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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213_목요일_05:00pm
후원 / 안산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관람종료 30분전 입장마감
단원미술관 DANWON ART MUSEUM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충장로 422 (성포동 737번지) 2관 Tel. +82.(0)31.481.0505 www.danwon.org
여성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의 고군분투와 자존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 목소리는 너무 쉽게 지워지고, 이름은 내 허락도 없이 그저 주어진다. 나는 끊임없이 지워지고 주어지는 것들과 씨름하지만 끝끝내 좌절한다. 그럼에도, 내가(네가) 경험해 온 반복적인 실패들이 단지 비극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하고 위무할 것이다. 소외된 목소리를, 사소하지 않은 언어를,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일상을. ■ 박슬기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기 ● 2cm 정도의 두께에 세로로 긴 타원형의 오브제가 눈높이 위치로 벽에 걸려 있다. 오브제 아래에 탁자 하나가 벽에서 살짝 띄워진 채 놓여있다. 관객들은 이 두 물건이 여성이 외모를 가꾸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화장대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탁자와 탁자 주변의 바닥에는 10cm 정도의 폭으로 재단된,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는 긴 천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타원형의 오브제와 흩어진 긴 천에는 텍스트가 회색실로 수놓아져 있다. 타원형의 오브제에는 흐릿하게 쓴 "나는 한 번도 나인 적 없었구나"라는 문장과 회색실로 수놓은 "너는 언제나 날홀로 남겨둔다"라는 문장이 교차로, 비스듬히(위태롭게) 새겨져있다. 탁자 위와 바닥에 흩어진 천에는 아프리카, 베트남, 젊은 여자, 다문화가정, 깜둥아, 혼혈, 살결, 몸매 등등의 단어를 포함하는 문구 혹은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긴 천에 새겨진 문구와 단어들을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혼혈, 중국, 베트남, 다문화 등의 단어는 작품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종 차별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음을 말한다. 함께 발견할 수 있는 "젊은 여자의 살결", "한국 남자랑 결혼하러 왔냐", "중국여자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에 쓰는 거야" 등등의 문장을 통해서 우리들은 인종 차별과 결부된 성차별과 성적 멸시의 문제까지도 이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다. ● 작품 「너는(나는) 언제나(한 번도) 날홀로(나인 적) 남겨둔다(없었구나)」는 다문화특구도시로 지정된 안산시 '국경 없는 마을'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과의 인터뷰 기록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탁자 위와 전시장 바닥에 흩어진 흰색의 긴 천에 새겨진 텍스트들은 이 지역의 이주여성노동자들이 한국 남성들에게 일상적으로 듣는 말들이다.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값싼 두루마리 휴지를 생각하면서 작가가 제작했다는 흰색의 긴 천은 한국 남성들의 개념 없고 폭력적인 말의 값어치와 이 남성들이 생각하는 여성들의 한없이 보잘 것 없는 지위를 시각화하기에 아주 적절하다. 작가는 두루마리 휴지를 상징하는 흰 천에 남성들의 말을 새겨 기록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 그 자체라고 비판한다. 더불어 여성들만의 고유한 전통적 기술로 여겨지는 자수로 이 말들을 기록함으로써 이 언어들 자체가 성적인 멸시와 혐오의 대상, 비천한 인종으로 대상화된 이주여성들이라는 것과 한국이라는 사회 내에서 이들의 지위가 보잘 것 없으며 이들이 언제라도 하찮게 취급당하거나 처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킨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연상 작용을 통해 작가는 여성들이 수용하기 힘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작품의 제목이 적힌, 거울을 상징하는 타원형의 오브제는 작가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오브제에 적힌 텍스트 "너는(나는) 언제나(한 번도) 날 홀로(나인 적) 남겨둔다(없었구나)"는 온전한 자신 혹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불리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성적 쾌락과 멸시, 혐오와 비천한 인종으로 대상화되는 여성들의 현실과 이런 현실에 봉착한 여성들에게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그럴 의지도 없는 사회를 가리킨다. 더불어 이러한 여성들의 존재 자체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임을 말한다. ● 작가 박슬기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신과 타인의 절망적인 경험을 전달한다. 특히 고유한 인격과 정체성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누군가(가족)를 위한 대상 혹은 특정한 목적(성적 쾌락과 성적 폭력)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해 한국 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여성이 직면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문제의식을 최근작인 「죽은 정물화-김치와 된장 그리고 부라자」, 「죽은 정물화-꽃, 뱀, 고깃덩어리 그리고 앞치마」에서도 이어간다.
