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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127_화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에이라운지 갤러리 A-LOUNGE 서울 종로구 백석동1가길 45 2층 Tel. +82.(0)2.395.8135 www.a-lounge.kr
많은 일들이 일시에 전모가 파악되지 않는다. 어떤 일은 전모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고, 어떤 일은 알았다고 하기엔 이미 뒤늦었을 수도 있다. 모호함(obscurity), 우유부단(irresolution), 불규칙(irregularity), 이러한 단어는 한 작가의 작업 제목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이의 머리 속에서도 수없이 맴도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 뒤에 숨어 있는 고민과 갈등, 혹은 망설임을 짐작해본다. 글 쓰는 이의 머리 속에서도 또 다른 목소리가 바짝 달라붙어서 불온한 마음을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1. 추상을 추상하다 ● 임소진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신은 "구상을 추상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을 추상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자신이 원, 구, 휘감는 형태, 퍼지는 형태, 모아진 형태 등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패턴이 있지만 이것들 자체로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일종의 제스처 즉 몸짓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빌렘 플루서의 말을 빌려 본다면, "몸짓이란, 그것이 뭔가를 나타내기 때문에, 그것이 의미 부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몸짓인 것이다."1) 특히 플루서는 그리는 몸짓을 보기 위해서 움직임의 목표를 알아야 하며, 회화는 명백하게 의도된 움직임으로써 미래를 향하는, 그려지는 그림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며, 화가는 그리기의 몸짓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재인식하게 된다고 하였다.2) 그렇다면 임소진은 자신의 제스처에 대해서 의미 부여를 보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추상'이라고 하는 개념이 일정 부분 이유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추상을 추상하는 것이라는 말로 넘어가보자.
먼저, 미술사에서 추상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한 것은 1910년경인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바실리 칸딘스키나 미학자 빌헬름 보링거 등이 추상에 대해 이론화를 시도했다.3) 이들은 추상을 시각적으로는 대상의 비재현이라는 점 외에도 정신성이나 감정과 연결 지어 생각하였다. 이후 20세기 중반 추상표현주의는 시각적 형식을 중시했다. 그러자 로잘린드 크라우스와 이브-알랭 부아는 추상보다는 비정형(informe/ formless)이라는 개념으로 일부 작가들의 작업을 이해하고자 했다.4) 이들은 조르주 바타유가 『도큐망』의 「비평사전」에서 구체적 정의를 내리지 않고 사용한 비정형이라는 용어를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오로지 작동(operation)적인 존재를 가진다'고 하며 자신들도 정의 내리지 않은 채 사용을 감행했다. 물론 크라우스와 부아는 모더니즘이 예술의 지각주체를 신체와 분리시키는 문제를 일으켰다고 보고, 자신들은 비정형을 통해 지각하는 주체를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이상적 통일성으로 통합시키고자 하였다.5) 특히 크라우스는 "바타유는 내부에서부터 의미가 따로 분열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알다시피 모든 분열 행위는 폐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도 하였다.6)
꽤 난해한 바타유 – 크라우스 & 부아를 거쳐서 감히 임소진의 '추상을 추상한다'는 말을 비정형에 연결 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드로잉은 종이 위에서 시작했다가 최근 불규칙적인 표면을 가진 석고판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는 이전부터 데카르트 평면과도 같은 반듯한 사각평면보다는 마치 협곡과도 같은 굴곡 지고 구겨진 표면의 조형을 만들어왔는데 급기야 드로잉도 매끈하지 않은 표면에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크라우스와 부아가 고든 마타-클락 등의 작업에서 읽어낸 지형적인 표면이며, 바로 엔트로피의 증가다.7) 임소진은 작업실 바닥에 깔아 놓은 비닐의 구겨진 모양대로 캐스팅하여 석고판을 만들었는데, 이 얇지만 구글거리는 판은 일종의 지형을 연상시키며, 그 표면 위에서 작가가 제스처처럼 남긴 물감의 흔적 역시 불가역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으나 오로지 작동만 있는 비정형이다. 종이 위에 흘린 물감이나 드로잉들 역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존재한다기보다는 흐르기 위해서, 면 위에 존재하기 위해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종이 드로잉에서는 작가가 아직 사각 평면을 의식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작업실 바닥에 깔아 놓은 우글거리는 비닐에서 출발한 석고판만큼 시작부터 불가역적인 분열의 흐름으로만 작동하기는 쉽지 않다.
