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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91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9월 24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Whispering Mind: 풍경으로부터 ● 작은 소리를 내는 마음 얇고 고르게 입혀진 안료들이 빚어내는 투명함과 화사한 색채의 사용이 주는 경쾌함, 산과 바다의 형상이나 나무 밑동, 솜털, 계단이나 그물코와 같이 익숙한 형태들이 추상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정유미의 작품은 우리에게 색과 형태, 구도와 질감으로 감상할 수 있는 순수한 그림의 세계를 소개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어떤 사회적인 사건이나 메시지를 찾아 나서야 하거나 요동치는 감정이나 극단적인 언어를 해석할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지금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그림으로서의 풍경, 그 자체만을 바라보게 한다. 한편 정유미의 화면은 유난히 선명하면서도 부담 없이 담백한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작품 속 모든 요소들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며 캔버스의 모서리에서부터 중앙 면까지 전체적인 완성도를 고르게 유지하는 그의 화풍이 지닌 평화로운 방식 때문일 것이다. ● 최소 한 가지에서 많게는 서너 가지의 소재만으로 각각 빼곡하게 채워진 정유미의 이번 『Whispering Mind』 시리즈는 초반 스케치나 계획 없이, 자유로운 구성으로 그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체계를 지니고 있다. 그의 회화와 드로잉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춧돌, 계단, 펜스, 장작을 쌓아 올려둔 더미 등은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간이 만든 인공물인 동시에 갈등과 충돌, 대립보다 조화와 융화를 도모하려는 정유미의 눈에 들어온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처럼 자신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해석, 재조합 하여 당시 자신의 마음의 상태에 귀 기울여 선택한 색채와 질감, 미니멀한 형태를 선택함으로써 다양한 조형의 언어들을 캔버스 위에 착 달라붙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작품에서 일관적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 정유미의 그림이 우리에게 가만히 건네는 말은 무엇일까? 이번 개인전 『Whispering Mind』 시리즈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경이롭고 거대한 자연이다. 정유미는 한동안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에 머물며 그곳의 광활한 자연 풍경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에 매료되어 그때 눈에 담았던 새파란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고 있던 붉은색의 부표들(「Floating Wind」)이나 문득 멀리 내다본 언덕 너머로부터 물결치듯 촘촘한 깃털 같은 간지러운 질감을 선사했던 바람(「White Wind」), 가혹한 계절을 의젓하게 버티고 있던 나무의 밑동들(「Grass Land」), 험난한 산등성이를 휘감으며 빛나듯이 선명하게 굽이치는 길 등을 자신의 회화와 드로잉 안에 불러들였다. ● 특히 정유미의 그림에서는 솜털, 직물의 입자, 담쟁이덩굴처럼 보이는 반복되는 형태들이 얽히고 꼬여서 큰 형상을 이루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지점에서 그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대상을 표현하는 시작점에서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표현들, 즉 미세한 붓 터치나 작은 점과 같이 수없이 찍어낸 선들로 화면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추상적이지만 작고 여린 것들로부터 출발하려는 작가의 마음은 이번 전시 제목에서 사용한 속삭임(Whispering)이라는 단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각거리는 얽힘 들을 무수히 그려내며 그 닿는 면적을 묵묵히 넓혀나가는 그의 그림에서 붓이 표면에 닿는 소리처럼 작고 섬세한 진동에 대해 캔버스는 일종의 증폭기가 되어준다.
막의 너머로부터 바라본 것 ● 한편 이번 전시에서 정유미가 자연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선 다양한 측면에서 이번 『Whispering Mind』 시리즈에 나타난 동양화적인 특징과의 연결고리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작업 초기에 수묵을 적극적으로 작품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자연이라는 대주제뿐만 아니라 탁하지 않게 겹쳐진 투명한 화면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거나 묘사하지 않고 화가가 임의로 재구성한 풍경,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공간을 하나의 작품 속에 공존하게 하는 역원근법의 사용 등 정유미가 구사하는 형식은 '캔버스에 아크릴'이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동양화의 태도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에 주목해야 하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직전의 시리즈까지 정유미가 집중하고 있던 '막(screen)'이라는 개념이 작가가 직접 경험한 실존적인 자연 앞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듯 주제의 환기를 선사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하는 '막'이란 인간관계나 사회 속에서 개인이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인 장치로써 타인이나 타 그룹을 대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방어기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적 존재로써 불가피하게 겪었던 불편함, 경계심, 거리 두기와 같은 마음들이 탁 트인 자연을 통해 마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것이다. 작가는 그와 같은 자연을 화면에 옮기며 글자 그대로 자신에게 어떤 막이 되었던 것들을 걷어 올리는 시도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 이처럼 동세대의 작가들이 인터넷과 가상현실을 말할 때 정유미는 자신이 실제로 바라본 자연 풍경이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추상 회화로 구현하는 정반대의 전략을 펼친다. 그동안 동양화를 비롯하여 회화,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구사해온 그가 다시 캔버스로 돌아온 이유 또한 언제나 그림을 종착점으로 삼는 화가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섬유의 세밀한 매듭들이 거듭되고, 거듭되어 육중한 장막을 이뤄내듯이, 다양한 작품 속에서 가만히 자신의 제스처를 이어나가는 정유미의 작품을 통해 작은 파동이 모이고 쌓여지니게 될 진폭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최희승
Vol.20180919b | 정유미展 / CHUNGYUMI / 鄭唯美 / drawing.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