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1012_금요일_05:00pm
정중월 음악회 / 2018_1012_금요일_07:3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세종 부강리 고택 세종시 부강면 용포동촌길 43-19
스페이스몸미술관은 '장소의 장소'라는 주제 아래 두 번의 기획전을 개최하였다. 시리즈로 올해의 마지막 조명전 『장소를 품다-부강』은 전통의 새로움으로 사색의 경험을 선사한다. 앞서 이뤄진 정체성과 시간의 장소에 관계한 두 전시를 잇고, 기획의 맺음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세종시 부강리에 있는 고택, 유계화 가옥에 다섯 명의 작가가 연계해 이루어진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를 통해 시공간의 확장성을 시도하고자 함은, 현존하는 고가(古家)와 관계 맺음을 시도함으로써 세태에 따라 흘려버리던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한다. ●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유명세를 치르며 망리단길, 황리단길, 봉리단길, 객리단길 등 비슷한 맥락 형성을 위해 곳곳이 명소가 되고 이름이 붙고 있다. 죽어가는 도시재생사업처럼 오래된 거리가 기준이라면, 결과는 비슷한 카페와 음식점에서 파는 비슷한 음료와 음식이 되겠다. 자본주의의 확산과 미디어 중심의 도시화, 건축기술의 보편화가 빚어낸 결과가 현세대 문화명소이다. 상실된 '토포필리아'(Topophilia)와 고유의 경관이 사라진 '무장소성'과 같은 단어는 목소리를 낸 지 오래되었지만 똑같은 공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계속 생기고 있다. 우리가 고유성이라 여기는 것들은 대체로 획일화된 대중성이다.
사람과 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리와 지리를 닮아가고, 외연이 된 것이 장소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장소를 의미화하고 아울러 장소는 거기 사는 사람을 의미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담은 물질적 산물인 문화는 장소와 필연적 관계에 있으며, 고유한 장소성을 잃은 문화명소들이 비었다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괴리를 인식까지는 가능하나 변화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가치의 중심을 달리해야하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과 공간에서 같은 것을 누린다는 것은 평등함을 느끼게 하고 동질감을 형성하며, 개인의 심리적 위치를 격상시켜주기까지 한다. 그것이 겉보기에 그럴싸하고 유명할수록 그러하다. 편안함과 만족감은 의심과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일상의 낱자보다 예술은 이러한 담론을 이야기하기 좋은 플랫폼 역할을 한다. 대중이 향유하고자 하는 대상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것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유계화 가옥은 1984년 대한민국 국가민속문화재 제138호 '청원 유계화 가옥'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신설됨에 따라 '세종 유계화 가옥'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 2017년 '마을명, 고택'이라는 명칭지침에 따라 '세종 부강리 고택'으로 명명되었다. 고종 3년 (1866)년에 지은 이 집은, 한단 높은 'ㄷ'자형 안채와 한단 낮게 지어진 'ㄷ'자형 사랑채가 맞물려 'ㅁ'자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마당엔 우물, 뒷동산에는 장독대가 있으며, 뒤뜰에는 향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이 고즈넉한 고택은 내부에 깃든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름이 변경된 만큼이나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가 각자의 기억으로 각색되어 있었다. 역사적 문헌, 고증, 지역에서 통용되는 명칭을 고려하여 '세종 홍판서댁'이라는 또 한 번의 명칭변경을 앞두고 있지만, 이 고택에 '유계화'만큼 자연스러운 이름의 소유주는 또 없다. 유계화는 이화여전 의과대에 입학 후 졸업까지 마치지 못하고 고택에 내려와 살았던 여인으로, 외부와의 교류를 최소화 한 채 고양이와 꽃, 활자를 가까이했던 독신 여성이다. 시골마을 가장 좋은 집에서 학벌 높은 독신여성이 평생을 혼자 살다 죽었다는 이야기는 덧붙이지 않아도 흥미로운 쑥덕공론이지만, 주변의 시선에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면이야말로 이야기될 점이다.
스페이스몸미술관 2, 3전시장과 세종시 유계화 가옥, 두 지역의 장소에서 열리는 『장소를 품다-부강』은 서용선, 손부남, 정보영, 정승운, 채우승 다섯 명의 작가가 고택에 일정 기간 머무르면서 고유한 정체성과 역사성을 지닌 장소와 심리적, 물리적 접촉으로 과거의 시간과 장소를 현재화한다. ● 서용선 작가는 도시와 신화, 역사와 자신이라는 고찰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노동적인 육체성을 띤, 거칠면서도 강인함을 특징으로 하는 조각과 회화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모두 볼 수 있다. 감각의 구현을 물질적으로 단단하게 나타내는데 탁월한 작가는 고택에 머물며 그린 드로잉과 다른 장소(경기도 작업실)에서 발현해 낸 조각 작품의 관계가 흥미롭다. ● 삶에서 관계의 연결성을 조형적으로 풀어내는 손부남 작가는 변형과 비약, 유머에 강하다. 유계화 가옥에 얽힌 인물들, 개인의 경험이 담긴 입체작품을 선보인다. 특히나 고택에 자리 잡은 작가의 집에 있던 목재 구조물(나락 보관 창고)을 이동시켜 고택에 안착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한다. 흔들림 없이 예술가의 길을 걸어온 작가가 지금, 이곳, 여기에 위치한 나의 모습을 유계화 가옥이라는 장소와의 관계와 겹쳐 있는 질문을 던진다. ● 시간을 멈춰 빛으로 공간을 만드는 정보영 작가는 유화 작품을 전시한다. 실재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들의 이미지적 결합으로 환영과 실재의 접경을 넘나드는 작가는, 고택의 시간에 주목한 작품을 보여준다. 과거의 흔적이 강하게 지속되는 장소라는 특수성과 작가 특유의 빛에 대한 예민한 포착은, 부수적인 것을 덜어내며 시간이 드리워진 풍경을 보여준다.
하늘과 지형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인 '공제선'을 주제로 오랜 작업을 해 온 정승운 작가의 작품이 고택과 미술관을 잇는다. 비움과 채움에 있어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고민하는 작가의 가는 선이 잇는 게 비단 두 장소만은 아니다. 수적 구조화에 담긴 의미가 자연과 산의 능선과 같은 유연한 넓이를 가지는 다른 작품들처럼, 설치된 공제선들은 공간과 역사를 이어 완만하나 수없이 많은 돌기를 가진 선을 걸어놓는다.
추상 또한 태를 지닌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우연적이지 않고 통제된 형태일 수 있다. 채우승 작가의 작품은 일부를 통해 형을 유추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을 지녔다. 바깥과 안의 경계이자, 경계 너머의 것을 짐작하게 하는 '자락'들은 고정되어 있지만 움직이는 유동성이 느껴진다. 희고 단단하게 나부끼는 '자락'은 영혼 또는 바람처럼 형체 없는 것들을 묶어놓은 듯하다. 공간 이곳저곳에 의도적으로 설치된 '자락'은 유동적으로 목격될 것이다.
『장소를 품다-부강』은 과거의 장소와 시간을 불러내고 물성으로 치환한 작품들을 통해 현재의 자취를 살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고 일상적인 담론이며, 자신의 일상적인 터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차별적 콘텐츠와 건축물에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지역의 고유성, 나아가 내가 딛고 있는 이 장소의 과거와 현재를 고려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주변을 향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주체적 삶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스페이스몸미술관
Vol.20181016j | 장소를 품다-부강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