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901_토요일_02:00pm
참여작가 섹션 1. 우리들 한가운데의 암흑 강민기_김익현_노순천_서평주_송기철 양아치_엄정원_이해민선_주용성_최수환 섹션 2. 우리가 쌓아 올린 탑 강태훈_김세진_김정근_박경근_손혜경_양유연 양정욱_연기백_이윤엽_이혜진_전보경_홍진훤
주최 / 부산광역시_고려제강 주관 / 부산문화재단 협업큐레이터 / 김효영_신양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00pm / 월요일,9월 23~25일 휴관
F1963(고려제강 수영공장) 부산시 수영구 구락로123번길 20 석천홀 Tel. +82.(0)51.756.1963 www.f1963.org
지난 2017년 12월 30일에 개관한 F1963 석천홀은 철을 생산하던 공장에서 문화공장으로 변모하여 민·관 협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며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부산문화재단은 이곳 석천홀에서 하반기 기획프로그램으로 특별기획전시 『철-인』展을 개최하여, F1963이 갖는 시공간의 정체성과 '철과 사람'이라는 주제로 철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인간과 자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 두 가지 시선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섹션으로 김효영 큐레이터가 기획한 『섹션 1. 우리들 한가운데의 암흑』은 '철'로 상징되는 산업화에 대한 그늘을 조명한다. 전시를 통해 산업화, 문명화를 추동시킨 인류의 욕망, 환상의 본질을 살펴봄과 동시에 인류가 자연과 자원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회적 기반과 도구로 만들었는지, 그로 인해 어떤 파괴적이고 인공적인 풍경들을 생산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 두 번째로 신양희 큐레이터가 기획한 『섹션 2. 우리가 쌓아올린 탑』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사회적 노동에 관심을 둔 작업들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 노동과 자본, 그리고 그 사회적 관계들을 예술은 어떻게 포착하는가를 다룬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노동 그 자체', '노동력(가변자본)', '싸우는 사람들', 세 개의 카테고리로 엮여 있다. ● 『철-인』展에 참여하는 두 명의 기획자와 스물두명의 작가들은 이번 주제를 놓고 여러 해석을 더하여 설치, 영상, 조각, 회화, 사진,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전시를 통해 이제 막 문화공간으로 신호탄을 올린 F1963의 과거와 흔적을 새로운 방법으로 뒤돌아보고 재발견하는 흥미로운 경험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전달되길 기대한다. ■ 부산문화재단
섹션 1. 우리들 한가운데의 암흑 ● 인류는 철을 이용하여 도구를 발전시키면서 문명의 발전을 앞당겼다. 그만큼 철은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조건과 환경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철은 오늘날까지도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금속 도구와 기계들의 핵심 소재라 할 수 있다. 특히 철은 수도관, 송유관, 가스관 등 에너지 인프라를 위한 필수적인 소재로, 그리고 자본이 순환될 수 있는 조건인 운반수단(철도, 선박, 자동차)과 교통체계(도로, 교량)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근대화와 산업화에 기여를 하였다. 한편 철의 이러한 유용성은 전차, 대포, 군함 등 군사용 무기에도 사용되어 철의 생산량에 의해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결정되어지기도 한다. ● 그 때문에 '철'이 일상적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했던 사회·경제·정치적 조건과 변화들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철'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철이라는 생산품이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광물자원이라는 자연적 조건, 유한한 자원을 둘러싼 패권, 산업혁명으로 도입된 대량생산방식과 공장제도, 그것을 궁극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노동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철의 유용성과 함께 이러한 철의 생산을 둘러싼 사회·경제·정치적 문제들은 우리 삶의 조건들을 위기로 몰아넣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 전시의 섹션1인 『우리들 한가운데의 암흑』은 '철'로 상징되는 산업화의 그늘을 조명한다. 산업화는 우리 일상생활 핵심기반을 다지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산업문명이 가져다 준 물질적 풍요로움, 고도성장과 발전이라는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치는 현재 우리 삶의 기반을 흔들고 갉아먹으며 허구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최근 산업화의 주축으로서 쉬지 않고 가동되었던 공장은 용도가 폐기되어 예술문화 무대로 대체되었지만, 끊임없이 생산을 추동시켰던 근대의 열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은밀하게 작동될 뿐이다. 때문에 산업화와 문명화를 이끌었던 물리적 실체로서 '근대'는 폐기되지 않고 현존한다. 근대의 열정과 욕망은 한층 더 깊은 암흑 속에서 꿈틀대며 자신의 본 모습을 은폐한 채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 확장된다. ● 따라서 전시는 우리 삶에서 여전히 짙게 자리하고 있는 근대의 심연, 산업화의 음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전시는 이러한 시각으로 산업화, 문명화를 추동시킨 인류의 욕망, 환상의 본질을 살펴봄과 동시에 인류가 자연과 자원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회적 기반과 도구로 만들었는지, 그로 인해 어떤 파괴적이고 인공적인 풍경들을 생산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유한함을 다루는 인간의 무한한 집착, 욕망, 통제, 관리... 다양한 이름으로 붙일 수 있는 문명화의 근간을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 김효영
