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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6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스튜디오 148 Studio 148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길 14-8
조각의 전개 : 참조와 우연의 경계 ● 이미지는 대상 혹은 주체를 과거의 어떤 시간에 응축시켜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와 서구의 후기 르네상스 미술에서 초상화는 모두 "데스마스크(death mask)"의 전통에서 파생되었는데, 살아있는 주체가 아닌 죽은 대상의 죽은 얼굴을 떠내는 행위 자체는 살았던 주체(lived subject)를 보장 하지도 필연적으로 객관화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특정 이미지를 다루는 태도는 몸이 지닌 동물적 물질성 너머에 본질적인 자기 자신을 반영하고자 하는 거울 일지도 모른다. 곽인탄은 자신의 신체 일부와 두상을 캐스팅하여 덩어리를 떠내는 조각을 해왔다. 그러나 그는 전시 『Unique Form』에서 죽었으나 살아있는 박제된 미술사조의 이미지 데이터들을 참조하여 가느다란 철선을 용접해 나가면서 양감이 누락된 조각을 보여준다. 과거에 작업했던 자화상 「머리의 전개(Development of Head)」(2017-2019)는 데스마스크를 나타낸다. 그는 2017년 가을에 캐스팅한 자신의 흉상 조각을 방치해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표면을 절개하고 내부 공간을 분리하여 이미지 요소들을 전개한 조각을 새롭게 보여준다. 다른 조각들 사이에 유일하게 누워있는 자화상 흉상 조각은 작가가 시각적 재현을 만들고 지켜보는 자신의 욕망의 근본적인 측면을 일러주는 것과 같다. 곽인탄은 조각을 탐구하는 형태를 "독특한 형태/방식(Unique Form)"이라는 용어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코드화 한 자아에 대한 욕망을 갖고 이를 투사하는 수단으로 바라보려 한다.
곽인탄은 『Unique Form』 조각들을 통해 마치 데이터의 확인과 전송을 주고받는 피드백 루프 안에서 조건반사적으로 버튼을 누르는 사람 같다. 그는 근래에 조각하는 동세대 작가들과 다른 방향타를 잡으며 사용자의 입력을 기다리는 컴퓨터 스크린에 깜빡이는 작은 커서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 데이터 조각 항해사다. 우리는 어느 순간 이미지를 습득하고, 출력하고, 변환하는 과정에서 스크린이라는 인터페이스의 환경에 맞춰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익숙하다. 대부분은 이에 발 맞춰 자신들이 살아온 가장 익숙한 흐름의 환경을 바탕으로 반대급부를 찾고자 매체적인 것, 즉 조각이 행했던 전통적인 재료가 아닌 새로운 물성에 집중하여 다른 형태의 조각적 매핑을 시도하는 것에 능숙해졌다. 반면, 곽인탄에게는 홀로 항해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스크린이라는 입출력 장소에서 특정 사조의 이미지들을 대량으로 참조하여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면서 일정 부분 현대 조각의 기준점이 된 로댕과 선을 긋는 독특한 형태의 조각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는 새로운 질감과 가변적 재료에 집중하기보다 금속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로 용접을 해나가는 금속조와 점토를 이용하여 자신의 손으로 즉각적으로 주조해 나가는 소조의 방식을 택한다. 