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1115_목요일_06:00pm
후원 / 인천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인천광역시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월요일 휴관
공간 듬 space DUM 인천시 미추홀구 주승로69번길 26 (주안7동 1342-36번지) Tel. +82.(0)32.259.1311 cafe.naver.com/daggdum www.facebook.com/daggdum www.instagram.com/space_dum
'『시퀀스#』프로젝트'는 '공간 듬'이 집이었던 순간, 삶의 다양한 정서들이 함축된 공간이었던 순간을 주제로 이묘, 이다흰, 김지희 3명의 작가가 릴레이 형식의 개인전을 진행합니다. 전시와 더불어 작가들의 시선을 공유하며 쓰여진 양말금 작가의 에필로그가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 『시퀀스#』프로젝트의 세 번째 김지희 작가의 『닿으면』展은 2018년 11월 15일(목)부터 12월 2일(일)까지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상을 주목하고 그것과의 관계에 관한 질문들을 작업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 공간 듬
시퀀스#3_닿으면 ● 자늑자늑하게 닿다. ● 규칙적인 일상의 무늬가 모호해지고 생물의 살아있는 감각이 낯설어질 때, 고립된 것 같던 주변의 공간에서 어떤 분위기가 나타난다. 눈앞의 면은 운동성을 가진 채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위로 빛이 다닌 잔상이 흉터처럼 남아있다. 면과 면사이의 경계가 하늘거린다. 붓질은 쉴 새 없이 여백을 발견하거나 면을 채워나간다. 담담한 속도로 면을 따라갔을 때 어수룩하지만 분리되며 반듯한 풍경은 몸의 감각으로 연결된다. ●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몰입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몸을 타인처럼 응시하면서 그 장면을 그림으로 재현하거나 익숙한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한 낯선 풍경을 그리곤 한다. 최근에는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상을 주목하고 있다. 나에게 인상이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나의 시야에 침투하거나 신기루처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렇게 나의 일상에 들어온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대비되는 힘들이 서로 겨루고 있는 듯한 기류와 투박한 색면으로 이뤄지는데, 이 같은 인상들이 나의 무의식이나 내가 처한 현실과 어떠한 관계에 놓여있는지는 여전한 질문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것을 느끼고 그 느낌을 그리려 한다. ■ 김지희
시퀀스#에필로그 ● tasting – about ● 들어가며 ● 매 년 봄 프리지아가 피는 정원 한 켠 / 초여름 신발주머니를 들고 하교하는 학교의 운동장 / 서늘한 새벽 냄새를 맡으며 등교하는 길 / 창문을 열고 전기장판을 켜던 가을 날 / 새벽 다섯 시 쯤 어렴풋이 들려오는 아빠의 출근 준비 / 달빛에 눈이 부셔 잠이 깼던 그 날 / 엄마 몰래 창가에서 피운 담배 / X의 방
궁금한 맛이다. ● 그 궁금함에 먹어보았다가 배탈이 난 적이 있기 때문에 모두 다 먹어보는 버릇은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의 식감이 아니라 맛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가까이해 코를 박아 냄새를 맡아보는 것과 혀로 핥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 물론 배고파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집이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왜, 피 맛이 궁금해서 살짝 핥아먹는 것과 비슷하다. ●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긴 하지만 가장 처음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일 거다. 그러니까 치아가 막 생겼을 아기가 호기심에 모든 물건을 입에다 넣었을 때 말이다. 다음 기억은 지우개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종이로 쌓인 지우개는 고무 냄새가 났다. 그 탄력 있는 재질은 힘주어 누르면 아주 약간 눌렸다가 도로 원래 모습을 찾았다. 비틀어보고 커터칼로 얇게 썰듯 잘라보기도 하고 끝부분을 조금 잘라 지우개똥을 만들기도 하며 어디까지 구부러지나 마구 괴롭혔다. 그렇게 9일 동안 괴롭힌 지우개가 18개였다. 이제 손으로 만지는 건 지겨워져 버렸다. 아기가 호기심에 손에 쥐는 물건을 입으로 가져갔던 그때로 돌아간 듯 지우개의 맛이 궁금해졌다. 혀로 조금 핥아보았다. 앞니로 지우개를 잘리지 않을 정도로, 탄성을 테스트하듯 앙앙 물었다.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 입안에서 혀로 굴리며 놀다 잘게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19개의 지우개를 거치고 나니 이제 정말 지우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제야 내가 지우개를 다 알았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과 희열을 느꼈다. 9일 동안 지우개에의 모험에 빠져 잠을 설칠 정도였는데, 그날은 나에게 주어진 할 일이 다 해냈다는 듯 아주 깊게 잠이 들었다. 지우개의 끝맺음, 그 경험이 인상 깊었는지 하루에 한 번은 꼭 어떤 물건을 맛보아야만 그날이 마무리되며 잠이 들 수 있었다. ● 껌보다는 껌 종이, 카스테라의 종이, 노란 고무줄, 샤프심들을 맛보았다. 사실 씹어서 맛볼 수 있는 것보다 씹을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플라스틱이나, 유리, 천 비닐 같은 것들이다.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공산품이 대부분이고, 전에 카스테라 종이를 잘못 먹어 배탈이 나고서는 씹어서 맛을 보는 일보다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다. ● 이제 웬만한 것들은 굳이 먹지 않아도 맛을 예측할 수 있어 혀로 핥는 정도에서 그쳤다.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핥고 난 다음 (이제 주변에 더는 핥을 것이 없을 때) 흥미가 떨어졌다. 내 방 밖의 물건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긴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방 안에서 숙제를 하다 문득 종이를 핥아 보니 평소와는 다른 맛이었다. 습기를 머금어 눅진눅진한 맛이 강해졌다.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으로 된 파우치, 이불, 벽지, 창문틀. 다시 한번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하는 것들보다 맛이라는 그 감각이 삶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친구를 사귈 때는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애인을 사귀면서 문제가 생겼다. 물로 나의 변태스러움은 사람에게까지 적용되었다. 그것을 징그럽게 생각하던 사람, 이해해주며 더 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 등 이미 내 삶의 방향은 그 감각의 기준에 휘둘리게 되어버렸다. 표면을 사랑하고 탐닉했던 그 순간 표면은 어느새 실재가 되어버렸다. 서글프진 않았다. 이미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감각의 세계가 되었고, 실존하기 때문이다. ■ 양말금
Vol.20181115b | 김지희展 / KIMJIHEE / ???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