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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82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28 신관 2층 +82.(0)2.737.4679 www.gallerydos.com
그림자 극장의 안과 밖 ● 나는 안경진의 작업이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를 암시하는 우화(寓話)라고 생각한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몰상식과 상식, 불의와 정의, 불법과 합법이 기약 없이 뒤집혀버린 암울한 사회에서 살았다. 이 사회는 다시 극적으로 뒤집혀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뒤집힌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분열시켜야 했던 우리의 내면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상식의 가면을 썼던 몰상식, 정의 행세를 했던 불의, 합법적으로 강제되었던 불법이 선명히 구분되지만, 불과 2년만 해도 그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 혼란스럽게 중첩되어 있었다.
안경진이 '형상, 그림자, 여백'이라는 조형의 어휘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연루되어 있었던 (어쩌면 여전히 연루되어 있는)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중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두 겹의 세계에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에 골몰한 나머지 자신의 자아가 또 다른 자아로 분열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있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자아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다름'은 무서울 정도로 상반된 것이었다. ● 안경진은 이처럼 두 겹의 세계에 분열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자신의 분신과 교차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그들은 '그림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분신과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끝내 그것이 자신의 그림자이자 분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안경진은 그 인물들과 분신들의 관계를 종종 대립적으로 설정한다. 늑대에게 쫓기고 있는 한 소년, 야수에게 손을 내미는 아름다운 여인, 건장한 남성 앞에 위축된 왜소한 남성, 그러나 소년도 여인도 남성도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들이 자신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분신을 이질적인 세계에서 도래한 타자처럼 낯설어 한다. 이와 같은 착각 속에 그 인물들은 풀릴 수 없는 삶의 수수께끼 속에 빠져든다.
안경진의 작업은 마치 두꺼운 소설책에 첨부된 삽화처럼 기나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집약한다. (그의 작업에는 고야(Goya), 도미에(Daumier), 오윤, 박제동, 구본주 같은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캐리커처'적인 속성이 있다) 그의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최초엔 '형상, 그림자, 여백'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시각효과에 매혹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영화나 연극을 보듯이 그러한 조형요소들이 제시하는 스토리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관객은 입체 형상으로 구현된 등장인물에 이입하여 그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적 시점의 관찰자처럼 이야기 전체를 바깥에서 바라본다. 그리하여 등장인물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혼란한 세계의 수수깨끼가, 관객에게는 한낱 그림자놀이로 쉽게 파악된다.
환각에 빠진 한 인물이 자신의 분신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단일한 광원(光源)에 의지한다. 그 불빛도 관객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바깥에 있다. 분장을 한 배우들처럼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는 안경진의 인물들은 오로지 그 불빛에 의해 악몽과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들을 환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깥의 광원을 없애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 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깥'에 있는 관객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 당연히 관객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이야기 안팎의 모든 상황을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것뿐이다. 관객은 작가인 안경진이 기발하게 연출하는 그림자놀이를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처럼 자신 앞에 펼쳐진 환각의 파노라마를 무력하게 관조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모종의 리얼리티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했던 무력한 관조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전시장의 어두운 조명 속을 거닐던 관객은 안경진의 그림자 극장이 유도하는 알레고리 효과에 의해, 문득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분열된 세계의 내부에서만 살았던 것일까?' ● 이러한 물음에 우리는 얼마나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그러한 세계의 바깥에서도 살았다. 그 세계가 얼마만큼 단순한 욕망에 의해 도래했는지, 또 그 세계가 얼마만큼 단순한 실천에 의해 사라질 수 있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분열된 세계를 무력하게 관망하면서 환각의 삶 속에 몸을 맡겼을 뿐이다. 2016년 가을과 겨울의 극적인 사건들이 있기 전에는 말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러한 환각에서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는 없었을까? 혹시 우리가 그것을 은연중에 용인했던 것은 아닐까? 그림자 이야기를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시켰던 무력함이 '지금 여기'에 여전히 잠복해서 또 다른 환각이 확산되는 것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경진의 작업은 한국미술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비판적 알레고리의 어법으로 우리가 너무 홀가분하게 떠나보내고 있는 지난 10년의 환각을 예민하게 성찰할 수 있는 감각의 장(場)을 펼쳐 보이고 있다. ■ 강정호
Vol.20180825a | 안경진展 / ANGYEONGJIN / 安京眞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