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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더플럭스 gallery the FLUX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 (안국동 63-1번지) 2층 Tel. +82.(0)2.3663.7537 gallerytheflux.com
너무 오래 바램하다 보면 바램하고 있다는 걸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전시장에 배경음악으로 들려주기 위해 즉흥 연주들을 편집하다보니.. 사실 난 커다란 목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의도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삶 속에서 느리게도, 때론 면밀하게도 찾아가며 살고 있다. 내 삶 안에 내 예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여러 역사적으로, 한국 예술교육이 아쉬운 시대에 성장하며 내가 받은 교육으로는 한국의 미에 대해 그 매력과 자존감을 나는 제대로 맞보지 못했다는 것을 추측하면서, 한국의 미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모방의 단계를 거쳐 때가 되면 천천히 나답게 응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또 응용한다. 한참을 헤매고 탐색하다가도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답게 응용하는 것이 새로운 것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피상적 범위에서 기교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고 본질적인 곳에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새로운 감각이다. 언젠가 가능할 것이다. 머, 안되면 말고. ■ 이태정
이태정 작가의 이번 전시는 '여행'을 작업 내용의 기본 소재로 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작업을 직접 보게 되면 일반적 의미의 여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물이나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메인 전시장에 단지 대기의자가 놓여진 것과 그 앞에 놓여진 스크린,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역이나 공항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소음 소리만이 여행에 대한 느낌의 일부를 전달해 주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여느 전시 공간들처럼 회화 작품들이 벽에 걸려있거나 바닥에 기울여 놓은 상태의 전시 공간 혹은 그와 관련된 장소로 느껴질 수도 있는 상황들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본래 이 공간에 대해 환승역이자 전시장이라고 지칭하며 전시공간구성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배경 소리와 대기의자 등이 놓여진 공간배치는 역이나 공항의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전시장으로 인식되는 공간 안에 배치된 상황은 환승역과 전시장에 대한 양가적 감각을 전해주고 있다기 보다는 관객들에게는 두 가지 요소가 혼재된 혼성적 공간으로 감지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전시장에 보이는 작품들 역시 대부분 추상적 표현에 의한 작업들이지만 그 형상이 일견 비대상적이고 순수 추상형으로 보이기도 하나,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자연 속 사물과 닮아 있는 듯한 느낌도 일부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게다가 역이나 공항에서 들릴법한 소음뿐만 아니라 선율이 흐름을 알 수 없는 추상적 경향의 피아노 소리가 함께 들려오는 것을 듣게 될 즈음에는 익히 알고 있던 전시장이나 환승역과는 또 다른 느낌의 혼성적 요소가 산재되어 있는 혼란스러움이 먼저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전시 공간에서는 일상적 공간에 대한 감각과 함께 전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대한 감각이 뒤섞이면서 작품들을 일반적 전시공간에서처럼 '거리두기'를 하고 작품을 관찰하며 바라보아야 할는지, 일상 공간에서처럼 장식된 그림들을 스쳐 지나가며 대기의자에 앉아 그저 쉬고 있어야 할는지를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혼성적 공간을 접하게 되는 가운데 유추하게 되는 것은 작가가 이 혼성 공간을 통해 일상과 작업 사이의 간극을 노출시키거나 은폐함으로써 작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분법적 구조를 초극해 보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이 혼성적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작가가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전시장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한 공간 내에서 함께 병치시키고, 서로의 시각을 방해하는 요소가 섞여 있도록 만듦으로써 일종의 혼란 속에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고, 결국 이 지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시각을 재정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태정 작가는 작가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유 방식 혹은 작업 태도이자 삶의 태도가 자신이㺔대 후반5개월간 인도 여행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수많은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금기와 경계를 경험하였던 작가는 다시 수년후 한국과 인도에서 명상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보게 된 이후 과거의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중간적 위치에서 사유하게 되었고, 여러 관점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태도가 그대로 그의 작업과 삶으로 연장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업에 드러나고 있듯이 그가 구상과 비구상, 서양과 동양,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부재와 같은 대립적 개념과 경계를 넘어 작업을 혼성적 영역에 머무르게 하고 이와 함께 일상성 가운데 작업이 오버랩 되도록 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즉 작가는 그의 작업을 '전시장과 작품'이라는 특별한 위치와 관점에서 관찰하는 방식이 아닌 일상 공간 속의 