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928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권혜경_김무영_김우진_민혜기 서윤아_이주원_정덕현_조민아_허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2, 3층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매일 업데이트되는 피드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페이지 전환은 우리의 삶을 동기화 상태에 놓이게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연결하는 상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투명한 스크린에 전시된 타인만큼 자신 또한 보이길 바란다. 현대인에게 '고독'은 사전적 정의와 같이 부정적 상태의 '홀로 있음'이며,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실패한 모습이다.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현대인의 종국적 피난처는 함께 있지만 동시에 분리된 접속의 상태, 회색 지대이다. ●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놓여 있다고 묘사한다. 현대 사회에서 고독을 갖기란 무척 힘들며, 개인이 혼자 지낼 수 있는 기술을 연습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진단한다. 계속 '접속해'있는 상태에서 현대인은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며,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부재한 채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스스로 사색하는 힘을 상실한 우리는 외부의 지침에 따라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모두가 '좋은' 상태의 SNS와 미디어에 기댄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기를 또는 위로해주길 기다린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를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오히려 깨지기 쉬운 불안의 상태로 이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로 '고독을 가꾸는 능력'을 제시했다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고독에서 작품이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블랑쇼에 따르면 세계 안에는 예술 작품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오직 세계의 '바깥에' 작품이 존재한다. 작품을 하는 행위는 고독을 긍정하는 이 공간에 돌입하는 것이고, 모든 것이 결핍된 공간에서 존재의 본질을 마주한다. ● 이처럼 고독은 사유와 성찰의 행위이며,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고독의 과정을 통해 유동하는 현실 속에서 '진리의 낟알'을 가릴 수 있다고 보는 바우만의 통찰처럼, 세계 이면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창작의 행위를 이어가는 아홉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금호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지금까지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해온 제13기 입주작가, 권혜경, 김무영, 김우진, 민혜기, 서윤아, 이주원, 정덕현, 조민아, 허산 작가는 현재적 흐름에 포섭되지 않은 채 고독의 시간 속에서 시대에 대한 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모색해왔다. 허구와 실재, 기억과 현실의 모순, 사회와 개인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로 우리에게 생각의 지표를 제공하는 아홉 작가의 창작물들은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속에 꼭 필요한 '고독의 기술'이 아닐까. ● 고독은 고립이 아니다. 세계와 철저히 분리되어 비장함으로 맞이하는 고독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바우만과 블랑쇼가 주목한 고독은 현재의 급류 속에 침잠하지 않고 그곳으로부터 나와 거리를 두고 결여의 상태 속에서 본질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 작품은 작가가 마주했던 고독을 드러낸다. 블랑쇼의 언급처럼 "가능성의 불가능성을 인식하고 불가능의 가능성을 돌아보게" 하는 이 고독은 본질적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열려있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본 전시는 1년여의 입주 기간 동안 자신만의 창작 공간에서 온전한 시선으로 세계를 응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연계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비평워크숍은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 및 비평가를 초청하여 입주작가들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마련되었다. 프로그램은 전공자 및 관심 있는 모든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며, 작업에 대한 입주작가들의 고민과 생각들을 비평가의 논평과 함께 들을 수 있다. 이번 전시와 비평워크숍이 하나의 열린 문으로서 작가들뿐만 아니라 관람자들에게도 새로운 고독의 시간을 조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한누리
권혜경 작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발견한 장면들을 회화로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장면 Ⅲ Scene Ⅲ」와 「장면 Ⅳ Scene Ⅳ」는 작년 입주작가전에 선보인 「장면 Ⅱ Scene Ⅱ」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금호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지낸 지난 2년간 작가가 마주했던 풍경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 창고에 수북이 쌓인 수백 개의 중고 팔레트, 냄새마저 사라진 어느 텅 빈 축사의 거대한 사료통 등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서로 얽혀져 위태롭게 존재한다. 이렇게 본연의 기능이 상실되어 버려진 사물들을 작가는 다시 하나의 무대 위로 끌어와 새로운 장면을 구성한다. 작가는 사물과 함께 그것이 위치한 환경도 탐색한다. 어떤 용도와 목적을 위해 사물이 그 환경에 놓이게 되었는지, 어떻게 환경과 관계하며 존재해왔는지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삶에 대해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 고민의 흔적을 시각화한다.
김무영 작가는 특정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언어와 이미지로 재현하는 작업을 한다. 독일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던 피해자들, 멸공 사상을 전파하는 종교 단체, 반공 방송을 제작하는 중년의 남성 등 개인의 삶에 밀착하여 담아내는 그의 카메라는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전개 속에 더해지는 구체적인 은유와 수사는 이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완성한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리를 통해 작가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형식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나 설치 요소를 작업에 활용하기도 한다. 전시에 출품된 「하나의 우리 One Nation」와 「붕괴된 이미지 Distorted Memory」는 영상 설치 작품들이다.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의 인공적인 개입, 스크립트나 영상 편집 효과 등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좀 더 직접적인 그의 사유를 담아낸다.
김우진 작가는 삶 속에 편재해 있는 규정의 틀과 그것에 의해 형성되어가는 개인에 관심을 갖고 리서치 기반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상부터 드로잉, 그리고 설치까지 다양한 매체로 구현되는 작업은 리서치 과정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에 대한 작가의 다각도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작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겨지는 이야기들을 추적하며 그 이야기들이 내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틀을 가시화한다. 신작 「연결된 두 해의 연간 시_행간에서 사라진 이야기들 Two Connected Yearly Poems_Missing Stories between Lines」은 1988년과 2018년에 발생한 유사 사건들, 올림픽, 집회, 남북 관계 등을 모티프로 삼는다. 각 시기의 사건들은 30년의 시간적 차이를 갖고 있지만, 뉴스에서 드러난 이야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의 간극은 무색하게 닮아있다. 김우진은 해당 시점에 발간되었던 뉴스의 헤드라인과 이미지를 이용하여 시를 완성한다. 그리고 관람자의 어느 특정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설치를 통해, 작가는 함께 감각을 공유함으로써 틀에 갇혔던 우리의 인식을 깨운다.