그는 자신의 조각을 "붙이는 조각" 혹은 "손이 직접 맞닿은 조각"이라 부른다. ● 전시 『Unique Form』은 미래파(Futurism) 선구자 중 한 명이었던 보치오니(Umberto Boccioni)의 청동 조각인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Unique Form of Continuity in Space)」(1913)의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직립하는 거대한 청동 조각은 당시 전쟁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얼굴과 가슴 부위가 크게 함몰되어 있어 당시에 과거 조각의 본체를 유지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앞으로 향하는 동세처럼 속도와 역동성, 기계주의 등을 추구했던 회화와 조각, 건축 등에 걸쳐 미래주의적인 실험을 이어 나간 사조 안에서 보치오니는 회화에서 시작하여 미래주의 조각을 통해 움직임을 어떻게 구현할지 모색하고 조각 자체의 오브제 뿐만 아니라, 조각이 놓이는 주변 공간과의 긴장관계를 시간과 장소, 색채 등의 요소를 움직이는 모습으로 제작하고자 했다. 선과 양감을 통해 입체주의(Cubism)에서 시도한 파편화된 형태를 수용함과 동시에 속도감을 강조하기 위해 움직이는 요소를 과감하게 표현하고자 한 미래주의는 곽인탄의 조각에서 주요 참조 데이터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조각으로서 갖는 덩어리감보다 공간을 분할하고, 구성하고, 변형하며 발생하는 추상화된 이미지의 조형적 언어를 통해 회화와 조각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간의 측면을 구현하는데 집중한다. 헌데, 그가 경험하고자 한 시간의 측면은 하나의 대상이 담고 있는 파편화된 이미지 너머에 인물을 복수화하거나 참조한 데이터 화면에 붙어있는 작은 흔적들을 떼어다 공간 안에서 대상과 배경을 통합시킨다. 예컨대, 「앉아있는 두 사람(Seated Two People)」(2019)은 베이컨(Francis Bacon)의 인물 습작과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청동 조각에서 전반적인 형태를 가져온다. 또한, 철 파이프와 두꺼운 철사로 뒤엉켜 놓은 복잡한 구조 곳곳에 보치오니의 조각, 피카비아(Francis Picabia)의 드로잉, 이응노 조각의 일부를 발췌하여 알루미늄과 철망 구조들로 덧댄다. ● 조각 데이터뿐만 아니라 회화 데이터에서 출력된 윤곽과 형태는 철망 사이로 흘러나온 석고의 질감이 더해지므로 확대한 회화의 캔버스 입자들 혹은 깨진 픽셀로 읽힌다. 더불어, 그는 회화적 질감이 강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시바툴에 경화제와 아크릴 물감을 섞어 회화의 점묘 기법과 표현주의적인 감각으로 형태의 가장자리들을 감싸므로 평면에서 획득할 수 있는 요소들을 허공에 놓고 습득하려 한다. 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실험에 대한 곽인탄의 관심은 작품 속 대상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깨진 픽셀로 변모하는데, 이 픽셀들은 철을 녹여 용접한 가는 철들의 윤곽을 따라 공간에서 위태롭게 긴장관계를 드러낸다. 화면에서의 필력처럼 손끝에 의지가 강하게 전달되는 가는 철선의 조각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화적 물성이 끈끈하게 붙어있지만, 먼 발치에서의 구조적인 형체는 보치오니가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역선(force-line)’과 같다. 이는 당시에 미래주의의 주요 시각이론으로 등장했던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이론과 함께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의 측면을 강하게 드러낸다. 곽인탄은 한때 석고 캐스팅의 무거운 조각을 작업했지만 어느 순간 양감을 벗어 던지고 모니터 스크린에서 형태를 매핑하는 것과 같이 빈 공간들이 뚫린 철선으로 물리적인 공간의 거리와 한계를 넘어 시간의 연속성을 자유롭게 경험하도록 한다. 이처럼, 조각과 회화의 레퍼런스를 참조하여 용접과 소조의 상반되는 기술이 연계된 작업들은 덩어리를 느낄 수 있는 조각이 아니라, 정체가 모호한 조각의 형태로서 네거티브(negative)한 공간과 더불어 회화와 조각이 서로 전복되면서 내러티브(narrative)가 정교해지기 시작한다.
