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TUAL STANCE

이충현展 / LEECHOONGHYUN / 李忠顯 / sculpture   2018_0814 ▶ 2018_0826 / 8월20일, 월요일 휴관

이충현_Limp and Stiff_철, 에나멜 페인트, PVC 폼보드, 우레탄 페인트_100×110×50cm_2018

초대일시 / 2018_0814_화요일_06:00pm

후원 / 서울시_서울시립미술관 디자인 / 유명상 사진 / 이의록

관람시간 / 10:00am~07:00pm / 8월20일, 월요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녹번동 5-29번지) 서울혁신파크 5동 SeMA 창고 B Tel. +82.(0)2.2124.8818 sema.seoul.go.kr

완전한 평면으로서의 조각적 형태 ● 1. 조각에 있어서 대개 묵직한 재료와 견고한 형태를 다루기에 앞서 그 결과를 미리 가늠하며 상상할 수 있는 에스키스(esquisse)는 건축의 도면만큼이나 필수적이고 또한 매우 필연적이다. 훗날 위대한 조각가들이 남긴 스케치북을 펼쳐 볼 때, 익숙한 실제의 형태들이 종이 위에서 어떻게 상상되고 구축되었는가를 보는 것은 그 조각이 지니고 있는 원본성 만큼이나 형태의 실존을 증명할만한 숨은 지도를 발견한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함께 놓여야 더 좋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조각의 물질적인 형태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비실체로서의 형태에 대한 상상은 그 형태에 함의된 구축의 논리와 매체적 관습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 아주 오래 전, 레싱(Gotthold E. Lessing)이 『라오콘(Laocoön)』(1767)에서 조각에 대해 "실체들을 공간 속에 배열하는 예술"이라고 설명했던 바와 같이, 많은 조각가들은 일련의 질료들을 가지고 실제의 공간에 형태를 구축할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말하자면, 정지된 형태로서의 조각을 공간 속에 배열하기 위해 수많은 조각가들은 평평한 사각의 종이 위에서 형태의 사방을 충실히 살폈을 테고 혹은 종이면을 들여다보듯 어떤 명확한 하나의 시점에서 형태를 꿰뚫고 인식할 수 있게 하는 평행의 좌표들을 선점하여 공유하고 싶었던 거다. 조각은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좌대 위에서 시간을 잊은 채 형태의 공간 구축 논리를 투명하게 보장받을 수 있었던 거고. 물론, 알다시피 20세기의 현대조각은 그러한 고전적 규범들을 표면적으로 의심하면서 조각의 본성을 완벽하게 전복하려는 아방가르드적 "태도"를 중요한 덕목처럼 지켜냈다. 그리고 21세기, 오늘의 조각은 조각의 견고한 윤곽과 형태 보다 더 흐릿해진 매체적 관습과 조각적 태도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2. 이충현은 개인전을 준비하며 내게 전시와 관련해 글을 요청하면서 먼저 세 페이지 정도의 글을 써서 보냈다. 간단한 이미지도 제목도 붙여 넣지 않은 그 글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조각의 형태와 그 형태가 구축되는 조건에 관한 주관적인 진술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조각의 범주 안에 넣어 두고 그것의 "조각적" 맥락을 찾으려는 듯했다. 나는 그 글에 짧은 메모를 덧붙여 가면서 몇 번 읽었는데, 그의 작업실을 직접 가보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서 어떠한 (조각적) 형태도 상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컴퓨터로 파일을 열어 가상의 전시 전경을 펼쳐 보이면서 공간을 사방에서 자유자재로 투명하게 간섭해 들어갔다. 거기서 이미 미래의 공간을 차지하며 완벽하게 구축된 조각의 형태들은, 사실 형태에 대한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긴밀하게 주고받을 에스키스로서의 위상을 넘어서서 그 자체로 이미 조각적인 함의를 성취한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그 가상의 공간에 데이터로 구축된 형태들이 다시 삼차원의 물리적인 형태로 실재하는 공간에 똑같이 재현될 이유를 나는 금방 찾지 못했다. 오히려 그 두 가지 버전의 형태 사이에 놓이게 될 구조적인 관계와 경험의 간극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까를 의심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 나중에 이 전시의 제목을 "Virtual Stance"로 정했다는 말을 듣고, 그 생각은 조금 더 확실해졌다. 이충현은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삼차원의 조각적 형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각하는 평면적 태도에 한껏 빠져들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건 그가 참여했던 『조각스카웃』(2017) 전시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던 걸로 안다. 이를테면, 그는 이전까지 그의 표현대로 조각의 "껍데기"인 형태의 외피에 관심을 갖고 그것의 디지털 변형과 조작을 통한 정면성을 띤 조각적 재현에 열중해 왔다면, 이제는 형태의 윤곽을 이루는 내부 "구조"에 집중해서 보이지 않는 형태 내부의 덩어리가 공간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조건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충현_Bootstrap_철_180×30×30cm_2018

