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1019_금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_메르시엘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공휴일 휴관
오픈스페이스 배 OPENSPACE BAE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65번길 154 B2 Tel. +82.(0)51.724.5201 www.spacebae.com
부산에는 많은 이름의 큐레이터가 있다. 공공미술관, 사립미술관, 대안공간 그리고 화랑 등에서 묵묵히 그들의 입장에서 큐레이터 의 꿈을 실천하고 있다 고 이동석 선생의 "구보 씨의 하루"의 글귀가 문득 떠오른다. 큐레이터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잔상들이 짧은 시간 중첩된다. 아시다시피 공공기관 학예연구사를 제외하면 그렇다 할 큐레이터의 장이 부재한 부산의 현실이다. 조촐한 공간과 예산이지만 그래도 큐레이터 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지역의 숨은 실력자들의 장을 제공 하고자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유효하다면 매년 지속하고자 한다. 공공기관의 학예연구사는 참여는 업무에 과중이 될 터이고 그래도 많은 관심으로 현장의 큐레이터 와 소통되길 기대한다. ■ 오픈스페이스 배
그물망의 (비)가시성 ● 예술이란 단어의 정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수시로 변해왔다. 그리고 지금, 예술에 대한 정의는 실로 다양해서 뭐라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각기 다양한 사람들의 취미(taste, 趣味)와 의견이 반영될 뿐이다. 필자에게 예술은 공부를 통해서든, 삶 체험을 통해서든, 아니면 남들과 다른 기행(奇行)을 통해서든 작가들 나름의 상상력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어떤 무엇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아가 우리를 자극하여 보다 좋은 삶을 꿈꾸도록 해주는 무엇이다. 이번 전시에 필자가 강민기 작가를 섭외한 이유는 젊고 유망한 작가를 소개한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필자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제 막 첫 번째 개인전을 마친 강민기 작가를 통해 필자 본인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 강민기 작가의 지금까지 작품들에 대해서는 김효영 큐레이터가 『SET_NET』(공간힘, 2017)의 서평 「포획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사유」에 잘 정리해놓았다. 작가는 얼핏 보면 '호화스런 소파'와 '자유의 여신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바퀴벌레로 만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붕괴된 환상」(2015)이란 조각작품을 시작으로, 남성의 성기를 본을 떠 만든 「달콤한 환상」(2016) 시리즈를 거쳐, 그물로 무엇인가를 붙잡는 「변질된 상징」(2017), 「Captured」(2017), 「Capturing」(2017)을 발표했다. 조각에서 설치와 영상으로 이어지는 형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 유지되게끔 하는 장치를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되게 유지된다. 예를 들어 「붕괴된 환상」 시리즈는 자본주의의 메타포라 여겨지는 사물의 이면에 추악함이 있음을 고발하는 작품이었고, 「변질된 상징」은 자본주의의 소비 욕망을 에로스적 욕망, 즉 성욕으로 대체하여 그 실체를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개인전 『SET_NET』에서 보여준 작품들은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가, 그물망이 물고기를 옭아매듯이, 우리 개개인을 더 나아가 세계 전체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몇 안 되는 작품들이지만, 그 안에서 변화의 지점을 찾고자 한다면 그 변곡점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꼽을 수 있다. 김효영은 앞선 글에서 "이번 신작은 작가가 말하고자 한 세계의 환상에 대해 조금 더 분석적으로 횡단하려고 시도했다. 사회체제라는 시스템의 이면이나 실체적인 모습을 현상적으로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스템이 개인의 욕망의 구조를 어떻게 변형시키면서 유지되고 강화되는지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였다"고 적었다. 말인 즉, 이전의 작품들은 자본주의의 이면을 고발하는데 그쳤다면, 개인전을 기점으로 작가는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김효영 큐레이터와 생각이 같다. 이전에는 미시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면,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작가는 문제를 보다 거시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작가가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루게 된 이유는 자본주의와 그것이 새로운 형태인 신자유주의가 발생시키는 폐해에 대한 확신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적이 뚜렷하다면, 그것의 폐해를 고발하며 공격하기보다, 근본적으로 그 문제를 파고 들어가 원인을 분석하고 맹점을 찾는 것이 수순이다. 