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퀀스#2_퀀태를 잉태

이다흰展 / LEEDAHEEN / 李다흰 / drawing.painting   2018_0828 ▶ 2018_0930 / 월요일 휴관

이다흰_잉태의 바다_종이에 유채, 연필_25.5×38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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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흰 블로그_dahxxn.blogspot.com

초대일시 / 2018_0914_금요일_05:00pm

후원 / 인천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인천광역시

관람시간 / 01:00pm~08:00pm / 월요일 휴관

공간 듬 space DUM 인천시 미추홀구 주승로69번길 26 (주안7동 1342-36번지) Tel. +82.(0)32.259.1311 cafe.naver.com/daggdum

'『시퀀스#』프로젝트'는 '공간 듬'이 집이었던 순간, 삶의 다양한 정서들이 함축된 공간이었던 순간을 주제로 이묘, 이다흰, 김지희 3명의 작가가 릴레이 형식의 개인전을 진행합니다. 전시와 더불어 작가들의 시선을 공유하며 쓰여진 양말금 작가의 에필로그가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 『시퀀스#』프로젝트의 두번째 이다흰 작가의 '권태를 잉태'展은 2018년 8월 28일(화)부터 9월 30일(일)까지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속적으로 고민하던 어른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드로잉, 회화, 영상 작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 공간 듬

이다흰_건조한 들판, 하나의 얼굴과 공주개미의 가출_종이에 혼합재료_96×121cm_2018

시퀀스#2_권태를 잉태 - 1. 아버지와 / 2. 어머니와 / 3. 집과1. 꾸준히 어른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었고, 나는 그 속에서 방황하며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시간들을 보내야했다. 결국 아버지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에서도 너무나 미약하게 존재하는-하지만 가족들의 미화로 인해 만들어진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런 아버지가 나의 유일한 동경의 존재였다. 이상적 아버지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것이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졸업 후 완전한 백수가 되어 이상적으로 꿈꾸던 어른의 시간 앞에 머뭇거리고 있다.

이다흰_comeandgetout, comeandgetout_종이에 혼합재료_77×81cm_2018

2. 그리고 이제야 그림자가 있는 현실의 존재, '엄마'를 본다. 이제껏 부정해 온 내 현실의 초상. 새롭게 보이는 엄마의 얼굴 위로, 그림을 그리는 삶과 외면했던 현실의 삶이 겹쳐지면서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모든 불안과 집착은 엄마에게로 옮겨간다. 작업은 내 삶을 담고, 삶은 가족과 나를 떨어트릴 수 없었다. 내 삶의 모든 흔적은 가족이라는 몸통 밖을 벗어나질 않는다. 이 관계는 단순하고도 복잡한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머니의 어머니를 이해해야 하고, 어머니가 나를 위해 자신을 이해해야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불안한 어머니는 불안한 나를 낳았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엄마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야 엄마를 바라보는 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태어나는 우리의 관계를 짚어본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복잡한 사랑과 불안은, 무섭도록 커다란 권태의 덩어리가 된다. 과거이자 미래이며 현재인 엄마와 내가 벗어나지 못하는 이 집에서, 어린 나와 어른 사이의 공백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공백은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않았던)현실과 권태의 덩어리로 들어차기 시작한다.

이다흰_방_애니메이션_00:02:22_2017

3. 나는 온종일 집에 있다. 그러나 집을 좋아하진 않는다. 나는 침대에서 엄마를 보내고, 맞이한다. 그것의 무한 반복. 이 공간에서 우리의 대화는 점점 단순해지고 건조해지며 날카로워진다.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는 내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탈모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냥 비난과 짜증만이 담아있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애증의 공간. 그러나 사랑이 채워져 있는, 너무도 모순적이어서 나를 헷갈리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머무르고 싶게 하는 이 곳. 사랑하고도 석연치 않은 둘의 관계를 품는 이 곳. 둘 사이 불안의 반복 속에 태어난 권태. 이 감정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들려는 권태는 새로운 것을 낳을 것이다. 불안의 어머니가 불안의 자식을 낳은 것처럼. 거기서 끝나지는 않으리라고. ■ 이다흰

이다흰_애써서 지은 집_종이에 유채_91×112cm_2018

시퀀스#에필로그_struggle for better eating - 들어가며 ●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나의 유무(有無)를 확인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그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별다르게 바뀔 것은 없다. 늘 해왔던 대로 부지런히 살며 때때로 나른하고 절실하게 고민해 나갈 것이다. ● 어느 새벽, 전날 일이 있어 늦게 잠이 든 날 어쩐 일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방에는 작은 베란다가 있어 집에서 가장 어두운 방에 속했다. 커튼까지 쳐져 있어 더욱 짙었다. 어두운 푸르스름한 빛이 전등, 책상, 널브러진 책, 컴퓨터, 의자, 가방을 덮고 있다. 천천히 어둠에 눈이 적응하며 방 안 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편안한 공허함이 몰려왔다. 멍하니 있던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나른한 피곤함 사이로 여러 생각이 비집어 든다.

