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1218_화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02:00pm~06:00pm
아터테인 스테이지 ARTERTAIN stag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과거에 있는 현재의 방 ● 작품을 놓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림이 참 오래되어 보이네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별생각 없이 나온 그 말을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 되새김질 해본다. 회화를 놓고 오래되어 보인다고 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김현태의 작품을 이미지만 놓고 판단한다면, 그가 현재를 그리는 작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모님이 가져오신 박사모 달력(의 지난 날짜), 1960-70년대 영화의 한 장면, 자신이 살던 동네의 옛 풍경 등이 화면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화면에 담기 때문인지 작가의 회화는 늘 채도가 낮다. 마치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사진을 발견했을 때처럼 말이다. 한 순간 선명했을 이미지는 그 위에 시간의 잡다한 결들이 얹히면서 바래진다. 마치 그 순간을 소환하듯, 작가는 연필과 파스텔을 사용하여 화면에 탁한 색채를 입힌다. ● 그렇다면 낡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루하기에 잊혀야 할 것인가,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둘 다 작가가 원하는 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렇기에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를 당시의 영화나 사물들을 통해 탐구한다. 이 탐구의 시작점은 작가 자신의 가족에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모님 세대와 작가 세대의 이념과 의식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유신시대의 기억을 그리워하고 찬양하는 부모, 그리고 그와는 반대의 관점에 있는 작가는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관찰의 대상으로 상정한다.
에드워드 랠프(Edward Relph)는 집이라는 장소는 개인의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유일무이한 토대라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집은 단순한 장소일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과의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신만의 판단의 법칙을 만들어가는 장이기도 하다. 작가 또한 집을 통해 자신이 바라보는 문제의 근원을 마주하기 위해 공간을 살펴본다. 그리고 부모(세대)와의 가장 극단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물로 벽에 걸려 있는 '박사모' 달력을 선택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찬양하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 「우리집 달력」(2016~2017)을 통해 작가는 과거의 날짜들을 적어가며 박정희와 유신이라는 복잡한 기호를 재생산했고, 12월에는 종이인형처럼 너덜해진 박근혜의 이미지를 넣어 2016년 12월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또한 1월이 아닌 12월의 달력부터 전시장 벽에 걸어, 2대를 걸쳐 내려오는 씁쓸한 역사의 반복을 암시했다. 달력에 적힌 날짜는 과거이지만, 그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 작가가 박사모 달력을 선택한 것은, 자신과 부모님 사이의 역사 평가 기준의 충돌과 더불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우리집 달력」은 많은 비판과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작품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온라인 댓글에서의 난동을 굳이 여기에 적을 필요는 없을 테다. (내용이 궁금하다면 전시장에 걸린 「뉴스」(2018)을 확인하시라.) 그 모든 평판을 차치하고 작품에서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박정희와 박근혜의 초상이 아닌, 달력 앞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오래된 복조리와 염주, 낡은 꽃이었다. 흔히 시골집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이지만 「우리집 달력」에서 이들은 12개의 화면 안에서 조금씩 움직이거나 이동하여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분명 칭송하고 찬양하는 특정 인물의 이미지 위에 믿음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겹쳐 신격화하면서도, 동시에 그 이미지를 가려버리는 무심함은 인식의 기이한 부조화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박정희, 유신, 박근혜, 탄핵 등 한국 현대사와 사회적 이슈를 상징하는 아이콘을 달력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부모님의 사고방식을 형성한 대상이 여전히 자신을 철저히 둘러싸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균열의 근원을 더 설명하기 위해 다시 집안을 둘러본다. 이후 그가 선택한 것은 거실 가구 위에 놓인 정물들이다. 「건설적인 이야기」(2018)는 그저 평범한 거실의 혹은 안방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이미지를 파헤치면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정물임을 알 수 있다. 산업화의 일꾼이었던 아버지의 노동을 치하하는 투명한 상패, 정면을 바라보는 당당한 아버지의 사진들, 낡아 빛을 잃은 조화와 지구본의 조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그렇기에 시대착오적인 이 정물화는, 비단 작가의 집일뿐만 아니라 '우리' 집의 풍경이기도 하다. 놓인 사물들에서 여성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꽃이겠으나 그마저도 낡고 바래버렸다. 그래서 '건설적인 이야기'라는 제목 또한 가족의 이야기라기보다 아버지(세대)를 위한 구호에 가까워 보인다. 가구 위에 올라가 있는 이 정물들의 배열은 그저 집 한켠에 아무렇게나 놓인 것이 아닌 부모님의 시대부터 형성된 이데올로기와 관념들이 쌓여서 만들어낸 시대의 스틸 라이프(Still Life)이기에 박제처럼 남아 집안의 중심을 차지한다.