일상적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가운데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자기 몸을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화지 위에 정착시킨 방식처럼 관객들도 자연 속 풍경 가운데 바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듯 구체적 무엇이라고 지칭할 수도 없는 자연 속의 파동 혹은 에너지의 흐름과도 같은 감각에 대해 함께 공유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역이나 공항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전시장에 흐르게 하거나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의자를 전시장 가운데에 등장시킴으로써 자신의 회화적 표현들이 예술작품으로 의식되기 보다는 일상 공간 속에서 일상적 눈높이에서 감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시장에 배치되기를 바랬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구체적인 형상도 지시하지 않는 화폭 위의 이미지는 일정한 선율로부터도 자유로운 즉흥적 소리와 혼성적으로 조합되면서 비정형적 흔적으로 남겨지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혼성적으로 섞여서 감지하게 되는 이 흔적들이 관념화되거나 타성적으로 고착화된 인간의 감각 방식을 바꾸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아마도 명상의 과정에서 이와 같은 감각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그가 만들어낸 작업과 연출한 공간을 통해 바로 그것을 공유하는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이번 전시에서 메인 전시공간을 작가가 전시장이면서 동시에 환승역이라고 지칭하고자 한 것은 관념적이고 타성적인 감각의 열차로부터 미지의 또 다른 감각의 열차로의 환승해 볼 것을 권하고자 하는 작가 고유의 작업 내 개념적 장치로 읽혀지며, 동시에 작가가 명상 가운데 경험했던 것과 같은 내면 속 미지의 감각 세계로의 여행을 권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장소가 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러므로 이 메인 전시장과 연결된 서브 전시장을 작가가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로 지칭한 것 역시 작가가 이야기하는 이 여행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게 된다면 작가가 전시 주제를 "여행가고 싶다, Pause"라고 제시한 것 역시 여행을 출발하는 환승역과 게스트하우스의 관계처럼 여행을 위해 움직이는 것과 쉼을 위해 멈추는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모순되어 보이지만 하나의 개념 안에 혼성될 수 있는 감각 세계에 대한 작가의 다층적 시각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전시 주제에서도 상징적 언어를 통해 암시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태정 작가는 전시장과 환승역에 이처럼 감각의 흔적들을 남겨놓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붓을 사용하지만 많은 경우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물감을 문지거나 찍어내는 방법을 사용하여 작업을 한다. 그러므로 몸의 흔적은 이러한 방식으로 선명하게 화지 위에 남게 된다. 그런데 결국 그곳에 남겨진 이미지는 어떤 대상을 닮은 것이 아니라 단지 몸의 움직임, 마음의 움직임을 닮아 있을 뿐인 것이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선율을 갖춰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건반을 누르는 힘의 강약과 음색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흔적들이 일상의 이미지 혹은 일상의 소음과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일상적 질서 혹은 일상적 소음 속에서도 특정한 파동과 같은 흐름을 구별하여 감각할 수 있을 것이며 그 흔적에 담겨 있는 에너지에 대해 알아차림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을 명상 속에서 경험하였던 것이며 이를 관객들과 공유하고 호흡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대목은 작가가 그의 몸을 자신의 내면 세계를 여행하듯 관찰하며 그 흐름을 타고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소음처럼 들려오는 자연스러운 자기 주위의 모든 상황들과 관계하며 생성된 흐름들과도 동시에 타고 움직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태정작가가 지속적으로 주변의 일상과 관계하며 혼성적으로 작업을 하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며 작업을 하나의 완벽한 완성품보다는 과정으로서의 흐름과 흔적만을 남기는 것을 통해 계속 완결을 지연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태정 작가의 작업들이 대부분 즉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역시 완결적이고 결론적인 무엇을 그의 작업에서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완성 혹은 결과물과 같은 지점들을 계속 뒤로 연기하는 가운데 일상과의 관계 속에서 과정만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삶 혹은 작업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관계 속 과정이라는 것은 환승역이라는 지점처럼 변곡점을 만나게 될 때 각성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환승역은 이태정 작가의 작업에서 볼 수 있듯 다른 감각으로 갈아타거나 그것을 감지하기 위한 쉼의 장소이자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 사이에서 방향을 바꿔 또 다른 차원의 여행을 하기 위해 움직임을 예정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뒤집어 보면 게스트 하우스 역시 마찬가지 기능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관객들이 작가가 경험했던 바처럼 마음을 여행하는 것이 일상을 여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깊이 있게 알아차리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태정 작가의 작업이 그러한 세계를 알아가는 여행의 시작 지점을 안내하고 있다는 것은 감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 이승훈
Vol.20191217d | 이태정展 / LEETAIJUNG / 李泰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