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김덕희展 / Quantization 박자용展 / 이지적 파토스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킴스아트필드 미술관 KIMS ART FIELD MUSEUM 부산시 금정구 죽전1길 29(금성동 285번지) 제1전시관 Tel. +82.(0)51.517.6800
킴스아트필드 미술관은 9월11일부터 11월 4일까지 초대기획전 「오늘의 작가」전을 개최합니다. 매년 가을 개최되는 『오늘의 작가』전은 아티스트 2인의 개인전으로 구성되며, 올해는 김덕희 작가와 박자용 작가가 참여합니다.
□ 김덕희展『Quantization』 나와 너의 시간,그리고 공간 ● 김덕희 작가는 물질과 에너지의 상호작용에 대한 생각을 작업으로 나타내고 있다. 작가는 이전 전시인 『감여가』에서 빈 집에 대한 생각들을 열을 이용한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빈 집이라는 환경이 가진 에너지의 세계에 새로운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 그것은하나의 사건과도 같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들의 '만남'과도 같을 것이다. 인간이 주축이 아닌 환경과 에너지를 주축으로 당신을향해 뜨거운 마음을 전하듯 나는 빈 집에 열을 전하였다." (작가노트 중에서) ● 이번 전시의 주제인 Quantization은 양자화를 뜻한다. 이는 거시적 물리현상을 미시적 물리 현상에 대해 적용 가능한 양자론적 물리량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20세기 양자 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태동은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자 이론은 미시 세계의 사물들이 확률적이고 불연속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즉 우연이나 확률,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가 현재를 알고 있다 할지라도, 미래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양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 세계는 특정한 하나의 성질을 가진 존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다양한 성질들이 중첩되어 우리를 구성한다. ● 작품 「Quantum Dream」에서 전선은 물리적으로는 화면과 연결되어 있다. 이 전선은 마치 화면 속의 어떤 공간에서부터 넘쳐흐르는 듯하다. 모니터는 납작하고, 그 속에 어떤 공간이 있을 리 없지만, 전선들은 깨진 수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흘러내리며, 화면 속 혹은 화면 너머의 공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전선 끝에 달린 전구는 어둠 속에서 밝고 아름답게 빛난다. 이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니터에 꽂힌 전선이 흘려보내는 전기가 빛을 만들어 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화면에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영상의 내용은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이르는 삶의 중요한 순간들, 인간의 일생을 요약한 것이다. 영상은 무수히 많은 픽셀들로 구성된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은 픽셀의 형태로 기록된 우리의 삶이 다시 빛의 형태로 환원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탄생과 죽음의 장면을 '본다'고 말할 수 있는가? 표면적으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전선과 빛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작품을 통해 재현과 시각에 대한 이러한 질문들과 함께, 한편으로는 픽셀 하나 하나, LED 전구 하나 하나로 표현된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그들의 삶 하나 하나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여러 시간들'은 하나의 '시간'을 대치한다."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중에서) ● 작품「HereNow」에서 작가는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를 통해 우리의 시간을 표현한다.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고, 마치 이 순간 멈춰버린 것처럼 보이는 초침은 사실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상대적인 시간'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며, 우리 각자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의 '지금, 여기'와 당신의 '지금, 여기'는 동일하지도 않고, 영원히 함께 할 수도 없으며, 그것은 잠시 교차할 뿐이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다시 작품 「Quantum Dream」과도 연결된다.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만났다 헤어지며 시간을 나누지만 결코 동일한 존재가 될 수는 없으며,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각자 빛나는 존재들인 것이다. ■ 장지원
□ 박자용展 『이지적 파토스』 여행의 감각 ● "다른 시간, 다른공간에서 수집된 데이터로 공간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한다. 존재하지만 재구성된 공간, 존재하지만 경험한 것 같은 공간이 다시 만들어져 실재적이나 가상성을 갖고 있는 비현실적 가상공간이 된다." (작가노트중에서)
박자용 작가는 전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선의 문턱」, 「응시」, 「사색을 그리다」 등을 통해 꾸준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공간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액자와 거울은 현실과 가상을 드나드는 통로이자, 실재와 가상의 경계이다. 작가는 전작들에서 문과 창문, 액자를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금까지 작가가 구현한 공간은 작품 내부에 위치한 가상공간이었고, 관람객은 액자, 문, 창문을 통해 작품 속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즉 액자, 문, 창문, 거울 모두 다른 세계와 현실을 잇는 매개체이자, 다른 세계로 떠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작가는 신작 「60일의 일기-거울과 반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거울을 배치한다. 전작인 「혼용된 창」과 이번 작품 「창2-눈을 가리지 않은 창문」에서도 거울이 깨지는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특히 「60일의 일기-거울과 반영」에서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실제 거울이 작품에 활용되고 있다. 작가는 중앙의 가장 큰 거울을 '문'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벨라스케스의「시녀들」에서 작가는 거울을 통해 관찰자 즉 화가의 뒤쪽 공간까지 공간을 확장한다. 박자용 작가 역시 거울을 직접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관람자가 서 있는 현실공간으로 작품 내부의 공간을 확장하고, 거울 속에 현실 이미지를 반영한다. 거울은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뿐만 아니라, 맞은편에 설치된 하늘 이미지 역시 반영한다. 관람객은 만들어진 가상세계인 하늘 이미지 그리고 현존하며 현실을 반영하나 가상세계와 연결되는 거울 사이에 위치한다. 관람객을 사이에 두고 하늘 이미지와 거울, 가상과 현실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반영하다가 결국은 중첩되어 구분할 수 없게 된다. ●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은 즐거운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박자용 작가의 작품은 마치 여행과도 같다. 낯선 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다 불현듯 고향을 생각하는 것처럼, 캔버스와 액자 속에 만들어진 완벽한 공간 속으로 떠났다가 다시금 나 자신과 현실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 시선은, 공간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인 동시에 내부를 되돌아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작품 「창2-눈을 가리지 않은 창문」에서 우리는 영상 속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관조하며 사색의 시간에 빠지게 되지만, 화면이 깨지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60일의 일기-거울과 반영」에서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가 거울을 통해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작품 내부와 현실을 끊임없이 오가는 이러한 유목민적 방식은 어쩌면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해 온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체성 역시 타지와 고향을 오가며 혼란을 거듭하며 점점 선명해진다. ● 전작들 중 하늘이나 수도원 풍경 등은 작가의 작품이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적공간」 시리즈나 「잠재성의 경계에서」, 「조용한 대답」 등의 작품 속 공간은 작업실, 미술관 등 세속적인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자용 작가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종교적인 분위기는 작품 속의 공간이 어디인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그의 작품에 깃든 종교적인 느낌은 성당이나 사찰 등 종교 건축 내부에서 느껴지는, 속세와 유리된 감각과 유사하다. 종교 건축들은 방문자로 하여금 절대자의 권위를 실감하게 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며, 헌신하게끔 유도한다. 방문자들은 전지전능한 어떤 힘 앞에서 미물일 뿐인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결과적으로는 자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사유의 공간,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만들어내는, 현실과 유리되었지만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가상공간은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작품 속 공간을 바라보며 그 공간 속에서 스스로와 마주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자용 작가의공간은 종교적이기보다는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장지원
Vol.20180922a | 오늘의 작가-김덕희_박자용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