「훌륭하게만 자라다오」(2017)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치원 졸업 사진으로 추정되는 삼 남매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사실 액자는 살짝 기울어졌고, 아이들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졌고 감정을 추측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제목이기도 한 '훌륭하게 자라라'는 말은 이제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아이들에게 부모가 보내는 하나의 염원이었을 테다. 그리고 '훌륭하게 자라라', '바르게 살자' 부류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추상적인 문구들은 전근대적 발상에서 도출된 기대이자 명령이며, 아버지가 그리고 국가가 원하는 인간상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창이다. 실제로 '훌륭하게 자라라'는 문구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위상을 드높이다', '발전에 기여하다', '희망과 밑거름' 등의 키워드가 담긴 뉴스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순수한 개인의 의지와 이상에서 탄생한 것이라기에는 너무도 익숙한 문장들이다. 이 강고한 문장 뒤에는 유신정권이 그 시스템 안에 공동체가 안착할 수 있도록 사용했던 훈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그림자는 개인의, 가정 안에 깊게 침투하여 가족 구성원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건설적인 이야기」에서 발견했던 가부장적 태도는 「훌륭하게만 자라다오」에도 드러난다. 화면 왼쪽, 삼 남매 중 남자 아이의 사진 밑에만 그려진 메달 꾸러미는 집안에서 장남에게 거는 기대를 전달한다.
그래서 작가의 가족사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다. 「건설적인 이야기」, 「훌륭하게만 자라다오」는 권력 구조로 인해 개인의 사상과 관념, 윤리가 적재되는 방식 그리고 그 견고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따라서 거실에 놓인 사물들의 배열이 바뀌는 것을 사실상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 그러나 작가는 그 희한한 정경을 피하거나 거부하기보다, 과거의 흔적들이 현재라는 시대 안에서 충돌하고 이질감이 발생하는 지점을 계속해서 예민하게 주시한다. 언젠가 작가가 집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 호랑이 무늬 내복을 입은 조카가 태극기를 흔들며 해맑게 놀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아마 그 태극기는 집회에 나갔던 어머니가 가지고 온 것이리라. 그 태극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상관없이 아이는 천연히 웃고 있다. 김현태의 작업이 보는 이를 자극하는 지점은 이런 것이다. 호랑이(무늬), 아이, 태극기, 박사모, 복조리, 지구본, 상패 등 어떤 상징적인 기호들이 마주했을 때 발생하는 시각적 충격과 그 기호들이 충돌하고 파편화됨으로써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사회 구조나 관념에 의해 가려졌던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건설적 이야기」 속 사물들이 놓인 장면은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현재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영원히 어느 한 과거의 기억을, 더불어 사고와 개인의 이념을 담는다. 벌어진 틈이 메워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건설적 이야기」를 포함한 작가의 방은 단순한 스틸라이프가 아니다. 그것은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는, 우리의 앞에 놓인 오늘날의 극사실화다. ■ 김미정
Vol.20181208e | 김현태展 / GIMHYUNTAE / 金玹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