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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20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 (관훈동 100-5번지) 제2전시실 Tel. +82.(0)2.736.6669 www.galleryis.com
안과 밖에 자리하는 레이어 ● 모든 회화는 납작한 평면을 태생적 조건으로 삼아 그 위에 모종의 사건, 이른바 시각적 사건을 발생시킨다. 물론 그것은 시각적이면서도 물리적인 사건이다. 동시에 심리적이고 문화적이며 인습적인 동시에 여러 층위를 무수히 간직하면서 전개되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거느린다. 따라서 그것은 단일한 그 어느 하나로 문질러버릴 수는 없다. 재현이 도래하는 공간이든, 평면성을 확인하려는 공간이든 혹은 형상이 개입하든 간에 회화의 표면은 무수한 해석과 한 개인의 육체의 감각성이 전면화 되는 불가피한 영역임을 매번 드러내왔다. ● 홍미희의 작업은 사각형의 화면 꼴로부터 파생한다. 사각형의 화면이 그림의 내용을 규정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는 화면의 밑변에 일치하게 수평의 띠, 선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속해서 화면을 균질하게 분할한다. 따라서 화면에는 오로지 수평의 선으로 인해 생기는 두 개의 색/색면이 그림을 이룬다고 말해볼 수 있다. 서로 보색관계를 이루는 이 두 색은 미세하게 굵기를 달리하면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따라서 주어진 사각형 안에서 그림이 마감된다기보다는 이 선의 연장, 탄성에 의해 지속적으로 화면 가장자리 바깥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착시도 접하게 되는 편이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그림은 정면의 시선에 조응하도록 그려진다. 이른바 정면성의 법칙이 오랜 시간 회화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캔버스는 사실 정육면체에 해당한다. 정면과 뒷면, 그리고 네 개의 측면을 아우르고 있다. 부득이 벽에 기생하는 캔버스는 뒷면을 은폐하고 정면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면에 그려진 그림을 위해 나머지 네 면의 높이를 낮추어 시선에서 배제시켜왔다. 현대미술에서는 측면을 부활시키고 캔버스 뒷면도 당당히 화면으로 복원하는가 하면 캔버스가 정육면체임을 부단히 상기시켜왔다. 한편으로 그것은 정면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선, 배회하는 시선, 더듬는 시선을 요구함과 함께 캔버스를 그것이 걸린 벽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임의로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 홍미희의 작품 또한 정면에서 보는 것과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의 위상이 확연히 다름을 뒤늦게 깨닫게 해준다. 정면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지닌 수평의 선들만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정적이고 상당히 깔끔하게 정련된 회화 작품이자 중성적이고 부드럽게 가라앉은 단색의 색채/선이 물질화되어 있는 부조로 다가온다. 그러나 시선, 몸의 위치를 바꾸면 측면이 드러나고 이내 그 장면은 정면에서 본 것과는 다른 층위를 드러낸다. 시선과 몸의 이동은 당연히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는데 정면을 보는 시간에서 다른 시간의 이동에 따라 다른 장면이 전개되는 셈이다. 측면은 정면에서 소외된 영역이다. 정면에서 본 것을 작품의 전체와 동일시하려는 욕망은 측면을 보는 순간 허물어진다. 그것은 정면이 안겨준 납작하고 평평한 표면이 아니라 굴곡이 있는, 높낮이가 형성되는 구조를 지녔다. 예를 들어 화면 중심부는 들어가 있고 위, 아래로 각각 일정한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있거나 그 역으로 이루어졌다. 혹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기울어져 있는 식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측면에서 보아야만 표면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속기 쉬운 우리 눈의 맹점을, 시차를 두고 측면에서 깨닫게 해주는 작업이다. ● 또한 정면과는 다른 색채, 다른 상황을 확연히 드러내 보여준다. 사실 회화는 캔버스 표면을 물감 층으로 또는 여타의 오브제나 물질로 덮어나가면서 결국에는 새로운 피부로 환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홍미희의 이 작업은 캔버스나 패널 등의 지지대위에, 일정한 크기로 자른 보드지를 쌓아올려 붙인 다음에 착색을 해서 이룬 색채의 띠들이 선을 만들어 내는/ 그려내는 부조로서 일정한 높이로 융기된 표면과 종이와 물감으로 빚은 독특하게 형성된 재료의 물성, 그로인한 촉각성, 회화와 조각의 결합에 이룬 모종의 상황성 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는 전략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일정한 간격을 지닌 보드지를 절단해서 반복적으로 부착시킨 작업은 수평의 선들을 지시하고 이 색띠들의 미세한 높낮이의 차이는 슬그머니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자 두 개의 색으로 이루어진 화면 사이에 또 다른 색채가 어른거리고 그것이 묘한 환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이 또한 다분히 차갑고 기계적인 선들 사이에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울림이 들락거리는 굴곡, 결 내지 골을 형성하고 있다. 이 파임은 은은한 색채들과 어울려서 공명처럼 퍼지는 편이다. 사실 이 작업은 다분히 조각적 작업에 해당한다. 화면에 요철효과를 주고 실제적으로 깊이를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평면에 저당 잡힌 레이어들은 수직으로 올라가고자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평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둘 다 주어진 화면의 평면성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평면위에 축적되어 수직으로 올라가 융기하는 선들의 높이는 정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높이/깊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측면에서의 시선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 작업은 정면과 측면의 시선 모두를 필요로 하는 당위성을 지닌다. 그러니 그림을 보는 관자의 시선, 몸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체험에 의미를 두는 작업에 해당한다. 수동적인 감상이 아니라 다분히 능동적인 감상의 개입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이처럼 홍미희의 작업은 주어진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서 그 평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요철효과를 주어 입체감을 만들고 정면과 측면에서의 관람의 시선을 유도하는 한편 회화와 조각의 경계가 애매한 지점을 공략하는 등 여러 전략들이 혼거하고 있다. 신중하게 선택된 색채와 정교한 레이어의 배치, 벽으로부터 독립된 구조체로의 화면/물질, 그리고 종이와 캔버스 및 물감 등으로 제작된 공정의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제한된 틀 안에서 형식적 공정으로 좁아질 위험 부담이 그만큼 클 수도 있다. 해서 좀 더 완성도가 높은 마무리 처리나 물성에 대한 감각, 화면에 대한 또 다른 인식 등은 향후의 과제일 수 있을 것이다. ■ 박영택
Vol.20190206b | 홍미희展 / HONGMIHEE / 洪美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