작가는 이 수순을 통해 주체적이지 못한 개개인을 찾아냈다. 포스트모더니즘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듯, 내가 욕망하는 그 무엇은 내가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대타자가 욕망하는 그 무엇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그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아주 유용하게 활용한다. 작가는 그 지점을 비판한다. 이 체제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설사 속히 진보적이라는 자들이 주적이라 일컫는 자본가, 재벌이라 할지라도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다. 이 시스템의 승리자는 오롯이 자본 그 자체다. ● 이번 전시에 필자는 강민기 작가의 최근 영상작품인 「Captured」와 「Capturing」 두 점을 상영한다. 다른 작품들을 제하고 두 작품만을 선정한 이유는 이 두 작품이 작가의 현재 생각을 군더더기 없이 잘 전달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aptured」는 발가벗은 한 인간을 빨간 그물로 겹겹이 쌓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영상이고, 다른 영상 작품인 「Capturing」은 한 사람이 허공에 그물을 계속 던지며 무엇인가 잡으려고 애쓰는 영상이다. 「Captured」는 자본주의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보여준다면, 「Capturing」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다지 치밀하지 않음을 가시화한다. 그물이 물고기는 잡으면서 동시에 물이나 공기 등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그 구조가 촘촘해 다음은 상상하기 힘든 신자유주의 안에서도 해방의 가능성이 있음을 「Capturing」은 말한다. 예술이 비단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한다면, 예술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먼저 우리가 현재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 인지하고, 그곳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고찰해야 한다. 강민기 작가는 현재 우리가 위치한 곳이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안임을 말하고, 그곳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그 시스템을, 우리를 옭아매는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 볼 것을 권한다. 작가는 무엇인가를 잡아 가둘 때 유용하지만, 무엇이든 다 잡을 수 없는 그물망을 이용해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했다. 이 그물망은 가시적이지만 동시에 비가시적이기도 하다. 보고자 하면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보고자 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부당하고 부조리한 시스템은 그렇게 (비)가시적이다. ■ 이보성
감정. 몸. 장소. ● 파악할 수 없는 타인의 속내와 감정,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심리상태가 주는 불안감. 이것이 박정원의 그리기를 추동하는 요인이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의 진실에 가까이 닿기 위해 보이는 단서들을 포착하여 관찰한다. 불현 듯 발견되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 옷의 질감과 거리의 색감이 그 대상이 된다. 그렇게 채집된 일상의 잔상을 응축된 스틸컷 형태로 표출한다. 벗어 놓은 어제를 다시 입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박정원은 비일상적 감흥의 장면을 끄집어낸다. 이로써 타인의 감정을 가늠해보고 불안한 심리를 들여다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여자들을 그린 「여자여자여자」와 사교춤을 추는 남녀의 모습을 담은 「춤」 드로잉을 선보인다. ● 여기 박정원의 두 장소가 있다. 여성 탈의실과 사교 댄스장. 연관성 없어 보이는 별개의 두 공간은 완전히 사적이지도, 완전히 공적이지도 않은 중간지대의 성격을 띤다. 탈의실은 익명의 군중 속에서 옷을 입고 벗는 행위가 허용된 유일한 공공장소이다. 일반적으로 공공장소는 도시의 광장이나 공원 같이 가시적으로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말한다. 그 안에서 개인은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는 시선에 노출된다. 나의 신체는 언제든 복수의 타인으로부터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탈의실은 공공장소이면서도 관찰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된다. 