이다흰_어머니의어머니들_29×21cm_2018

#1. 오늘 오전 난 화풀이를 당한 것 같다. 얼마 전 인근에 큰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취업이 급하지만,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해 학원비가 필요했다. 괜찮은 컴퓨터 학원은 한 달에 7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치러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늘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임대료를 요구하는 건물주와 프랜차이즈 본사 횡포 사이에서 피해자는 가장 약자인 아르바이트생이다. 2018년 최저시급이 올라 좋았던 것도 잠시, 점주들은 인건비라도 줄이겠다며 한 명씩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했다. 남아있는 사람은 두 명의 몫을 혼자 해야 했다. 잘린 사람의 몫을 내가 감당한다고 해서 내 시급이 두 배가 되는 건 아니었다. ● 대다수의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환경부와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제한, 유리잔 우선 제공 협약을 맺었다. 매장 내에서는 머그잔이 우선이며 손님이 거부할 경우 종이컵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지침이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일일이 물어보며 일했다. 그러던 중 어느 손님이 '아이스' 음료를 시켰고 머그잔 권유를 했다. 머그잔을 거절하니 그럼 종이컵은 괜찮으시냐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다른 데 갈 거니까 카드 다시 내놓으라며 버럭 화를 냈다. 그깟 음료 안 팔면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친구에게도 부모에게도 사회에서도 인정받기 힘든 요즘, 자신의 권리를 취하고자 하는 그 욕망은 더욱 커진다. 어떤 값을 지불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취득할 때다. 서비스계층에 종사하는 사람은 쉽게 타깃이 된다.

이다흰_엄마아_종이에 연필_21×14.8cm_2017

#2. 애매한 재능이 싫증 난다. 처음에는 인정과 칭찬이 좋아서였다. 하다 보니 제법 잘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재능보다는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어른들은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의 실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굴 탓하기도 민망하다. ●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배짱이 있지는 않았다. 끝내 그것을 버리게 되었는데, 그것을 버리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관성처럼 그것을 다시 찾게 될까 봐 의식적으로 거부감을 곱씹는다. 어느 가능성이 엿보일 때마다 노력하지 않은 누구보다 노력했던 누군가가 될까봐 아직도 그것을 버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 두려워하고,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아직은 행복한 쪽에 속할 것이다.

이다흰_오셨어요_종이에 혼합재료_58×65cm_2018

#3. 습한 곳에는 곰팡이가 잘 낀다. 방구석, 책 틈, 가구 뒤 같은 곳. 특히 압도적인 곳은 화장실이다. 3년 전 나는 신축 빌라 첫 세대로 입주했다. 그동안 깨끗하게 쓸고 닦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장실 세면대 틈새 실리콘에 자꾸만 점박이 같은 것이 생기더라. 원래 화장실 청소는 락스를 뿌리고 솔로 몇 번 문지르면 해결됐는데 그 실리콘은 유난히 닦이질 않았다. 실리콘을 뜯고 새로 시공을 해야 하나, 왜 지워지지 않나 볼 때마다 한 번 씩 생각하고 지나갔다. 알고 보니 그건 곰팡이가 안으로 너무 깊게 침투해서 어지간해서는 안 지워지는 거였다. 그렇게 침투한 점박이는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그건 이미 실리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이다흰_퇴근길_종이에 혼합재료_69×94cm_2018_부분

나가며 ● 앎이 깊어질수록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이상과 일상에서의 괴리가 깊어진다.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일상의 원동력은 생활로부터 발현되어야 한다. ● 끝으로 나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침대 맡에서 하는 고민의 끝자락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금의 내가 잘 살아내기 위해 잠을 자야 한다는 것으로 갈무리된다. 더구나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면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는다. ■ 양말금

Vol.20180828e | 이다흰展 / LEEDAHEEN / 李다흰 / drawing.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