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1027_토요일_11:00am
참여작가 에마누엘라 카마치 Emanuela CAMACCI(이탈리아 Italy) 고타르드 에르제베트 GOTHARD Erzsébet(헝가리 Hungary) 뭉크-얼딘 뭉크조리크 Munkh-Erdene MUNKHZORIG(몽골 Mongolia) 노태호 NOH Tae-ho_신미연 SHIN Mi-yeon 박정익 PARK Jeoung-ick(한국 Korea)
주최 / (사)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 후원 / 충청남도_(재)충남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연미산자연미술공원 YEONMISAN NATURE ART PARK 충남 공주시 우성면 연미산고개길 98 Tel. +82.(0)41.853.8828 www.natureartbiennale.org www.yatoo.or.kr
서(書)는 의미상 문자를 쓰는 것 또는 쓴 것을 뜻하며, 동양에서는 예술의 한 장르를 이룬다. 이는 서(書)가 의미 ∙ 내용의 표기가 우선이지만 동시에 문자를 아름답게 쓰려는 의식과 함께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서(書)는 편지글을 말한다. "서라는 것은 같다는 것이니, 그 말을 그 뜻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라는 정의에 드러나 있듯이, 자신의 마음을 거짓 없이 옮겨 담는 것이다. 서(書)는 형식과 내용이 자유로운 편이다. 문장의 길이에 제한이 없으며, 크게는 학문이나 시정에 대한 논의에서 작게는 일상생활의 자잘한 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내용이든 자유자재로 써내려갈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의 본질은 가슴 속의 회포를 풀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 있으므로, 그럴듯한 미사여구보다는 정연한 문장과 진실을 담은 내용이 중요하다. ● 동양 예술에 있는 서(書)는 추상적인 형태와 리듬의 연구로서 기초적인 선(線)과 형(形)에 대한 미학 또한 전달한다. 동양의 서(書)가 2000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리듬과 형(形)의 양식을 탐구하였고, 특히 식물과 동물 등 자연으로부터 예술적 감흥을 구현한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 공주의 금강을 끼고 있는 연미산에는 천년의 '고마나루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공주시의 지명전설이자 인간과 동물의 결연담으로서 오늘날까지 지역의 상징적 정체성으로 등장하고 있는 설화 속'곰'이야기는 지역민의 관심을 넘어 자연미술 작가들에게 큰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2017년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주제'천 년의 시간을 지나 온(醞)'에 이어지는 이번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천년의 시간을 지나 서(書)'를 통해 보다 깊어진 미학적 탐구를 펼치고자 한다. ● 지역에 스며있는 역사와 설화를 바탕으로 서(書)의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연계의 리듬과 형(形)을 탐구하고 재해석될 '곰'이야기에 미학적 기대감을 가져본다. ● * 고마나루 설화: "아득한 옛날 연미산에 큰 굴이 있었고 그곳에는 커다란 암곰이 한 마리 살았다. 인간을 사모한 암곰은 어느날 나무꾼을 납치하여 같이 살았다. 나무꾼이 도망갈 것을 염려한 나머지, 사냥을 갈 때마다 바위로 문을 막았다. 세월이 흘러 새끼가 둘이나 생기자, 암곰은 안심하고 동굴 문을 막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를 틈타 나무꾼은 도망갈 수 있었다. 강변으로 도망가는 나무꾼을 발견한 곰은 두 새끼를 데리고 강변으로 달려가 돌아오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나무꾼은 곰의 애원을 외면하고 강을 건넜고, 그것을 보고 있던 곰은 새끼들과 함께 강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나무꾼이 건너온 나루를 고마나루 또는 곰나루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고마나루 설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 '고마'는 실제 곰이 아닌 곰처럼 생긴 우악스러운 여인이었다는 설도 있어 작가적 상상력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 * 공주의 지명은 고마나루에서 온 말이다. 즉 '고마나루'는 '고마'+'나루'의 결합으로 '고마'는 '곰', '나루'는 '진(津)' 즉 웅진(熊津)으로 풀이한 것이다. 웅진은 공주의 옛 지명이다. ■ (사)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
시너지-곰이 물로 변한 것 같이 ● 곰은 강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몸을 쭉 뻗어 물로 변화되어, 강과 한 몸이 된다. 곰은 강과 공생하며, 자신만의 대화를 만들어낸다. 곰의 몸은 살아서 강물의 흐름과 시너지를 이룬다. 곰은 마치 춤을 추듯이 강과 함께 흘러간다. 이 작품은 강과 더불어 여행하면서, 마치 포옹하듯 앉으라며 관람객을 초대한다. 곰은 만남의 장소가 되고, 숲과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들과 교감한다. 친숙하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공간이다. 시간은 흐르다 마치 하나의 베일처럼, 하나의 녹청처럼 그 위에 머물 것이다. ■ 에마누엘라 카마치
소용돌이 ● 나의 작업은 장소에서 영감을 얻었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서 강 쪽으로 걸어내려오면서, 나는 유별나게 생긴 네 그루의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나무들 사이에서 한 척의 단발 보트를 상상하게 되었다. 금강을 바라보며, 나는 곰과 나무꾼의 옛 이야기를 회상했다. 추격자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은 모든 곳에 그가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그 보트에서도 나무꾼에게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동치는 보트 바닥에서 나무꾼은 그를 쫓던 곰을 보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평온한 그리운 집으로 향하던 나무꾼이 곰의 형상을 보았던 지점을 찾아보라! 나는 이 작품의 건축적 요소를 사용해 집착, 그리움, 성향 등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 고타르드 에르제베트
철갑을 입은 곰 ● 천년의 시간은 우리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매우 긴 세월이다. 곰의 전설이 깃든 이곳 연미산은 그 긴 세월을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천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연미산 숲속에 나타난 고마 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나무꾼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거친 엔진톱의 굉음만이 들려온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왁자지껄 몰려온다. 천년을 넘어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곰은 그 옛날 나무꾼을 그리워함이 아니다. 어색함과 두려움으로 어느덧 스스로를 방어하는 철갑을 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뭉크-얼딘 뭉크조리크
