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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일요일 휴관
비아아트 VIAART 제주도 제주시 관덕로15길 6 Tel. +82.(0)64.702.7022
치유되지 않은 기억의 트라우마, 그리고 증언 ● 이번 전시에서 이지유가 증언하고자 하는 내용은 러일전쟁 이후 일제침탈과 해방정국의 민족분단, 4.3과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혼란정국에서 민초들이 감내해야 했던 핍박과 좌절, 소외와 고통,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기록들이다. 작가는 이를 환기하기 위하여 몇몇의 인물들, 사건과 장소, 물자와 소품들을 매개로 사건들을 역추적하면서 확증할 수 있는 증언과 자료를 제시하거나 이를 예술로 풀어감으로써 미적 욕망주체로서의 작가의 관점을 내밀하게 기술해 내고 있다. ● 이지유가 "우리 주변을 가르는 수많은 경계들, 넘을 수 있는 경계와 넘을 수 없는 경계들 사이를 가로질렀던 수많은 배들, 그리고 그 배를 탔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 바 있듯이 이 '기억의 시간'을 재현해 내기위한 첫 번째 모티브는 「돌아오지 않는 배」다. 작가는 러일전쟁에 참가했다가 귀환 후 일본 여객선으로 둔갑, 제판항로(濟阪航路)에 투입되어 제주도민의 1/4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던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에 우선 주목한다. 이 배는 러시아, 소련, 일본으로 국적을 달리하면서 한반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결국 2차대전말 미군에 의해 격침될 때까지 일본제국주의의 흥망성쇠를 지근에서 지켜보았다. 작가가 이 배를 주목하는 이유는 언급한 바대로 제주도민을 오사카에 실어 나르는 가운데 욕망과 좌절, 소외와 핍박을 맛보게 한 매개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와 운명을 함께 한 이 배는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자침(自沈)한 코리예츠호, 그리고 해방 후 일본과 제주를 오간 복시환 등과 오버랩 되며 숨 가쁜 역사의 장면으로 담담하게 기술된다. 우리는 침몰하는 배에서 역사의 비정함을 보고 순항하는 배에서 암울함의 역설을 보며 출가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선상의 풍정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과 비극적 삶을 예견한다. 제국주의적 가치에 의해 의지와 무관하게 굴절된 한국의 근대사가 그렇듯이 제주의 근대사 또한 이에 의해 파생된 폭력에 의해 피폐화된 역사를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처지에 놓인 여러 나라들에게 덧씌워진 제국주의 침탈과 국가폭력 앞에서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일궈온 동아시아 민중들이 공유한 과거이자 현실이며 나아가 극복해야 할 공동의 미래이다.
이러한 식민제국주의사의 궤적에서 고단한 삶을 감내해야 했던 제주출신의 민초들이 이지유가 주목하는 두 번째 장면이다. 이번 전시 「돌아오지 않는 배」는 지난 2016년 전시 「유영(遊泳)」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고 있다. 「유영」에서 작가는 4.3의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평생을 살았던 제주해녀 故 양의헌 할머니의 개인사를 통하여 정치적 분단이 어떻게 가족을 해체하고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남겼는가를 조명한 바 있다. 이번 「돌아오지 않는 배」는 양 할머니처럼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었던 '재일제주인'으로 확장하여 국권상실과 민족분단, 4.3이라는 민족사적인 비극 속에서 민초들이 감내해야 했던 디아스포라적 삶이다. ● 발언의 객관성과 사실의 명증성, 그리고 전시의 완성도를 위해 작가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고 기록했다. 작가는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의 고령의 제주인들이 사는 츠루하시 시장 인근 '사랑방'을 찾아가 강동호, 임용길, 송복희 등 재일제주인 1세대를 비롯해 양의헌 할머니의 딸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경계인으로 살며 소외와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그들의 삶은 식민자본주의 하에서 쓰이고 버려지는 하나의 소모품이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재일제주인 김준평에 주목하게 되는데 양석일의 소설 「피와 뼈」에서 그는 끊임없이 타자를 말살하는 괴물 같은 존재다. 최양일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진 김준평이라는 남자를 통해서 제국일본의 폭력이 어떻게 사회적 마이너리티에게 일상화∙내면화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여 잔인한 생존 방식과 거친 일상, 폭력과 욕망으로 얼룩진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자 신화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서사극이기도 하다. 