두 작품 중 「죽은 정물화-김치와 된장 그리고 부라자」를 살펴보자. 작품은 세 점의 영상과 한 점의 정물화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각각의 영상에서 각기 다른 연령대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여성을 연기한다. 영상 속 여성들은 사회가 만들어낸, 그리고 여성이 사회적 억압을 내면화하면서 여성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여성들이다. 첫 번째 영상에서 작가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김칫국물을 담은 컵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선다. 작가는 고무장갑을 낀 손을 김칫국물이 담긴 컵에 넣고 빼기를 팔릭(phallic)하게 반복한다. 사려 깊지 않게 반복되는 행위로 컵의 김칫국물은 결국 거의 쏟아지고 입고 있던 새하얀 원피스는 김칫국물로 더러워지게 된다. 두 번째 영상에서 작가는 검은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의자에 앉은 뒤 준비해 온 스타킹의 한 쪽 다리부분에 미리 준비해 둔 된장을 퍼 담는다. 작가는 된장을 스타킹으로 옮겨 담은 뒤 정성스럽게 만진다.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면 된장을 더 옮겨 담은 뒤 재차 모양을 다듬는다. 모양을 다듬는 행위는 핸드잡(handjob)을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이 행위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된장을 옮겨 담은 스타킹은 남성의 성기와 비슷한 형태로 다듬어진다. 그러나 된장과 스타킹의 특성으로 인해 다듬어진 물체는 손으로 잡고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흐느적거릴 뿐이다. 여성은 영상이 끝날 때까지 이 흐느적거리는 물건을 붙들고 씨름한다. ● 이 두 영상에서 작가가 나열한 1차원적인 상징들은 영상 속 두 여성이 김치녀와 된장녀임을 암시한다. 작가는 이 두 여성 집단을 새롭게 재해석한다. 특정 범주의 여성들이 책임과 의무를 피하고 권리만 주장하는 김치녀라고 남성들은 비난하지만 실상 대부분의 여성들은 일평생 가사노동이라는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첫 번째 영상에서 작가가 착용한 고무장갑과 김칫국물 그리고 김칫국물로 더럽혀진 원피스는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반복되는 가사노동으로 여성의 삶은 (가사노동의 결과물, 예컨대 김칫국물로) 얼룩져 있음을 말한다. 두 번째 영상으로 작가는 자신보다 능력 있는 여성을 견디지 못하는 자격지심으로 좌절해 남성성을 발현하지 못하는 남성을 위무하는 쿨한 여성을 재현한다. 작가는 팔릭한 행위(컵에 손을 넣었다 빼는 동작과 된장이 담긴 스타킹을 손으로 주무르는 동작)로 자신에게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나보려고 한다. 그러나 김칫국물을 다 쏟아버려도 더러워지는 것은 자신의 옷이고 정성스러운 핸드잡에도 물건은 흐느적거려 실패로 끝나버린다. 결국 여성의 노력은 긍정적인 결말을 맺지 못한다. 세 번째 영상은 이 비극을 기정사실화한다. 작가는 여성의 신체를 보정하는 대표적인 물건인 브래지어를 머리에 쓰고 나와 가위로 브래지어의 컵 부분을 구멍 내 바닥에 떨어뜨린 뒤 까치발로 망가진 브래지어 위를 뱅글뱅글 돈다. 브래지어를 야심차게 벗어던지고 사용할 수 없게 망가뜨려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그것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고 맴돌다 그 위에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회와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낸 스테레오타입화된 여성상을 극복하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이 시도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는 아마도 남성 중심으로 구조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실패와 좌절의 은유일 것이다. 실패와 좌절을 재현한 뒤 작가는 마지막으로 영상에서 사용했던 도구들을 진열해 정물화를 그린다. 작가 스스로 명명한 이 「죽은 정물화」는 자신의 시도를 기리는 소박한 상찬이자 실패에 대한 개인적인 애도의 표현일 것이다. ■ 오경미
Vol.20181210e | 박슬기展 / SLIIKY PARK / 朴슬기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