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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신체가 표상하는 몰입과 몽상의 순간들 ● 화가 한지민은 이제 막 미술계에 데뷔한 신예 작가이다. 그는 20~30대 초에 그림과는 상관없는 학업과 직업을 경험했다. 그러다 2010년대 초중반,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은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삶의 체현 방식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행한 그와의 인터뷰에서 필자는 화가의 풋풋한 열정을 느끼며, 그의 어리숙한 그림그리기 즉 나이브한 제작 태도에 주목하게 됐다. 회화기법이나 제작술, 미술이론에 의한 통제는 별로 작용하지 않았고, 자신의 느낌과 직관에 충실한 그림들은 치밀하기보다 느슨함이란 매력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잔꾀를 부리지 않은 순진한 그림들 앞에서 그는 오로지 회화적 열정으로 중무장한 채, '나의 회화세계는 바로 이것'이라고 세상에 처음 외치고 있다. 그렇다. 이번 안국동 갤러리 담 전시가 그의 가슴 떨리는 최초의 개인전이다.
한지민은 '그림 그리는' 일을 위해 주변 현실에서 본 우리 몸이란 테마를 취한다. 신체의 일부로 여겨지는 터질 듯 커다란 복숭아, 묵묵히 바닥을 딛고 선 두 다리, 커피를 따르거나 책장을 넘기는 두 팔, 시선의 각도를 흥미롭게도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잡아 포착한 두 다리 -그림자 없이 허공에 무중력 상태로 그저 그렇게 사물화 된 다리들-, 눕거나 앉아 있는 두 남녀의 신체 일부, 먼 하늘을 응시하는 남성의 뒷모습, 소파에 드러누운 누군가의 무기력한 상체, 욕조 물에 담긴 자신의 다리, 등등. 심지어 필자가 본 「가리비」란 제목의 작품에서도 벌어진 조개껍질 속에 허옇게 드러난 살의 존재감이 뚜렷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정물을 주제로 한 초기 작업 이후 2016~7년부터는 인체를 위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인체는 고대 미술에서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시각예술가들의 가장 중요한 테마였다. 그런데 최근의 미술가들, 가령 독일 뉴라이프치히 스쿨의 화가인 팀 아이텔(Tim Eitel)의 경우처럼, 인체는 어떤 이념을 담아내는 기호가 아니라 보편화된 존재적 사건의 모티프로 출현한다. 현대적 공허의 삶이란 존재 환경 속에 담긴 인체, 하지만 담담하게 무위로운 상태로 바라보인 모티프, 스틸 라이프에서와 같이 사물화 된 상태로 보이는 '몸' 혹은 그 일부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인체가 단조로운 화면 배경을 뒤로 하고 고요하게 정지된 피사체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 더 강화된다. 내면에서 퍼 올릴 수 없는 자신만의 내밀한 말들을 침묵의 시각언어로 표현한다고나 할까. 여하튼 팀 아이텔이든 한지민이든, 그들은 잠재된 내면심리라는 모호한 정서적 두께를 사물화(réifié)된 인체 형상에 투영하여 현실태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사실 묘사라는 평이한 회화 기법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 두 작가 사이의 차이라면, 아이텔이 인체를 원근법의 공간 속에 다소 멀찍이 배치한 대신, 한지민의 인체는 우리 눈앞에 가까이 바짝 당겨져 있다. 너무 가깝게 놓여 있어서, 신체의 일부만이 확대된 채 화면에 드러나 있다. 특히 얼굴은 금기시된 부분이다. 직설적인 언술을 회피하려는 의도 내지는 관객의 작품 속 내러티비티 개입을 촉구하기 위함에서이다. 따라서 작품 속 인물이 '나' 또는 '누군가'의 존재적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을 야기한다.
낯설지 않은 일상 속 몸의 현실들은 다소 낮은 중간 채도의 색들로 표현되어 있다. 아마도 예민한 눈의 관객들은 이번 전시 작품들이 선명하다거나 시각적 충격을 주는 명채도의 그림들과는 완연히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치는 감각적 자극보다 고요하고 내밀한 감정이입을 원했던 작가의 의도대로, 단순한 배경 위에 연출된 신체 혹은 그 일부는 중간 채도나 무채색에 근접하는 색조 배열로 인해 느슨한 편안함의 심리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필자는 이러한 작가의 색채 선택에 대해 현대인의 우울함과 공허함의 감정을 빌어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작가가 추구한 것은 비계획적이고 우연한 몸의 언어들이 가 닿은 느리고 긴장감 없는 편안한 몽상을 표상하는 것이었으리라. 저자극의 중간 채도에서 이루어진 색채 배합은 한지민 회화의 특이한 부분이자 새삼 우리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화가로서의 경력을 이제 시작한 셈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번 첫 개인전에서 너무 복잡한 회화이론이나 설명을 다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칫 그의 '그림 그리는' 일에 부담되고 억지스러운 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면 위에 물감을 얇게 여러 번 입혀가며 조심스럽게 밀도를 높이는 과정에서나 물감을 붓으로 문지르며 생기는 효과를 관찰하고 기억해두었다가 재연해내는 과정에서, 신중한 신예작가로서의 진지함을 발견했던 까닭에, 그의 '그림 그리는' 일 그 순수한 열정의 작업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필자는 이 글에서 테크닉이나 이론의 깊이에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한지민 작가의 앞날을 기대하며, 그의 시선이 머무는 순간들이 어떻게 화면 위에서 형상화되는 지를 유심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가 그럴만한 가치와 역량이 있는 신진 작가라고 확신하며, 그의 회화가 매번 신선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본다. 그가 자신의 그림 속에 몰입하면 할수록, 우리가 그의 회화 안에서 얻는 시각적 euphorie(행복한 만족감, 느슨하고 편안한 호흡)도 더 한층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작업노트의 한 문장인 "새벽 한 시, 아무도 없는 동네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호흡할 때 느껴지는 기분을 그림에 담고 싶다"는 내용대로, 그 느슨하고 나이브하며 편안한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여지의 작품들, 즉 신체가 표상하는 몰입과 몽상의 순간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회화로 표현되어 나올 수 있길 바란다. ■ 서영희
Vol.20180902b | 한지민展 / HANJIMIN / 韓知旼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