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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12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살롱 아터테인 SALON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32(연희동 708-2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꽃이 그려진다, 그리움이다. ● 꽃은 원초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절대 타협은 필요 없었을 것 같이. 여전히 누군가는 자신을 바라보고,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대상. 그 자체로 생동감이 가득해질 수 있는 무엇. 그것은 희망이었고, 기대일 수 있다는 것. 꽃은 그렇게 우리에게 그 희망과 기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꽃은 꽃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그냥 이러저러한 말들로 표현이 가능한 아름다움의 대상, 세상 가장 쉬운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더더군다나 희망이나 기대와는 상관없이. ● 원본이 사라진 복제에 대해 물어본다. 정말, 복제가 원본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복제입니까. 하는 질문이 아니고서는, 굳이 원본을 기억해 내고 밝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되물었을 때, 박세진 작가는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을 무심히 바라봤다. 그 허무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해서, 작가의 기억은 언제나 허무하고, 간절했을 것만 같았다.
박세진의 그림에는 들어가고, 나 갈 수 있는 문과 같은 장치가 있다. 그것은 웰컴처럼 환영은 없는 대신, 그렇다고 무섭고, 어두운 지하 세계로 끌어 들일만큼 험한 문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화면에 놓여있는, 출입의 신호들이 그렇게 편안하지는 않았다. 마치, 처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갔던 중국식당의 먼지 가득한 발처럼, 내가 들어간다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결국 들어간 순간부터는 허무했었던 기억처럼, 작가가 그리고 있는 출입의 상징은 누구나 들어오길 바라면서, 아무도 들어오지 말았으면 하는 결계인 것 같다. ● 그리고, 그 결계가 의식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박세진의 꽃이 핀다. 수술과 암술이 사라진, 꽃 그 자체. 만약, 우리가 수술과 암술이 없는 꽃으로 살았다면, 굳이 예수나 부처가 필요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의 화면 위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꽃처럼.
작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그 무수한 세월이 단순하게 꽃으로 집약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내 삶의 시간들을 돈으로 환산해 주문할 수 있는 희망과 기대의 택배가 있다면,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작가는 그것을 주문했을 것 같다. 꽃을 중심으로 곳곳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흔적은 마치 그 아름다운 택배를 꼭 받고자 꾹꾹 눌러 쓴 주소처럼, 그들에게 무엇이든 전해 주었어야 할 너무나도 또렷한 기억들인 것 같다. 그 기억들은 사실, 그들의 죽음과 함께 남게 되었다는 것. 그것으로 작가는, 무척이나 긍정적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고, 그렇게 늘 웃고 있지만, 결국 그 웃음소리는 누군가에 의해 묵음 처리된 후라는 걸 느끼면서, 그냥 소리 없이 웃는 것이 훨씬 더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꽃은, 죽음을 기념하고 동시에 살아있음을 기념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다. 그래서 박세진의 꽃은 슬프다. 그러나 영광스럽게 빛난다. 매일을 영광스럽게 맞이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죽음이라는, 무섭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늘 목전에 두고, 우리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 화려한 꽃으로 대신한다. 세상 어느 누구도, 꽃으로 죽음을 혹은 유한한 삶의 시간을 그렇게 화려하게 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의 발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저 깊은 산중에도 꽃은 피었다 지듯이, 꽃은 그들 삶의 일부분일 뿐. 무엇을 기념할 만큼 찬란하지는 않았었다는 것. 누가 보지 않더라도 피었다 질 수 밖에 없는 시간의 연속적 작용일 뿐이라는 것. 이미 작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과부하가 걸릴 만큼 많은 것들이 꽃에 담겨 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 그에게 꽃은, 소통이기 때문인 것 같다. 명확한 정의 없이 하루하루 쌓여가는 일상은, 언제나 지루하고 무겁다. 아무리 가벼운 마음으로 그 하루를 맞이 한다고 해도, 결국 잠을 자야지만 끝이 난다. 그러나 나는 잠을 잘 수가 없다. 나에게 그 하루의 일상은 잠을 잘 수 없음으로, 더 무겁고 더 지루하고,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단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숫자를 지닌 날일 뿐이다. 작가를 대신해, 영광스러운 날들을 맞이하고 있는 꽃. 어쩌면 불면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작가는 작위적으로 꽃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삶을 통해 그려졌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무엇인가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시큰둥하게 바라 본 내 삶들이 때로, 죽음과 밀접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누군가의 무덤에 꽃다발을 놓듯이, 매일을 기념할 수만 있다면, 박세진의 오늘처럼, 우리의 오늘도 그리움으로 영광스럽게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영광스런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고 그 어떤 미련도 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 임대식
Vol.20181123h | 박세진展 / PARKSEJIN / 朴世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