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애란_서정국_박준하_김종훈_정명오_반울
참여연구원 / 김고은_이정은
주최 / 세계문화유산 교류 프로젝트 blog.naver.com/whep1999 후원 / 경기문화재단 협찬 / 계원예술대학교 총괄기획 / 박준하 기획 / 이생강 코디네이터 / 탁은정
관람시간 / 10:00am~06:00pm
KUMA 미술관 경기도 의왕시 계원대학로 66 계원예술대학교 내 Tel. +82.(0)31.420.1722 www.kaywon.ac.kr
세계문화유산프로젝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재에 대한 단순한 관심, 혹은 그것을 문맥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각을 통해 무언가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하였다. ● 세계문화유산을 둘러싼 여러 가지 현상 중 그것이 정치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적이기에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을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문화유산의 기념비화 또는 관광자원화, 그에 따른 도시미관사업과 도시계획 수정, 경제 활성화에 대한 낭만적 기대 심리, 지역사회와의 괴리 등. 이러한 것들은 수많은 정치적 프로젝트들이 간과하거나 덮어버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회문제들이다. 이밖에도 지역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아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많은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개입하고자 한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성함에 있어 여러 가지 목적과 시대적 상황이 있었겠으나 그중 정조의 애민사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수원화성은 산성이 아닌 도시방어 성임에도 불구하고 성곽이 곧지 않은 이유는 성곽이 축성될 길에 민가가 있으면 이를 우회하여 축성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수원화성 일재시대와 전쟁으로 인해 훼손되거나 사라진 부분들에 대한 복원과정을 보면 200년 전 그때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된다. 복원이라는 명목 하에 철거민이 되어 몇 십 년을 지켜오던 집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현재에는 관광객 주차장이나, 편의시설을 위한 철거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이곳은 오래된 집들도 많은 편이다. 재개발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수원화성 안의 구시가지는 대부분 화성 축조 이전 생겨진 마을로 오랜 삶의 흔적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집은 개개인의 기억이 보존되어있는 역사이자 문화의생산 중심지다. 오늘날의 젊은 한국인들은 불행하게도 고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직 고향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남아있는 사람은 행운아라 할 수 있다. 태어나고 자라난 집과 고향의 골목길을 걸을 때 많은 추억을 되살리게 되며 그 기억들은 우리를 지탱해주고 존재하게 해주는 근원이 된다. 기억이 파괴될 때 우리의 존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헌 것, 오래된 것은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것들조차 "새 것"이다. 수원화성 내에 있는 행궁은 1920년대 일재시대를 거치면서 모두 사라진 뒤 1993년에 수원시에서 화성행궁 복원을 위한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수년의 공사기간을 거친 뒤 2003년 복원공사가 완공되었다. 짧은 공사기간이 말해주듯이 행궁은 전통기법을 사용하여 복원 했다고는 볼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행궁은 2003년 완공 후 인기사극드라마촬영장으로 사용되었고 현재에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있다. 하지만 행궁이 완전히 복원된 것은 아니어서 2016년 행궁의 마지막 퍼즐인 우화관을 짓기 위해 120년의 역사가 있는 신풍초등학교를 허물기로 하고 폐교시켰다. 신풍초등학교는 1896년 2월15일 건립되었으며, 전체 5천평(17000㎡)가운데 3천평(10000㎡)이 2단계 복원사업 부지에 해당하는데 신풍초교 동문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폐교시키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화성행궁의 역사만큼 신풍초등학교 120년의 역사도 소중하다고 본다. 마치 드라마 셋트장 같은 화성행궁의 복원을 위해 수 십 만 명의 기억이 깃들여있고 역사가 있는 초등학교를 이전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이는 현대사회가 200여 년 전 군주 시대 때 보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과거 정조는 수원 화성이 한양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잇는 위치에 있는 것을 고려하여 전국의 상인들이 모여 거래할 수 있도록 길을 새로 만들어 많은 양의 물건을 거래하는 대상으로부터 소상인들을 보호하였고 가난한 상인들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 주기도 했다. 이렇게 상업을 활성화시키는 여러 정책이 실시되어 화성의 경제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수원 화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매업의 중심지로서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던 곳이었다. 적어도 2007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등재 전까지는 말이다. ● 수원화성의 복원과 유네스코등제 후 화성은 더 이상 백성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곽이 주가 되어 복원과 관광자원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일반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은 사라져 가고 있다. ● 문화의 주최는 사람들이다. 과거 문화유산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생기게 되고 살아있는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교류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작가들과 함께 예술가의 시각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간과한 여러 부분들에 대해 작가의 시각에서 개입하고자 한다. ■ 세계문화유산프로젝트
Vol.20181028c | ( ) 이거나 ( ) 이거나-2018 세계문화유산프로젝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