3. 이충현의 『Virtual Stance』에서는, 모두 열세 점의 "조각적 형태들"이 열린 통로로 구획된 세 개의 실제 공간들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는 굳이 그걸 조각이라고 단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오래전부터 이미 매체적 관습에 충실하게 전시장에 서 있는 조각 작품을 상상하면서 자신이 구축한 가상의 형태들이 현실의 물리적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보일까하는 시각적 경험의 차원을 크게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작업의 과정을 한번 살펴보면, 그는 3D 모델링 프로그램인 스케치업(SketchUp)을 이용해 형태를 제작한다. 어쩌면 이 단계는 조각가가 실제 조각의 재료로 형태를 만들기 전에 최종 형태를 미리 예상하며 가늠해보는 에스키스에 견주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각에서 말하는 "모델링(modeling)" 즉 흙이나 무른 재료를 이용해 손으로 형태를 빚는 과정을 함축하기도 한다. 다만, 가상의 3D 공간에서의 모델링은 물질을 직접 다루지 않고 모든 것을 데이터로 전환시켜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단위들의 구축을 통해 실현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과정과 결과를 갖는다. 예컨대, 실재하는 질료를 손으로 떼어 붙여 형태의 윤곽을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만들어 내는 대신,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의 도구를 활용해 임의의 형태를 가상의 공간에 수직적 혹은 수평적 반복을 통해 삼차원적인 배열과 구축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평면의 종이 위에서 형태를 상상하던 것과 그것의 삼차원적 실현이 공존하는 가상의 추상적인 조건을 암시한다. ● 여기서, 이충현은 무엇보다 "조각의 조건"에 더욱 집중해 들어간다. 앞에서 언급했던 레싱을 비롯해 이미 많은 이들의 논의에서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명확한 답을 얻고자 했는데, 이충현은 이 오래된 화두를 조각적 관습 안으로 끌고 들어가 다시 조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자체를 확장시켜 놓는다. 예컨대, 그는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조각의 삼차원적 특성을 재탐색하는데, 이때 그가 60년대 미니멀리스트들의 조각적 관심과 형태에 대한 논의를 참조해야 하는 필연성을 얻게 된다. "실체들을 공간 속에 배열하는 예술"로서의 고전적 조각은 정지된 형태 안에 이상적인 총체성을 구현했다면, 실제의 시간 속에 놓이게 된 조각은 주체의 시각에 대한 불확실함을 지속해서 폭로하면서 삼차원 형태에 대한 파편적인 지각 경험을 의심 없이 수용하게 했다. 이러한 조각사적 변화의 흐름을 크게 짚어 가다 보면, 이충현은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삼차원의 질서 속에 실재한다는 것을 이미 초월해 버린 가상의 조건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정황과 마주하게 된다.

이충현_Diagonal Plain_PVC 폼보드, 우레탄 페인트_30×120×120cm_2018

그는 『Virtual Stance』에서 삼차원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추상적 시공과 그 무중력과 같은 시공에서 형태에 대한 (현상학적) 경험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풍긴다. 아무것도 구성하지 않고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기본 단위들의 반복과 배열로 삼차원의 추상적인 오브제를 구축하려했던 미니멀리스트들을 참조해, 이충현은 일련의 내부 용적을 지닌 입방체가 시각적 평면으로 경험되는 다시점에 접근하면서 형태의 삼차원적 현전에 대한 경험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특히 시공간에 대한 가시적인 경계가 붕괴된 오늘의 시각적 폐허 속에서.

이충현_Matt Standee_알루미늄_180×80×20cm_2018

4. 이충현은 작업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조건을 설정하여 그 범위 안에서 형태를 구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가 내게 써서 보내준 글에 따르면, 그는 "덩어리의 기본 단위 및 입자의 형태를 '큐브'라고 설정"했고 이러한 "기본 단위들을 기하학적으로 나누고 붙여 구조물을 만든다"는 형태의 논리를 마련했다. 그는 삼차원 오브제를 구축하여 실재하는 시간 속에 현전하는 물리적 실체를 경험하려 했던 미니멀리즘의 조건들을 의식한 듯, 스케치업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3D 모델링 구축물에 대한 최소한의 기술적인 매뉴얼을 전제했다. 여기서, 기본 단위로 설정된 큐브는 미니멀리즘에서 삼차원의 물질적 단위로 표방된 것과 달리 수치와 기하학적 원리에 의해 작도된 평면의 추상적 단위임이 강조된다. 때문에 미니멀리즘에서 주목해야 할 "실제 공간에서의 실제 효과"는 이충현의 작업에 옮겨와서는 "가상의 실체"에 대한 개념적인 이해와 추상적인 경험으로 변경된다. 이렇게 "삼차원"(의 조각적 경험)을 참조한 가상의 오브제들은 치수만 소유하고 있을 뿐 "완전한 형태"를 스스로 경험할 수 없는 태생적인 조건을 갖게 된다.

이충현_Blades_철_231×99×99cm_2018

때문에 가상의 시공간에서 평면적으로 구축된 조각적 형태들은 스스로 삼차원의 질량과 부피를 수월하게 획득할 수 있었지만 경험할 수는 없는/경험할 필요 없는 비/효율적인 존재에 가깝다. 이러한 형태에 대한 관심 속에서, 이충현은 그 가상의 존재를 다시 삼차원의 오브제로 전환시킬 효율적인 명분과 방안을 찾아야 했다. 특히 이충현은 큐브에 "사선"을 적용한 다양한 형태들을 만들어 놓고 평행하는 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비스듬한 면을 통해 형태의 합리적 정면성에 대한 자기만의 방식을 실험했다.

이충현_VIRTUAL STANCE展_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_2018
이충현_VIRTUAL STANCE展_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_2018

결과적으로 되짚어 보면, 그는 역설적이게도 삼차원의 조각적 형태가 지닌 정면성을 가상에서의 평면성과 일치시켜 그 경험을 실체화 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말하자면, 이충현은 조각의 사방을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고전적 정면성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가상의 존재들이 불투명하게 구축해내 있는 이차원의 평면성을 재현해내려 하는 것 같다. 그는 언뜻 조각적 형태의 외피를 걷어내고 그 내부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시각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조각의 정면성을 추구한 듯 하지만, 또한 그 총체적인 정면성을 방해하는 가상의 "완전한 평면들"에 대한 경험적 한계 또한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안소연

Vol.20180814c | 이충현展 / LEECHOONGHYUN / 李忠顯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