섹션 2. 우리가 쌓아 올린 탑 ● 섹션2 『우리가 쌓아 올린 탑』은 구 고려제강 수영공장이 과거 철을 생산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지만, 이 재료의 소재적인 중요함과 특별함에도 불구하고, 이 장소에서 우리 사회의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그것들의 생산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불러낸다. 그 생산의 주체는 노동계급일 것인데, 이 전시는 이들 계급에 초점을 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과 노동력의 의미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왜 노동과 노동력의 본질이 왜곡되고 억압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 한국의 근대화 혹은 산업화 과정 역시 자본주의의 원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장은 자본을 위해 노동을 억압함으로써만 가능했다는 것, 그리고 그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세상에서는 노동계급이라는 정당한 이름조차 은폐된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사회를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지금도 생산의 영역에서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만들고 있다는 것, 나아가 자본과 자본가계급을 우리 사회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여전히 자본가들과 부르주아 경제학자, 주류 언론, 주류 지식인이며, 무엇보다 현 정부도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이 정부는 한편에서 4차 산업을 운운하며 성장의 전망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 성장의 주인은 노동계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언제나 사회의 성장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는 노동계급이었지만, 그 열매를 온전히 뺏김으로써만 이 계급이 유지된다는 사실이 역사적 필연이라 여겨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 노동은 모든 시대 누구나 하는 행위이지만, 그 의미는 생산 양식에 따라 달라져 왔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노동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고, 자본가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부터 잉여가치를 추출한다. 노동계급이 합의한 적 없는 그 자유는 근대적 법 제도와 국가 등의 기구를 통해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생산력과 발전을 주도하는 노동력이 제공하는 이 잉여가치는 이윤이라는 자본가들의 용어 안에서 희석되어 버린다. 그런데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력은 자신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착취라는 말 속에 이미 이러한 진실이 내포되어 있지만, 이 지극히 당연한 진실은 사회적으로도 은폐된다.
이 전시 『우리가 쌓아 올린 탑』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사회적 노동들에 관심을 둔 작업들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 노동과 자본, 그리고 그 사회적 관계들을 예술은 어떻게 포착하는가를 다룬다. 노동은 언제나 사회적인 노동이었지만, 우리 삶의 양식은 그 사실을 자꾸 망각하도록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조건은 그것을 온전히 볼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세 개의 카테고리로 엮여 있는데, '노동 그 자체', '노동력(가변자본)', '싸우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첫째 '노동 그 자체'에서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한 노동하는 행위에 초점을 둔 작업들로 연기백, 양정욱, 전보경의 작품이 전시된다. 자본주의적인 의미에서 '노동 그 자체'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인간의 노동 행위는 다른 생산 양식이 도래하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노동이 주는 고단한, 보람, 리듬, 집중 등 다양한 의미 또한 공존할 것이다. ● 둘째 '노동력(가변자본)'에서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적대적인 상황에 대해 질문하며 김세진, 박경근, 이혜진, 손혜경, 강태훈의 작품으로 전개된다. 노동력은 자신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상품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진실은 외면되고, '노동력'은 자본가가 투하한 자본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제된다. 자본의 근거가 노동력이라는 이 은폐된 진실로 인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적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긴장, 대립, 모순이 유지 된다. '싸우는 사람들'은 현실적 노동 투쟁 현장에 대한 반응 혹은 그러한 대립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견지한 것으로, 양유연, 홍진훤, 김정근, 이윤엽의 작품으로 드러나며 죽음, 의지, 생, 간절함 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과 정서를 담고자 한다. ● 이 세 흐름은 우리 시대 사회적 노동의 관계를 포착한 예술가들의 관심을 반영하지만, 이 모습들이 분절된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이 주인이 되지 못한 전도된 세계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체제가 존속하는 한 노동은 자본과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야만 하는데, 그 또한 자본주의적 노동의 운명이다. 이 전시는 '노동'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세계를 소망하며, 우리 시대의 노동과 노동력, 나아가 노동계급의 의미를 비추어보고자 한다. ■ 신양희
Vol.20180902c | 철-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