민혜기 작가는 기계의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일상에서 쉽게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사물과 공간을 낯설게 혹은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치밀한 계산과 실험을 통해 작가가 구현한 물리적 형태의 움직임은 본래의 대상보다 함축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아내며 더 실질적으로 감각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비자발적 여행 Involuntary Travel」은 사람의 걸음을 재현한 작품이다. 하나의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작가의 언급처럼 마치 "박제해 놓은 정지된 순간"처럼 보인다. 계속 걸어가고 있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신발이 지닌 기묘한 움직임이 관람자의 개별적인 이야기와 맞물려 여러 갈래의 감상을 가져온다. 이처럼 민혜기 작가는 기계-전자적 장치로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를 덧붙여 우리의 삶이나 사회의 단면 등에 대한 본질적 차원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서윤아 작가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분위기, 뉘앙스, 느낌, 감정 등을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방식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회화의 언어로 풀어낸다. 작가가 이전에 주로 작업한 목탄화에는 부유하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실체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이는 유화 작품들은 이 실체화하는 과정마저 뭉개어 표현하였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대상의 형태나 특징에 천착하여 실재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감한 재료와 표현 방식의 수정은 작업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민과 탐구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함께 선보인 연필 드로잉 8점은 간단하고 명료한 선으로 서사에 대한 힌트를 더 제공하고 있지만, 이 또한 완결된 형태의 이야기가 아닌 보이지 않는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윤아 작가는 표피적 대상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돌려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실재에 안착하게 한다.
이주원 작가는 동시대 사회에서 소비되는 정보들의 유통과 수용 방식에 관심을 갖고 이를 이용하여 모큐멘터리 형식의 영상과 설치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각종 기록과 증거들을 통해 본래의 허구성을 감추고 '진실'의 형태로 관람자에게 제시된다.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진실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고 판단해야 하는 과정은 실제 우리가 접하는 대중매체 혹은 소셜 네트워크 속 정보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꼬집는다. 두 개의 채널로 구성된 작품 「재테크 Investment」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상 설치 작품이다. 부동산 매물의 광고 사진과 실제 모습이 갖는 간극을 작가만의 위트 있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매물에 대한 각기 다른 이미지/상, 공인중개사의 설명, 광고 사진, 실제 형태는 이주원 작가의 영상 속에서 서로 계속해서 미끄러지면서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결말로 나아간다.
정덕현 작가는 못과 바늘, 그리고 의자 등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물들을 가져와 사회이면 혹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정물화' 형식의 작품 속 사물들은 서로 연계성이 없는 듯 보이지만 각각의 상징들이 얽혀 견고한 이야기를 만든다. 이 사물들은 작가 자신이자 동료들의 초상이며 사회와 노동, 그리고 관계에 대한 그의 질문들을 대변한다. 이번 전시에는 스틸 라이프 시리즈 신작을 포함한 총 16점을 선보인다. 사물의 본질을 보기 위해 시작한 정덕현 작가만의 관찰은 사물이 가진 이미지를 넘어 현실 인식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제안한다. 그리는 과정 중에 수없이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하는 행위는 표면을 거칠게 만들며 보풀까지 일어나게 하는데, 이러한 그리기 방식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이지만 동시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모순적인 사회 속에서 방향을 설정하고자 하는 치열한 한 개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조민아 작가는 교과서와 동화책의 삽화를 연상케 하는 인물과 소재들을 화면에 배치해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각각의 순간을 포착한 행위들이지만 인물 주변에 놓인 컨베이어 벨트와 쌓여 있는 일거리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어 나가야 하는 행위임을 유추하게 한다. 그리고 콜라주 방식으로 편집된 화면은 서사의 처음과 끝을 알 수 없게 하며 이는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순환의 노동 속에 인물들을 가둔다. 이 상황 속에 인물의 표정은 박제된 듯 변화가 없으며 각각의 개별성마저 부재하다. 개별의 특징이 사라진 획일화된 군상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소외된 개인을 표상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 「한계를 위한 시도」와 「남겨진 것들」은 이전 작업과 달리 기승전결 구조의 서사를 가진다.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희망적인 시작과 달리 결국 실패로 끝나버리는 상황은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현실의 막막함 속에 갇히게 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자조적 태도이자, 오늘날 우리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여준다.
허산 작가는 평범하고 익숙한 공간에 예기치 못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요소를 설치하여 우리의 인식에 의문을 던진다. 천장을 지지해야 하는 기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깨져 있거나, 공간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오브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등 경험에 의해 혹은 사회로부터 체득된 인식의 균열은 단순 조형적 자극을 넘어 공간 이면에 감춰진 사회적, 문화적 함의를 드러낸다. 작품 「벽 위에 청테이프」는 실제 사물의 형태를 재현한 브론즈 조각이다. 마치 벽면에 청테이프가 붙어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이 작품은 미술관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기능을 흔들며, 공간과 대상 간의 관계 그리고 각각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이처럼 공간이 지닌 특징이나 맥락을 예민한 관찰로 포착한 후,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낯선 상황을 설정한다. 이러한 '언캐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관람자는 상황의 진위를 추론하게 된다. 이는 공간에 대한 관람자의 적극적 개입을 야기하고 감상에서 더 나아가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 금호미술관
Vol.20180928f | 고독의 기술 The Art of Solitude-2018 금호창작스튜디오 13기 입주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