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ack Curtain

서원미展 / SEOWONMI / 徐原彌 / painting   2019_0807 ▶ 2019_0827 / 월요일 휴관

서원미_The Black Curtain: 심산, 중수_리넨에 유채_181.8×227.3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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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미 인스타그램_@wwonmi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 (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눈먼 회화의 서정(抒情) ● 서원미의 『블랙커튼』 연작은 말없는 서정시다. 그의 회화가 말이 없는 것은 우선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기 무엇이 있는지 묻지 않은 채 다만 짐작하는 손으로 더듬어 앞을 살피는 탓이다. ● 『블랙커튼』 연작을 시대의 증언으로 간주하거나, 역사와 결부된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분석의 틀을 적용하여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을 추상화하거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잠시 뒤로 하고 가능한 만큼 거리를 좁혀서, 말하자면 이런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한 작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작품을 살펴보자. 역사적 사건과 비극적 장면들로 구성된 기록사진과도 같은 풍경 안에서 우리는 어쩌면 낯익은 경험과 인식의 편린들을 만나거나, 혹은 지극히 주관적인 이미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것이 작품으로부터 온 것인지 자신으로부터 온 것인지 결국 알지 못한 채) 작품을 떠돌다가 아스라하게, 혹은 단숨에 훅하고 들이닥치는 어떤 정감에 휩싸이고, 어느덧 내 안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오래도록 새겨지는 이미지를 마주칠 수도 있는 것이다. 단 한 번의 마주침으로도 충분할 그 여정은 보다시피 조금 어둡고 불안하며 음울하다.

서원미_The Black Curtain: 518_002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7
서원미_반란자들_리넨에 유채_162.2×130.3cm_2019

『블랙커튼』 연작의 인물들은 대부분 얼굴이 변형되었거나 훼손된 채로 있다. 그들의 얼굴은 감각기관의 일부가 지워져 있거나 때로 알아볼 수 없게 녹아내리고 뭉개져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다. 그들은 폭발물이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착발한 현장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기묘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The Black Curtain: 518_002」), SF 영화에 나오는 퇴화된 뱀파이어의 미끄덩한 머리를 한 괴물처럼 눈코입 대신 파편과 같은 흔적만 있거나(「The Black Curtain: 625_004」), 아예 아무것도 없는 얼굴로 등장한다(「반란자들」, 「흰 산」). 지난 『FACING』 연작에서도 그랬듯이 작가는 인물의 눈을 훼손함으로써 시선을 박탈하는 듯한 구도를 빈번히 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원미의 화폭에서 표정과 시선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사실 감각기관이 사라진 얼굴의 공백은 우리로 하여금 일부러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마치 하나의 답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수천의 표정을 대입하도록 만드는 순간들로 가득 차있다. 한쪽 시선이 박탈된 얼굴에 나머지 한쪽이 증식한다. 눈을 감은 얼굴에서조차 시선은 눈꺼풀 아래서 살갗을 들어 올리는 잔상으로 작동한다. 지워지지 않는 시선은 계속 남아서 화면 전체로 확장된다.

서원미_흰 산_리넨에 유채_130.3×193.9cm_2019
서원미_교량_리넨에 유채_130.3×193.9cm_2019

이제 조금 뒤로 물러나 시야를 넓혀서, 훼손되었으나 제거되지 않는 얼굴들이 머무르는 화면을 보자. 대부분의 작품이 인물과 그가 속한 특정한 상황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제목 등의 레퍼런스가 구체적인 사건이나 배경을 암시해주고 있다. 서원미는 그동안 죽음을 주제로 한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FACING』 연작이 자신의 트라우마적 경험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면, 『블랙커튼』 연작은 한국사회가 기억하고 망각해온 역사 속의 죽음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은 잊히고 사건만 기억되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작가는 사라진 개인을 다시 불러내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풍경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의 고유한 회화적 의미를 확립하고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과거로서의 역사를 재현하는 예술의 자의식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와 또 그들의 부모를 통해 사회 안에서 대물림되며 자신 안에 잔존하는 이미지의 진동을 있는 그대로 담고자 하는 주관적 의지다.

서원미_The Black Curtain展_아트비트 갤러리_2019
서원미_The Black Curtain展_아트비트 갤러리_2019

서원미의 작업세계에서 역사 속 개인의 죽음이라는 주제적 공통분모를 구축하고 작업 전반의 동력을 촉발시킨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북에서 내려와 서울에 정착한 할아버지의 삶과 죽음에 대해 그의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다. 이십 대의 작가가 알게 된 이야기 속에는 열두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아버지가 있었다. 자신보다 어린 아버지가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고된 삶이 있었다. 알베르 까뮈가 들려주었던, 자신보다 젊은 청년-아버지의 죽음과 대면하는 이야기 또한 주인공 자크의 이야기이자 까뮈 자신의 이야기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역사를 재현하는 예술의 자의식은 이처럼 수많은 개인사를 진동시키는 역사의 파동 속에서 자리 잡는 것이다. 적어도 역사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작가에게 잃어버린 것은 찾아야 할 것과, 잊었던 것은 기억해야 할 것과 동의어다. 역사는 계속되고 개인은 죽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 속에 삼켜지는 것들은 화석화되고 나머지는 유령으로 떠돈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극복의지든 죽음충동이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위해 어둠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작가의 주관적 의지는 역사화의 리얼리즘 대신 역사의 흔적으로서, 그리고 개인화된 역사적 경험으로서 트라우마가 잔존하는 이미지를 탐구한다. 박탈된 시선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것처럼, 어둠은 잔존하는 이미지를 포함한다. 보이지 않음에도 어둠을 더듬어 불을 켜는 곳에 눈먼 회화의 서정이 있다.

서원미_The Black Curtain展_아트비트 갤러리_2019
서원미_The Black Curtain展_아트비트 갤러리_2019
서원미_The Black Curtain展_아트비트 갤러리_2019

『블랙커튼』 연작의 고요한 서정성을 보충하는 한 가지 요소는 매번 새로운 감각의 모험이다. 각 작품마다 자유롭게 변화하는 기법은 형태의 표현부터 중첩된 붓질의 마감까지 물성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한 작품 내에서조차 인물들은 각기 다르게 표현된 얼굴을 갖고 있다(「흰 산」). 반면 색채의 사용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작품의 현실에 집중하고 상황적 본질을 구성하기 위해 화려한 색을 배제하고 형상을 강조한 작품들은 흑백, 또는 모노톤의 풍경을 구가한다. 변화하는 기법과 맞물린 모노톤의 구성은 역설적으로 회화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유하는 이미지로서 작품을 드러낸다. 시대의 뒷면을 밝히는 어둠은 반복되는 어둠이며 매번 새로운 어둠이므로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 서원미의 『블랙커튼』 연작은 알지 못하는 개인에 대한 시(poetry)다. 다만 어두운 곳에서 더듬거리며 읽어내야 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에 매번 다르게 발화하는 서정시(lyric)다. ■ 송가현

Vol.20190808g | 서원미展 / SEOWONMI / 徐原彌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