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0820e | 심동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112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율곡로 33(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1. 전시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번 전시 제목인 'I love you so. I love you, so.'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간의 속삭임 같아 보인다. 직설적이고 열렬한 사랑 고백과 함께 뒤에 덧붙여지는 여운 가득한 이 두 문장은,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중에 느꼈던 다양한 감정과 결론으로 도달하기 위한 여정을 뜻한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 내가 찾아내었던 것을 조심스럽게 고백하려는 결심의 은유다. 작품을 통하여 일차원적인 고백을 하는 것에서 넘어서 조금 더 진지하고 진심 어린 발언을 하기 위한 태도와 용기를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 지난 개인전 'Lovers'에서는 서로 대립하지만, 상호보완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 이유로 작품 속에서 우스꽝스럽게 서로 대립하고 교차하고 있는 군상들의 모습을 빗대어 전시를 'Lovers'라고 이름 지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 명사로 한정을 짓거나 명명하는 것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이전 작업에서 보였던 태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가 변했고 이제 조금 더 나아가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고…
2. 작업은 시각 장치의 발전에서 파생되어 범람하는 이미지들이 주는 안도감에 관한 이야기이다. ● 이 이미지 범람의 풍경은 요즘에 이세계(異世界) 만화처럼 분열적이고 괴이한 것처럼 묘사되곤 한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폐허로 전환되거나 미래가 종료된 세계로 그려진다. 대체로 그 묘사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아직 나는 내가 사는 곳의 밤과 낮이 싫지 않다. 다만 앞 문장에 언급한 예언 같아 보이는 묘사처럼 이뤄질까 봐 불안할 뿐이다. 어쩌면 이미 망해버린 나의 주변을 아직 내가 인지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초조함이 들 때도 있다. 이러한 묘사에 대한 나의 미적거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요한 이미지의 재현과 이에 따르는 인지의 이해관계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뒤엉켜있기 때문이다. ● 이 설명못할 뒤엉킴이 왜 발생하는지 말하자면, 이미지 범람 속에서 구현되는 이미지는 어떠한 잠재성과 가능성을 있는지 바라보기도 전에 그저 소비되기만 하기 때문이다. 구현된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다시 증식하는 이미지와 이 소비 구조에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은 다시 우리를 세계에 봉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를 전부 패자로 몰아넣는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이미지의 생산-소비 구조는 언뜻 보기에 마치 모두에게 열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많은 사람을 역사의 기록에 장에 동반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듯 위장한다. 일례로 과거의 기술적 한계에서 발생하는 색감과 노이즈는 필터를 통해 간단하게 재현되어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의 향수마저 쉽게 프로그래밍한다. 유튜브, 애플 뮤직, 넷플릭스 등은 우리의 기억 일부분을 저장한 뒤 그 기록을 뒤져서 우리의 취향을 교묘하고 세련되게 강제한다. 이는 지극히 자본적이다. 역사에 참여하는 지위가 정당한 권리를 가진 기록자가 아닌, 어떤 근원이 존재하지 않는 유사 역사의 생산자라는 것을 감지하게 한다. 이는 질 수밖에 없는 게임 구조이며, 세계가 선물하는 각인이다. 그리고 역사의 한 조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를 체념시킨다. ● 그리고 위에 언급한 괴이한 풍경들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와의 문제가 남았다. 적당히 권태적이며 세련된 비아냥과 어떤 이슈에 대한 선정적이고 상투적인 비평적 과시 같은 태도를 보임으로써, 나는 세계를 제대로 마주하고 있다는 해방감 혹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것은 적들이 보여주었던 방법을 윤리적인 올바름이라는 명제를 구실 삼아 그대로 다시 재현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에서만 머무르는 것도 나쁜 것 같진 않으니까. 어쨌든, 뭐가 되었건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되니까. 그래서 나의 이 애매한 감정을 전시 작품 제목인 '빌어먹을 안도감1)'이라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과연 나는 현실을 정말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인가. 정확히 반격하는 중인가. 적당히 기생하는 중인 것일까.
3. 촬영을 영어로 번역하는 단어 중에서 'shooting'으로 번역되는 것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촬영은 총을 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총과 유사하게 무언가를 향해 겨눠야 하고 버튼을 눌러야 하니까. 이처럼 비디오는 적(敵)을 필요로 한다. 풍경과 피사체가 있어야 한다. 비단 적(敵)이라 지칭을 하지 않더라도 카메라엔 어떤 불길함이 포착되고야 만다. 그러기에 촬영자의 시선은 언제나 의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의도는 프레임을 장악한다. 이미지들은 항상 질주하며 충동적이고, 임시적이고, 우발적이기에 언제나 예민하게 봐야 하고 긴장하며 순간순간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적(敵)에게 손을 내밀어 마주하는 순간의 풍경이 사랑의 한 부분 같아 보였다. 프레임에 담으려고 하는 적(敵)을 대면하며 들었던 감정인 매혹, 애증, 비판 등을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타임라인에 올리면서 보냈던 시간을 긍정하기에 전시 제목 같은 표현이 생각났다. 단순한 이미지 생산자에서 벗어나, 내가 주제와 소재에 취했던 몸짓과 손짓들을 순응의 구조에서 벗어나 불화의 가능성으로 제공해야 한다면, 좀 더 내가 감정을 가지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기에 나는 애증의 적에게 다시 말을 걸어야 한다. ● 4. "[제 작업을 보고] 관객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제 작업 대상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편하고 떳떳하다면 – 설령 그렇지 못하다 해도 – 목표는 꾸준하게 남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러길 바라요. 아니면 말고, 뭐 다음 주에 다른 거 찍을 테니까!"2) ●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를 항상 사로잡았던 '나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영감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불안함과 열패감, 무력함으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을 때, 힘이 돼준 말이었던 케빈 제롬 에버슨(Kevin Jerome EVERSON)의 말을 빌려 글을 마무리하자면, 나는 내가 바라본 세상의 조각들에 대한 여러 감정을 이번 작업에 담았다. 어찌 보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은 무책임한 발언과 황당무계한 이야기의 나열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각에도 발표되는 전형적이고 쓸데없이 지루한 작업 중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저 내가 가진 애정을 표현하려 했고, 이미 펼쳐진 상황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고 사려 깊게 견뎌내려고 노력했다. 주어진 상황을 조금 더 튼튼하고 밀도 있게 바라보며, 카메라를 통해 어떠한 불안함과 가능성을 마주하려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한 질주하는 이미지와 그에 대한 단상을 붙잡아, 관람자에게 붙잡은 단상이 의아하고 생경함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실타래를 엮었다. 설령 이 시도가 불발탄에 머무르더라도 뭐 다른 거 찍으면 되니까. ■ 심동수
각주 1) 딥플로우의 앨범 양화의 수록곡 '빌어먹을 안도감'을 인용하였다. 2) 곽영빈, 2018, 이미지의 막다른 길, 다른 시간, 다른 제스처, 다른 세상 : 케빈 제롬 에버슨론, 국립현대미술관. 39p. 재인용.
Vol.20181125d | 심동수展 / SHIMDONGSU / 沁動水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