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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금련산 갤러리 Geumnyeonsan Gallery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 40번지 도시철도 2호선 금련산역 내 1,2번 출구 Tel. +82.(0)51.645.3900
쇠의 시간을 가로질러 ● 그의 작업은 장정렬(경남도립 학예사)이 이전의 전시 서문에서 "독일 공업 지역의 회색 빛 하늘과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차가운 공기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이번 전시에도 철을 주된 재료로 한 조형물들이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큐빅으로 만든 사각형이나, 또는 철판 의자위에 물을 담은 지난 작업들과는 달리 철판 위에 씨앗을 올려놓아 싹을 틔워 식물을 자라게 하거나, 또는 커다란 판위에 잔디를 올려놓은 조형물들, 또는 가느다란 철로 드로잉을 한 것처럼 보이는 사각형의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에서 특이한 지점은 철판 위에 씨앗을 올려놓아 싹을 틔워 식물을 자라게 하는 조형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대의 조각가들이 쇠를 갈아 쇳가루를 통해 조형의 형태를 만들거나, 또는 쇠에 녹을 내어 형태를 그려내는 작업들은 종종 볼 수 있지만, 그의 작업과 같이 철판 위에 씨앗을 올려놓고 싹을 틔워 식물을 자라게 하는 조형 작업은 흔히 볼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지난 전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도 그가 주된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철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철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갈아 놓은 쇳가루들이나 또는 물이 아니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철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재료들은 잔디와 살아있는 식물들이다. 그리고 지난 전시에서 큐빅의 형태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가느다란 철로 만든 사각형의 조형물이다. ● 철은 물질과 정신을 분리하는 모던 조각에 있어서 철이 지니고 있는 단단한 성질로 인해 조형 정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재료중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에 있어서 철을 갈아 쇳가루를 낸다거나, 또는 녹이 슨 쇳조각으로 조형을 표현한다는 것은 모던 조각이 지니고 있는 조형적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일련의 행위이다. ● 철을 갈아 쇳가루를 낸다는 것은 철이 지니고 있는 단단함이라는 개념에 질문을 던지며, 녹슨 철을 조각의 재료로 이용한다는 것은 물질과 정신과의 경계가 확연히 구분될 수 있는 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가 갈아 놓은 쇳가루와 철판과 음향 장치를 통해 조형적 형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행위를 통해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작가와 감상자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철판에 씨앗을 올려놓고 싹을 틔우거나, 또는 사각형의 대형의 탁자 위에 잔디를 올려놓음으로써 지난 전시에 대한 사유를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를 그의 작업 노트에서 "사각의 형식을 선으로 그리듯이 입체화하고, 그 안에 흙이나 물, 생물을 가두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사고의 한계와 지켜야할 주변의 환경을 놓지 못하는 일상의 이야기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의 작업들과 마주하는 순간 그의 작업은 그가 작업 노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일상의 풍경은 아니다. ● 철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철제 프레임의 입체화한 사각형은 전시 주제에서 보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집을 의미한다. 집이란 것은 무엇일까. 집은 그에게 있어서 철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철제 프레임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통해 외부로 향해 열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 하지만 집은 그의 작업의 일련의 긴 과정 속에서 보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비춰지는 공간은 아니다. 집은 이전 전시에서 보듯이 정신과 물질의 경계가 희미해져 있거나, 시간의 흐름을 통해 점차적으로 그 경계가 사라져가고 있는 그의 시선에서 보면 TV 광고에서 보는 것과 같은 풍경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집은 그의 시선에서 보면 깔끔하고 단단한 사물들에 보호받는 공간이 아니라 그가 작업 노트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흙, 물, 생물을 가두는 행위"이며, 죽어있는 공간에 울타리를 두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들이 가득한 공간에 철제 프레임의 철선과 같이 선을 긋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 그렇기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침대는 그의 시선에서 보면 사각의 대형의 탁자 위에 잔디를 깔아 놓은 작업과도 같으며, 강인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철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식물이 자라나는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의 시선에 의하면 우리가 일상의 공간에 단단한 사물들로 틀을 짜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들이 가득한 공간에 선을 긋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집을 그리다』는 그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집에 대한 사유이며, 사색이다. 하지만 집을 짓고 산다는 것에 대한 그의 시선은 우리의 일상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시선에 위치해 있다. 집은 일상적으로 죽은 사물과 같은 대지위에 견고한 사물들로 우리를 보호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수없이 많은 시간을 쇠와 마주하였던 그의 시선에서 보면 집은 생명들이 가득해 있는 공간에 선을 긋고 살아가는 곳, 자신을 그곳에 한정시키는 곳, 자유와 속박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자신이 내적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와도 같은 곳이다. 그렇다면 집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 조관용
Vol.20181124i | 하석원展 / HASUKWON / 河錫沅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