련하는 판화와 근원적으로 다르다. 디지털이 사유의 영역이라면, 판화는 감각의 영역이다. 감각은 사유보다 더 직접적이고 원초적이다. 판화 작업 과정에서 순간순간의 몸짓은 촉각적으로 기억에 스민다. 원판을 깎을 때의 힘겨움, 종이를 집을 때의 중량감, 프레스를 돌릴 때의 빡빡함, 프레스 펠트를 걷을 때 펠트의 감촉, 잉크를 밀어내는 스퀴지를 강하게 줜 손의 악력(握力), 찍힌 판화를 집어 올리는 엄지와 검지의 감각 .... 디지털 매체 에서는 느끼기 힘든 물리적 감각이 판화 작품 제작 과정 곳곳에 존재한다. 이 직접적이고 원초적 감각은 개인의 기억에 저장될 뿐 아니라, 공동의 기억에서 공유된다. 누구나 촉감을 느끼고, 땀을 흘리고, 힘겨움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예외 없이 우리는 공통된 감각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판화 작품을 보며 감동하는 것은 이 공유된 공동의 기억, 공동의 감각 때문이다. ● 판화 작품에서 느껴지는 촉감, 지난함, 노력에 공감하기 때문에 그 작품에서 가슴 뜨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판화는 마치 "얼음장 밑으로 수상한 푸른 빛"(「도시의 눈 -겨울 版畵 2」)과 같다. 푸른빛이 얼음장 밑에서 빛나듯이, 판화는 겨울 같은 지난한 시간 아래에서 빛난다. 하지만 이 빛은 '수상하다.' 뭔가 불분명하다. 알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틈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빈틈없이 확실하고 완벽한 디지털과는 분명 다르다. 이 수상함(불확실성, 부정확성), 바로 완벽함으로 채워지지 않은 빈틈의 존재가 판화의 복수성을 불러온다. 빈틈은 규정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공간이다. 그로 인해 동일한 형상 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다르게 그 빈틈이 채워지면서 복수적인 판화가 가능해진다. 같으면서도 다른 작품이 되는 판화의 에디션이 지닌 신비. 판화의 복수성은 디지털의 완벽한 복제성이 메우지 못하는 빈틈을 만들며 "수상한 빛"을 비춘다. ● 지난한 시간, 삶의 분절점, 개인의 기억과 공동의 기억이 교차하며 공유되는 감각, 소환된 기억의 리플렉트, "수상한 푸른 빛", 그리고 '겨울 판화'. 이것은 판화를 새롭게 사유하는 리 좀(Rhizome)이다. '겨울'과 '판화'에는 감각의 지난함이 내재해 있다. 이는 '겨울 판화'를 단순히겨울의 판화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상 오늘의 판화는 결국 모두 '겨울 판화'일 수밖에 없다. ■ 안진국
Vol.20200113d | 리플렉트 REFLECT - PRINTMAK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