이지유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상식과 일말의 양심조차 없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산 한 남자의 적나라한 모습을 통해 혈육 간의 애증과 가족의 의미, 근대기 재일제주인의 피폐한 삶의 역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나 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물음으로 귀결시키는 한 남자의 지독한 삶을 보면서 분노보다는 연민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일본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해녀 양씨」는 격동기 제주해녀의 삶을 디아스포라적 관점에서 서술한 수작이다. 여기에서 이지유는 식민자본주의의 그늘에서 휘청거리며 자신을 지탱해 온 제주해녀의 고단했던 일생을 통해 시대의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모진 삶의 역정에 주목한다. 자녀를 남한과 북한에 찢어 보내고 자신은 일본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양할머니의 기구한 삶은 재일제주인의 삶이자 동아시아 유민들의 시대적 삶이기도 했다. 작가는 「해녀 양의헌과 북의 가족」이라는 그림을 통해 완곡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소외된 개인이 시대의 폭력에 얼마나 무기력한가! 발언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결핍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양할머니를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둘러있는 북측 가족들의 모습은 단란해 보이나 뭔가 불안하다. 중앙부에 있어야 할 또 다른 주인공들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빛바랜 가족사진에서 이 점을 발견한 것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식구들의 재회와 결핍의 가족사진은 우리민족이 숙명처럼 감내해 온 이산(離散)의 지표이자 극복 불가능한 운명이기도 하다.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노파의 모습은 애써 담담하나 삶의 풍파에 당당히 맞서왔던 파란만장한 일생을 대변하고 가족들의 평온한 표정에서 지난했을 한 가족의 과거사, 더 나아가 우리의 숨가픈 현대사가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세련된 언어구사와 더불어 회화적으로도 준수한 이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무엇일까' 곰곰이 되뇌게 한다. ● 「검은 여자들」, 「군대환」, 「멜튼개로의 피신」과 같은 작품은 내용적으로는 타자들의 섬 제주인들이 유민으로 떠돌 수밖에 없는 역사적, 현실적 동기들에 관한 내용이다. 각각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간에 묘한 긴장성을 띠며 화면을 장악하고 그 화면은 강한 추상성을 띠며 대상들을 구축한다. 수채를 수묵처럼 다루는 그의 착색기법은 특이하게도 일종의 배채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배채법은 종이의 뒷면에 색을 칠하여 은은한 느낌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기법(技法)으로 전통 초상화 등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이지유의 그림은 전통의 배채법과는 그 목적이 매우 상이한데 역설적이게도 사실(寫實)을 지향하고자 함이 아니라 추상성의 발현을 통해 회화적 깊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적 실험의 일환이다. 종이에 염색을 하듯 물감을 먹여 번짐과 드러남을 선별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가는 이지유의 작업방식은 그런 면에서 새로운 형상성의 발현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아울러 이지유는 작품 발표를 위해 재일제주인들이 일본을 오갔던 항로를 추적하며 제작한 의미 있는 영상작업을 발표하고 있다. 제주, 관탈, 현해탄을 경유하여 오사카에 이르는 지루한 여정, 그 지루함의 끝에 감내한 차별과 핍박, 결국은 북송(北送)의 과정에서 귀국은 했으나 귀향은 하지 못한 유민들의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을 건너며 '막막함'을 응시하던 수많은 원혼들의 절규와 원성을 들을 수가 있다. 이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들은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역사적 과오는 또 다른 트라우마로 굴절된다. ■ 이경모
Vol.20181208i | 이지유展 / LEEJIYU / 李誌洧 / painting.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