고마의 서(書) ●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숲을 둘러보다가 이 근방에서 가장 오래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되는 나무 한그루를 만났다. 가파른 경사면에 자리잡은 이 나무는 마치 아주 오래전의 그 설화를 전해주려 하는듯 보였다. 천년 전 이곳의 자연 풍경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현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시간동안 소멸과 탄생 그리고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하며 결국 현재의 우리에게 까지 닿았다. 고마나루 설화속의 고마는 이 숲속의 나무와 자연을 관통하고, 융합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때'로부터 현재까지 천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연은 여전히 고마와 우리의 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서있는 이 숲과 자연 자체가 고마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온 '고마의 서(書)' 가 아닐까? ■ 노태호
예술과 마을_예술농사 프로젝트 ● 우리는 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땅심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먼저 잡초라고 불리는 들풀을 관찰하고, 자연 에너지의 유용성을 실험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구체화시킨 지속가능한 생태문화인 퍼머컬처(Permaculture)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1970년대에서 시작되어 범지구적으로 퍼져나간 세계적인 생태운동인 퍼머컬처는 지속적인(permanent)이라는 뜻의 perma-와 농업을 의미하는 agriculture의 -culture가 합쳐져 '영속농업',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문화라는 뜻도 지니고 있기에 '영원한 문화'라고도 한다. 이는 생태를 중심으로 의식주를 포함한 의료와 예술, 영성, 등 다분야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공주 원골마을에서 다양한 생명력이 넘치는 텃밭을 만들기 위해 밭을 갈지 않고, 거름을 주지 않으며,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비닐덮개 대신에 풀을 덮어주는 등의 실험을 하고 있다. 작고 느리더라도 자력으로 자라나는 작물을 지켜보고, 기록하려한다. 우리나라 토종씨앗, 그리고 향기로운 꽃과 허브를 심어 변해가는 계절을 느끼고 이 땅의 생태계와 하나 되어 본다. ■ 신미연_박정익
Synergy-As the Bear Becomes Water ● The bear slides quickly into the river, stretches and deforms, and becomes water itself, joins the river in a single element. The bear is in symbiosis with the river with which it establishes its own dialogue. The body of the bear is a living body that moves in synergy with the waves of the river. It moves with it like in a dance. The work lives and travels, it welcomes the visitors to sit down, as if in a hug. The bear becomes a meeting point in close relationship and harmony with the forest, in interaction with the public. An intimate and constantly evolving space. Time will flow and rest on it like a veil, a patina. ■ Emanuela CAMACCI
Whirling ● My work was inspired by the place: Walking down towards the river in the Yeonmisan Nature Art Park, l saw four specially-shaped and positioned trees. It was my imagination that I could see a single-tipped boat between the trees. Looking at the Geum River, I remembered the bear and woodcutter ancient story. Like a man running away sees his chaser from everywhere, it may have happened to the woodcutter on the boat. He might have seen the bear's image on the bottom of a whirling boat. Find the place where the woodcutter saw the image of the bear, while he was awaiting his silent, intimate home! I wanted to express the mixed feelings of attachment, longing and inclination with the tools of architecture in this work. ■ GOTHARD Erzsébet
Iron Bear ● Time of a thousand years is a very long time that we can not easily measure. There have been a lot of changes in Mt. Yeonmi that embraces the legend of the bear. Everything is strange to the Goma bear that comes back to the forest after a thousand years. There is no longer the trace of the woodcutter, only a roar of a rough chain saw. Strangers are coming with a boisterous noise. The bear that appears after a thousand years is not the one who longs for the woodcutter. Wouldn't it armor itself with iron to defend caused by fear and awkwardness after all? ■ Munkh-Erdene MUNKHZORIG
Letter from Goma ● I looked around the forest before starting my work and met a tree that I thought could have been the oldest in the neighborhood. Located on a steep slope, the tree seemed to convey the tale of a long time ago. Although it is not possible to know the natural landscape of this place exactly a thousand years ago, it could not be the same as it is today. Nevertheless, for a long time, extinction, birth, gathering, and scattering occurred repeatedly to reach us finally at this time. Goma of the Gomanaru tale penetrates the trees and nature of this forest, fusing them, and constantly tells its stories. Even though a millennium has passed since 'that time,' nature is still connecting Goma with us. Wouldn't it be possible that this forest where we stand and the nature itself is a 'Letter of Goma' wherein Goma kept telling its story unceasingly? ■ NOH Tae-ho
Vol.20181027h | 천 년의 시간을 지나 서(書)-2018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성과보고展 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