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928_금요일_04:00pm
참여작가 강홍구_김영양_김창세_김천일_김호원_박석규 박수경_박수만_박인선_서용선_이현열_전성규 전현숙_정일영_조순현_하루.K_허윤희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입장마감_05:0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1~3 museum.muan.go.kr
중앙이 아닌 주변의 어느 특정지역에 대한 인문 지리와 역사 그리고 문화에 대해 탐사하고 그 결과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일종의 인류학적 기록으로 남기는 전시는 점차 확장되어가는 추세이다. 그러한 작업들이 반드시 문화·인류학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어서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당대의 굳어진 사유의 세계에 다시 오래된 상상력을 불러들여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주는 일이며, 더 나아가 권력이 어떻게 주변부의 여러 요소들을 포섭하고 지배했는지의 과정과 그러한 식민화에 저항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것들을 지키고 그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싸워왔는지의 역사 그리고 그 행간에 존재하는 일상의 디테일과 생존의 방식들까지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건 노동력이건 영토이건 간에 식민화의 주체가 명확히 드러났던 서구 제국주의 시대와 다르게 요즘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자본의 모습이 추상적이고 유동적이어서 도저히 그 주체를 규정할 수 없는 시대일수록 주변부 지역의 생생한 기록들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 『붉은 땅, 푸른 강, 검은 갯벌- 무안 문화의 원류』라는 주제로 이 지역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무안그리기 프로젝트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획되었으며, 서울, 광주, 무안, 목포지역 작가 17명이 참여하여 세미나와 워크샵, 작품제작 등의 일정으로 석 달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워크샵 첫날에는 서남해안 도서문화연구원장인 강봉룡교수가 '무안의 역사와 문화'를 홍순일 연구교수가 '무안사람들의 삶과 구비전승'을 주제로 하는 강연과 세미나가 개최되었으며, 이틀간에 걸쳐 조금나루, 월두, 홀통, 봉대산, 법천사와 목우암, 파군교, 식영정, 느러지 전망대 순으로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 작가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혹은 그곳을 떠나서 특정한 지역의 자연과 더불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고 그림을 그리는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시간과 공간을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 맺기-과정'의 미학이 도출될 수 있었고, 작가의 작업 결과에 따라 전시는 1부: 역사, 상상으로부터, 2부: 인간, 이야기, 풍경의 두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 이번 무안그리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은 길지 않은 워크샵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대한 관조적인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았으며, 예술가의 상상력은 무안지역의 역사와 현실, 과거와 현재, 노동과 욕망, 풍경과 이야기 사이의 행간을 잇거나 다리를 놓아 시공간의 의미를 다양하게 풀어내었다. 니콜라 브리오가 '작가가 만든 예술품은 바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고 말했듯, 17명의 작가들이 길어 올려 재구성한 여러 맥락들을 통해 그동안 잃어버렸던 지역의 장소성과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회복하고 새로운 의미들로 채워지기를 바래본다. (「기획의 글」 중에서 발췌) ■ 박현화
강홍구는 영산강을 굽어보며 500년의 역사를 지키고 있는 식영정 앞의 고목에 주목하였다. 사진 위에 아크릴과 기타 재료로 채색을 더했으며, 사실이면서 동시에 환상인 무안에 대한 기억을 나타내고 있다. 굽이치는 나무 본체와 가지의 움직임은 사실과 환상이 엮어가는 이야기의 알레고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프레임을 넘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오히려 더욱 격동의 힘이 느껴진다.
김영양은 '물안골'을 바라보며 자연의 의미를 곱씹는다. 인간은 자연을 변화시키고, 과학과 기술은 그것의 변질을 담보하고 심지어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 순환의 다음 단계는 자연이 자신에게 향했던 공격을 문명을 향해 '미러링(mirroring)'하는 것이리라. 이 미러링은 점점 더 '복수'의 형태를 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아직은 자신의 인내를 견지하고 있는 자연의 위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시스템이 거대해짐과 동시에 폭주를 깨달은 인간들은 원시적인 자기애적인 본능의 소중함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떠나지 못한다. 이런 딜레마로부터 예술이 탄생했다." 그렇다! 예술은 딜레마로부터 출발한다. 이것이 김창세가 덴다미츠히로의 『제3의 뇌, 놀라운 피부』를 길게 인용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박인선의 회화는 갈등하는 자연과 도시에 대한, 잘 정제된 한편의 '회화-시'에 견줄 만하다. 이 갈등은 갯냄새와 검은 갯벌,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역시 부조화지만 어떻든 공존인 셈이다. 그 안에서 삶 역시 얼마간은 뒤틀리고 틈새가 벌어지더라도, 그것이 파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용선은 시간이 지나간 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를 어떻게 느낄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사람만 기억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땅도, 장소도 자신의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은 자신의 기억을 결코 잊는 법이 없다. 땅은 게다가 시간의 내부로 향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그는 늘어지의 강물을 역류하면서 땅의 역사와 그 투사로서의 현재를 함께 경험한다.
