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곳, 남겨진 조각들 pieces under the shade

구샛별展 / KOOSAETBYUL / 具샛별 / painting   2018_0929 ▶ 2018_1012 / 월요일 휴관

구샛별_붉은 집_캔버스에 유채_194×26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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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929_토요일_05:00pm

후원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_갤러리175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율곡로 33(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그려진 문(門, 文, 問)거울 ● 앞에서 당신이 누군가를 마주할 때, 당신이 당신의 정면에서 어떠한 닮음을 발견할 때, 그렇게 기대했던 바를 눈앞에서 충족할 수 있을 때 이것은 비로소 빛난다. 액자 ● 속에서 허기를 충족할 만한 것을 찾는다. 이것 안에는 볼만한 것이 들어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벽면에 창을 내고 싶을 때 창 대신 달아 놓는 풍경. 인간의 팔은 수평을 가늠하여 못을 박는다. 손은 이것을 걸고 비뚤어진 모서리를 바로 잡는다. 벽을 마주한 얼굴 앞에서 풍경이 자세를 고친다. 내벽 ● 벽에서 미끄러지던 시선이 액자 속으로 걸려든다. 거울은 벽면에 깊이를 만든다. 우리의 몸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액자와 거울이라는 화면을 통하여 견고한 벽면이 잊히는 순간, 시선이 벽 속으로 뻗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마치 저 너머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창문 ● 너머에서 바람이 분다. 창밖의 포유류와 식물들은 저마다의 부피와 색을 변형하며 수만 수천 가지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외부의 생명력이 없다면 이것은 액자나 다름없다. 먼지와 바람만이 이곳을 통행한다. 방충망 한 겹이면 바깥에서 날아드는 날개들을 차단할 수 있다. 안팎을 구별함으로써 벽은 존재한다. 사람들은 벽을 세우면서도 내부에 들일 바깥을 원한다. 안락함 속에서 야생을 갈망한다.

구샛별_깨진 벽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8
구샛별_붉은 타일_캔버스에 유채_45×38cm_2018
구샛별_파란 타일_캔버스에 유채_53×45cm_2018

발코니 ● 빛과 그림자가 이곳을 데우고 식힌다. 계절이 창틀 사이로 새어든다. 뜨거운 여름의 햇볕이 가시면 겨울이 이곳으로 가장 먼저 온다. 타일은 떨어지는 물을 받아 배수구로 흘려보낸다. 방 안에서 밀려난 처지의 사물들이 그 위로 쌓인다. 태양의 기울기와 바람결에 따라 식물이 자란다. 옷이 마른다. 창틀 사이로 먼지가 낀다. 거미들이 줄을 치러 온다. 외벽 ● 쌓이고 무너지는 방식으로 벽의 공동체는 몸집을 키운다. 거주자들은 견고한 벽의 안쪽을 가꾼다. 단단히 축조된 벽의 한쪽에서 아늑함을 일군다. 벽이 또 다른 외벽의 단단한 표면을 치켜 보고 굽어본다. 땅에 쳐진 칸막이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바닥 ● 흐르는 시간은 바닥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땅에서 나부끼던 것들이 이것 위로 눕는다. 단단한 것일수록 무너진다. 으깨진다. 흩어진다. 삽차의 운동 때문이거나 굴착기의 힘 덕택으로. 내부를 관통한 힘에 의해 부수어지고 마모된 표면은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이 우리에게 새집을 원하게 한다. 헌 집 자체는 말이 없다. 다른 장소에 대한 희망은 그곳에 살던 이가 꾸는 것이다. 어질러진 자리는 누군가 있었던 자리다. 빈 바닥은 누군가 머물렀다 떠난 자리다.

구샛별_조각난 조각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18_부분
구샛별_조각난 조각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18_부분
구샛별_조각난 조각_캔버스에 유채_97×97cm_2018_부분

창밖 ● 서울은 구조 없이는 사람을 기르지 못하고,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사람을 실어 나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서에서 마포로 진입하며 양화대교로 이어지는 나들목에서 차체들이 작은 숲을 돌아 지나간다. 숲이 먼저였고 대로가 나중에 생긴 것이겠지만 나무들은 시속 육십여 킬로미터를 오가는 속도 사이에서 다소 위축되어 보인다. 그럼에도 자라는 것들은 푸르다. 그곳엔 지어진 것이 없으니 무너지고 으깨져 밟힐 것도 없다. 나는 이내 창밖을 놓친다. 캔버스 ● 시선에게 열려있으나 육체에게는 닫혀있는 평면에 관하여 캔버스는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는다. 화면에는 입이 없다. 붓과 육체의 신경이 만나 빚어내는 화면을 읽는 방법에 관해 알려진 바가 있는가? 이미지는 언어에서 시선을 떼고 눈으로 삶의 속도를 걸어갈 때 정신 안에서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화면들이 피고 졌을 화가의 몸 안에 그늘이 지고 조각들이 모여들 때에도 우리들은 어딘가를 걷거나 달리거나 실려 가고 있었다. ■ 유신오

Vol.20180929b | 구샛별展 / KOOSAETBYUL / 具샛별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