이 공간에서 관찰의 대상은 오직 거울을 통해 보는 '나'여야 한다. ● 현실에선 관찰이 금기된 곳이지만 전시장에 놓인 회화 속 공간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관찰자가 된다. 실물사이즈에 가까운 삼면화 형식의 전신 군상 「여자여자여자」는 마치 거울을 통해 '나'를 보는 듯 그림 속 인물들과 마주하도록 한다. 서로의 시선에 대한 무심함을 담보로 노출을 감행한 그림 속 여성들은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선을 드러내며 긴머리를 매만지는 여성의 나르시시즘적 표정과 몸짓, 속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교태 어린 손끝과 몸동작에서 자기검열과도 같은 의식적 여성성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의 시각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여성성이기보다는, 매일 화장하고 단장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야하는 학습된 섹슈얼리티이자 고단함이 배어있는 습관 같은 것이다. ● 「춤」 드로잉 속 남녀는 손을 맞잡고 몸을 밀착시킨 채 한창 탱고에 몰입하고 있다. 박정원은 우연히 사교댄스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속 낯설고 흥미로운 남녀의 표정을 보고 도저히 그것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교 댄스장은 남녀가 춤을 배우고 연습하는 공적 장소다. 춤을 추는 동안 신체 접촉과 감정의 교류가 허용된다. 음악의 템포에 따라 팽팽해졌다 느슨해지는 남녀의 탱고 동작은 성적 긴장관계를 연상시킨다. 날것 그대로의 도취 상태인 이들의 표정에는 성적 욕망이 짙게 배어있다. 둘만 떼어놓고 본다면 그것은 공적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적 행위와 같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결합을 이루지 못한 좌절된 사랑이자 욕망이다. 상대 없는 자위행위와 같다. 그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애수를 자아낸다. ● 인간의 본능과 욕망이 사회라는 제한된 공간, 통념, 의식이라 불릴 수 있는 어떤 문화와 만났을 때 그 살아있는 날것의 감정들은 어떤 형태로 표출되는가에 대해 박정원은 스스로 묻고 그리기로 응답하고 있다. 감정의 진리에 대한 의지는 타인을 알고자하는, 그를 통해 자신을 알고자 하는 의지이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감정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 작가는 지금 더 깊은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도달의 정점을 향한 중간지대의 어디쯤에 있다. "거대하고 모호하기만 한 세상이 창작을 통해 아주 조금은 알만한 것으로 변모된다고 느낀다"는 박정원. 그의 작품을 주목한다. ■ 추희정
몽환적인 색채와 풍경으로 가득찬 그곳. 정말 물속은 편안한 공간일까? 물속에서 머무는 짧은 시간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하는 일상의 표현을 재현한 송정현 작가의 「Alice in Underwater」는 Elena Kalis의 「Alice in Underwaterworld」 시리즈의 오마주에서 시작한다. 「Alice in Underwater」의 수중에서 표현된 사진은 수면위의 세계에서는 표현하지 못하는 신비로움을 담고 있다. 중력을 거스르며 공기가 없는 물속 표현을 통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거울을 통과해서 나오며 보았던 현실과 비현실적 세계를 물과 오브제의 각각의 색감을 통해 몽환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물'이라는 특정 공간의 시각적 재해석은 사진학을 공부하면서 남들에 비해 뒤 늦은 호평을 듣기 시작한 송정현 의 연출 사진에 대한 욕심과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가는 특정 개념이나 본인의 생각을 덧붙여 누구나 다 작업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닌 나와 타인, 그리고 불특정다수에게 인정받을 만한 어려워 보이지만 시각적으로 놀란 만 한 연출사진 작업을 보여주므로 써 어릴 적 즐겨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송정현의 작업은 재미있고, 편안하다. 그녀의 작업 앞에서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이 작품의 의도나 미학적 의미를 고민하기 위해 애써 심각해지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꿈에서 깬 앨리스의 방처럼 공간적 개념이 깨져 있는 공간에서 현실과 이상의 무게를 벗어 던진 한편의 사진동화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만큼이나 혼란스럽다.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가 직시해야 할 이상한 나라의 또 다른 시작이지만 'happily ever after' 자신의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는 관객을 기대하는 송정현 작가의 다음 사진동화 시리즈를 기대해본다. ■ 이아름
Vol.20181018g | CURATORS@BUSA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