전성규는 무안의 검은 갯벌과 붉은 땅에서 하찮은 풀과 굴러다니는 돌멩이의 호흡을 감지하는데 빠져 있었던 듯하다. 이런 미학에선 역사적 상상력 보다는 현존에 대한 감각이 우선하는 가치로 간주된다. 추론하고 사유하기에 앞서 "손에 담아 쓰다듬어야 하는" 그런 미학이다. 여기서 빛을 조사하고 조명해야 할 것은 그토록 작은 것들, 조금도 귀중하게 간주된 적이 없던 것들, 하나 둘씩 주워 모은 것들 이상이 아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연 앞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자신과 제대로 더 깊게 대면할 수 있다. 정일영이 느러지와 홀통 앞에서 그렇게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시선을 유인하고 흡수하는 데 방점을 찍은 작금의 문명과는 달리 그것을 주체로 되돌려 보내는 힘이 자연에 있기 때문이다.
허윤희는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 송이들에서 허망함을 느낀다고 했다. 아름다운 동백꽃, 하지만, 이내 떨어져 붉은 피처럼 땅을 물들이는 동백꽃임을 그는 강조한다. 무안에서도 한 그루의 동백나무는 여전히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슬픔, 설렘과 허망함의 교차점을 각인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상반된 것들의 짧고 위태로운 조화에서 그는 여성성의 한 본연을 곱씹는다.
김천일은 땅의 이름인 '몽탄'의 형상을 세심히 살펴, 그 안에 잠복한 태극팔괘 같은 상징성을 이윽고 목격해낸다.
김호원은 회화에서 상징성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는데, 왜내하면 "그저 그런 일상, 제철에 밭을 갈고 잡초 뽑고, 일 끝나고 밥해 먹고 별 보고 술 한 잔 하고, 그림 하는" 일상을 더나야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박석규는 친숙해진 붓질로 마치 빗질하듯, 무안 갯벌의 결을 감각한다. 자연주의적인 재현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인식 태도다.
박수경은 '회산백련지'를 "삶의 용광로"요 "생명의 터전", 그리고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가슴으로 만나고, 누군가는 눈으로 마주한다. 누군가는 몽환에 젖는 것에서 누군가는 주어진 일상을 예찬하고, 누군가는 역사의 결을 목격한다. 사실과 비사실, 재현과 표현, 상상과 일상,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연의 모습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아 사진적 재현을 바탕으로 삼아야 했다.
갯벌이든, 논밭이든, 몸빼 바지를 입은 촌 아낙들이 있는데, 박수만은 그들의 노동과 풍경 사이의 자주 인지되지 못하는 부조화에 관심을 표한다. 그렇더라도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온화함과 정겨움, 그리고 삶의 순결함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물론 '회화적'으로 번역된 에세이다.
이현열의 밝고 화사한 풍경은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이 비현실성은 나무도, 대기도, 구름도 너무 안락하고, 평화로운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어떤 것이다. 사실성은 여기에 곁들여진 유머에 의해 한 겹 더 벗겨진다. 이 비현실적인 안락함과 과도한 조명, 유머는 그가 자연을 경험하는 기제들이다.
"시작할 때의 두려움과 설렘을 더 즐긴다"는 김천일이 사생의 즉흥성을 탐닉하는 반면, 전현숙은 상념을 위해 묘사를 버려야 했던 경우다. 아슬아슬하게 구릉과 온통 붉은, "너무 붉고 고와서 처연한" 황토밭만 남기는 방식으로. 하지만, 붉은 황토와 검은 비단 갯벌을 가르는 경계선만큼은 중요했는데, 특히나 그것들이 어머니나 여인을 닮았기 때문이라 했다.
모든 '좋은 것'들은 그저 그렇게 살도록 종용하는 규범들에 저항할 때 비로소 허락된다. 농사도 이에서 예외가 아니다. 잘된 농사의 이면에는 나이든 농부'의 땀이 배어 있다는 것이 조순현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하루.K에게도 자연은 숭고미의 출처가 아니다. 그는 그가 경험했던 자연을 디지털적으로 편집한다. 그가 '장소의 기억의 편집'으로 부르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는 자연을 도시락처럼 친숙한 사물로 만든 다음,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분해하고 선별하고 재조립한다. 이때 원칙이 되는 것은 감각적 유희, 곧 즐기는 것이다. (「붉은 땅, 푸른 강, 검은 갯벌, 무안이 곧 미학이다!」 중에서 발췌) ■ 심상용
Vol.20180920c | 붉은 땅, 푸른 강, 검은 갯벌-무안문화의 원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