『Unique Form』의 기준점은 손 조각을 기본 원형으로 한다. 공간은 얇은 스테인리스 스틸 판 위에 위태롭게 철로 중심을 잡고 있는 기둥에 덕지덕지 용접한 철과 하얀 레진으로 발라 놓은 「손의 방식(Form of Hand)」(2019)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레진의 물성이 강조된 점점이 붙여 나간 손 조각은 작가의 손맛이 돋보이므로 손의 동세가 점진적으로 흘러가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손의 방식」은 드 쿠닝의 인물 청동 조각 「벤치에 앉은 여인(Seated Woman on a Bench)」(1972)의 왼쪽 손 부분만 가져온 것이다. 표현주의적인 실물 크기의 인물 조각은 크기가 확장, 변형되어 표면을 거칠게 처리한 다듬어지지 않은 에스키스의 과정과 같은 조각으로 변모되었다. 곽인탄은 매끄러운 표면 처리를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청동 조각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거친 표면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손으로 형태와 질감을 직접 획득하는 것이 조각가로서 그리고 조각이 누릴 수 있는 출발점이 손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손의 방식」을 통해 그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한편,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듯한 조각은 제작과정 안에 담긴 물질적인 속성들을 넘어 시각성에 대한 성찰을 촉각적인 차원으로 나아가 신체적 감각을 재배치한다. 공간 전체를 주무르기 위한 「손의 방식」은 드 쿠닝 조각의 일부이자 곽인탄 자신의 손을 대변하여 미술사조의 일부를 참조한 조각의 전개를 암시한다. ● 「회화 전개도(Painting Development)」(2019)는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의 추상 금속 조각의 표면에 등장하는 그라인더의 결이나 김환기, 이우환, 하종현의 추상회화를 이루는 점, 선, 면의 조각들을 참조하여 조각을 재구축한다. 일반적으로 전개도(展開圖)는 입체의 모서리를 잘라서 펼친 모양으로 입체에서 평면으로 그 구조를 펼쳐보는 지도이다. 「회화 전개도」의 경우 역으로 회화와 조각이 담고 있는 화면에 요소들을 공간 밖으로 끌어와 가는 윤곽선이 강하게 얽힌 구조의 조각으로 전개해 나간다. 양감보다 선적인 요소가 강한 조각은 용접의 흔적으로 가득하여 조각보다 붓으로 덧바른 방식의 회화적인 텍스처와 유사하다. 공간을 선으로 획득한 윤곽만 남은 앙상한 전개도는 틀(frame)을 작업의 출발선상으로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엑스선 사진을 통해 신체의 이미지를 보는 것처럼 곽인탄의 조각들은 추상적인 요소로 가득한 풍경이면서 정제되지 않은 앙상한 신체로 그의 무의식적인 흔적이 다른 흔적보다 더 정교하게 통제 받지 않은 감정으로 표출된다. 그가 형태와 이미지를 만들 때 윤곽으로 구현되는 고유의 특성에 대한 감각의 반응은 데이터를 다루거나 체감하는 자신의 경험과 관계가 있다. ● 여기서 우리는 이미지가 무의식에서 유래하고 의식적인 사고에 의해 수정되거나 수정되지 않았을 때 출력되는 이미지의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곽인탄의 경우에 그 두 가지의 변수들을 통해 몸을 관통하는 선을 대하는 방식이나 우연적인 이미지가 뇌리에 변조되어 왜곡된 이미지보다 한층 더 적나라하게 특유의 방식으로 데이터를 일그러뜨린다. 작가는 움직임의 힘을 응축하려는 보치오니에서부터 노동의 기술이 짙고 산업 재료를 사용한 커다란 스케일의 추상 조각과 한국전쟁 직후 실존주의의 표상으로 등장했던 한국 앵포르멜까지 통렬하게 이미지를 독해하고자 한다. 조각보다 회화 작업의 화면에 이미지들을 조각으로 치환한 회화도 조각도 아닌 그 경계 중간에 있는 깨진 픽셀과 같다. 그는 강박적인 집착을 향해 쏟아 부은 에너지를 이미지에서 조각으로 향하는 것인지, 조각적 형태를 따라 파편화 되는 미완의 추상 이미지로 향하는 것인지 그를 끌어당기는 힘의 반대 방향으로 전개도를 역추적한다. ● 곽인탄은 여러 사조들을 참조하여 조각의 틀에 적용하지만 그 틀을 극복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전개하려는 시도들이 다양해지면서 레퍼런스를 압도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 형태, 질감을 가진 조각을 조형하려 한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자기 안에 있는 강박적인 감각의 그림자를 쫓지만 명확한 실체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윤곽과 형태가 뚜렷한 조각을 다루어 다량의 레퍼런스를 참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확히 어떤 강박을 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어떤 특정 순간이나 장면이 고정되어 심리적으로 감수하는 시간들을 향해 실체를 찾아 나서는 연습을 조각을 통해 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감각에 있는 이미지와 정신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고 자신의 존재 구조 안에 자리잡은 감각적인 이미지가 우연을 통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나가는 기초 위에 긴장을 내려놓고 잠재된 실체를 향해 마음껏 발산한다. 이미지가 왜곡되고 생생해지는 과정에서 작가는 형태들의 배치를 생각한 후에 그 형태들이 스스로 형성되는 것을 관찰하기도 하고 그렇게 생겨난 우연에 의한 형태가 정확하면서도 동시에 모호해야 한다는 조각의 전개도를 펼쳐 나간다. ■ 추성아
Vol.20190627i | 곽인탄展 / KWAKINTAN / 郭仁攤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