2. 죽은-머리들 ● "…제법 치켜든 공모양의 머리 거의 하얀 창백한 푸른빛의 눈 쿵 중얼거림 쿵 침묵. 마치 보이지 않는 흰 실로 꿰매진 것 같은 입. 쿵 어쩌면 어떤 본성 거의 절대로 기억으로부터 오지 않는 한순간 거의 절대로. 각자 흔적을 지닌 뒤엉킨 흰 벽들 거의 하얀 잿빛의 의미 없는 신호들. 빛 열기 모든 게 알려지고 모든 게 하얗고 보이지 않게 만나는 표면들. 쿵 거의 1초도 결코 되지 않는 중얼거림만 간신히 어쩌면 어떤 의미 그 조차 거의 절대로 기억으로부터 오지 않는…"8) ● 한편, 임소진의 「검은 수박」(2018)은 사무엘 베케트의 단편 「죽은-머리들」의 '쿵(Bing)' 챕터를 연상시킨다. 작중 화자인 '나'를 어떤 존재로 상정하는 것은 읽는 이의 자유지만, 글 제목으로 인해 일차적으로 떠올리게 되게 되는 화자는 '머리'다. 불확정성과 우연의 글쓰기라고 하는 베케트의 글쓰기 방식 때문에 이 글은 파편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나 그 모호함 가운데에서도 작중 '나'는 통합되지 않을 뿐, 몇 가지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물론 베케트의 단편을 「검은 수박」과 연관짓게 된 것에는 임소진이 공유해준 짧은 글이 작용했음이 사실이다. 작가는 수박을 두개골에 비유했다. 그가 하나가 아닌 예닐곱 개로 만든 검은 수박은 베케트의 '죽은-머리들'이 되어서, 곧 "작은 빈자리 거대한 빛 온통 하얀 정육면체 흔적 없는 어떤 기억도 없는 평면들. 끝없이 평평한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작은 몸 사방이 똑같은 회색 땅 하늘 몸 폐허들. 잿빛 모래와 뒤섞여 펼쳐진 폐허들 진정한 도피처. 정육면체 진정한 도피처 결국 네 개의 벽이 소리 없이 뒤로 넘어간. 오직 이 변함없는 꿈 지나가는 시간만이 있었을 뿐. 오직 영원한 회색 공기 몽상 지나가는 빛만이 있었을 뿐"9)인 곳, 바로 전시장 한 켠으로 가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쿵 중얼거림 쿵 침묵.
3. 변곡점 ● 임소진이 사용해온 작업의 재료 중에는 말린 크랜베리가 있다. 그는 이것을 에폭시나 레진으로 응고시키곤 했다. 쭈글쭈글한 모양으로 건조된 크랜베리를 아예 화학물질 속에 담가 박제해버리는 방식은 비록 크기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비정형의 형태를 더이상 변화하지 않는 순간에 이르도록 응고시킨다는 측면에서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물집」(2018)에서도 비슷하다. 이 작업은 초반 컴퓨터 모델링으로 미루어 보건데, 동그란 구 모양에서 출발하여 표면에 이물질이 도톰하게 들러붙어 불규칙한 형태로 최종 디자인되었다. 마치 씹던 껌을 구슬 표면에 붙여 놓은 형태를 커다랗게 형상화 한 것이라고나 할까? 물론 작품 제목처럼 신체의 한 부분에 생긴 물집처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들러붙은 껌이든, 신체의 일부분에 생긴 물집이든 이들의 시각적인 존재감은 미미할 수도 있지만, 원래 없었어야 할 존재가 불쑥 야기시키는 이물감과 불편함은 신체의 모든 감각과 신경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작업실 문을 간신히 통과할 크기로 제작된 「물집」은 심리적인 상태의 응고이며, 아직까지 임소진의 작업에서 주되게 관찰되는 (지배적인) 굴곡의 형상이기도 하다. 그의 제스처는 끊임없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형상은 언어화를 망설이게 하는 것들, 즉 추상에서 출발했다. 또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심리나 감정이기에 대상화라는 것이 모호하다. 그것은 끊임없이 어떤 유기적인 형상으로 변할 수도 있고 아예 안개처럼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하나의 변곡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학에서 변곡점은 곡선이 오목에서 볼록으로, 또는 볼록에서 오목으로 변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정확히 규정 가능한 지점이다. 그러나 예술과 인생에 있어서 우리는 기울기의 변화, 즉 곡률을 미리 알 수 없다. 지나고 보니 우리는 어떤 깊이를 통과했고, 어떤 높이를 올라갔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은 채 작동적인 존재인 비정형일 뿐이다. ■ 이성휘
각주 1) 빌렘 플루서 지음, 안규철 옮김, 『몸짓들』(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8), 11. 2) 위의 책, 100. 3) 칸딘스키는 회화에서 추상적인 본질은 어떠한 실제적인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각형, 원, 삼각형, 마름모, 사다리꼴, 그 밖에 무수한 여러 형태들과 선, 그리고 색채와 같은 형식으로 봤는데, 즉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뜻했다. 한편, 보링거는 추상충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그는 자연 원형의 예술적 재현을 모방충동이라고 하면서 추상충동은 모방충동과 구분되는 것으로 보았다. 바실리 칸딘스키 지음, 권영필 옮김,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서울: 열화당,1999), 빌헬름 보링거 지음, 권원순 옮김, 『추상과 감정이입』(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1982). 4) 이브-알랭 부아, 로잘린드 크라우스 지음, 정연심, 김정현, 안구 옮김, 『비정형: 사용자 안내서』(파주: 미진사, 2013) 5) 위의 책, 32. 6) 위의 책, 293. 7) 위의 책, 214-219. 8) 사무엘 베케트 지음, 임수현 옮김, 『죽은-머리들/ 소멸자/ 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23-24. 9) 위의 책, 29.
Vol.20181129j | 임소진展 / LIMSOJIN / 任昭陳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