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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오 홈페이지_http://www.hongjangoh.inf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퀀텀점프 2018 릴레이 4인展 Quantum Jump 2018 4 Artists Relay Show
주최 / 경기문화재단 주관 / 경기도미술관_경기창작센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경기도미술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 (초지동 667-1번지) 1층 프로젝트 갤러리 Tel. +82.(0)31.481.7000 gmoma.ggcf.kr www.facebook.com/ggmoma
파타피직Pataphysic과 비인간전회non-human turn ● …파타피직은 이처럼 놀이의 완전함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파타피직은 모든 것으로부터 결국 아주 적은 것을 갖는 작은 의미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모든 격식을 차린 무가치들과 모든 무가치의 조형은 파타피직 안에서 좌초되고 그리고 우부(Ubu)의 고르곤의 눈앞에서 돌이 되어 버린다. 파타피직 안에서 모든 사물은 인공적이며 유독하며 그리고 장미빛의 장식용 천사. 그것의 극단들이 볼록한 거울에 하나가 되는 것을 통하여 정신분열의 상태로 이끈다....로욜라(Loyola)-세상은 몰락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파타피직스Pataphysics)
파타피직을 파타피직의 언어로 기술한 장 보드리야르의 「파타피직스 Pataphysics」에 나오듯 "...우리는 가상의 방귀 상태와 다르지 않다...방귀는 세상의 끝이며 그리고 모든 가능함의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홍장오 작가는 매우 겸손하게 그의 이전 작업들에서 다루어져왔던 우주와 외계인의 알레고리들이 자신의 부족한 어떤 완성도로 인해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작업 세계는 현실과 가상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중첩되어 있거나 어지럽게 섞여있는 일종의 파타피지컬한 세계(pataphysical world)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주의적이고 메타피직스Mataphysics의 엄숙한 해석기계들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며 홍장오 작가의 UFO를 허황된 망상, 동화적 환상으로 치부했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현실의 인물과 가상의 존재들이 동일한 존재론적 층위에서 존재하는 파타피지컬한 상황에서 "...세상은 하나의 우쭐한 페스트 종양, 의미없는 수음, 가짜 금으로부터의 망상 그리고 종이 찰흙이다. 그러나 아르또(Artaud)는 이렇게 여전히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아무것도 없음에서 그리고 또 없음에서 흔들려진 자지가 어느날 진짜의 정자를 사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를, 어떤 과잉된 존재로부터 잔혹극이 소생하지 않을까를, 즉 하나의 실제의 독성을, 이에 반해 파타피직은 어느 한 번도 섹스와 연극을 믿지 않았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파타피직스Pataphysics)
「Cosmic Life」(2014), 「Welcome Space Brothers!」(2014), 「Lucy In Black」(2013), 「nowhere」(2012), 「Blackout」(2010)등 홍장오 작가의 최근 십여년 동안의 개인전 타이틀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 백과사전Encyclopaedia이나 외계의 목록을 만들고 진짜라고 짐짓 진지한 태도를 취하면서 은유와 현실이 동일한 층위의 시간과 장소에서 뒤섞이는데 나는 처음부터 그의 작업들이 파타포(Pataphor), 파타피직스(Pataphysics)일 것이라는 걸 간파했다. 하지만 파타포의 비애란 "...이러한 모든 잔혹의 무대, 실제(Reality)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파타피직스Pataphysics) ● 전시를 앞두고 가진 작가와의 전시 기획단계에서 나는 '미확인비행존재'는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가 아닌OOO(Object Oriented Ontology)로 전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가의 설명은 미확인비행물체에 대한 재현과 상징으로의 메타포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이번 전시를 통해 '은유(metaphor)' 대신에 '파타포(pataphor)'를, 인간중심주의적 (Anthropocene) 관념에 끊임없이 포획당하는 대상으로서의 UFO (Unidentified Flying Object)를 비인간-전회(non-human turn)로 제안했다. 홍장오 작가는 다른 인터뷰에서 "저는 UFO나 외계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때문에 이 전시는 다가올 미래나 외계인에 대한 전시가 아니라 정확히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다루고 있습니다."라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처음에 그의 작업에 매료되었던 것은 UFO나 외계인이 바로 지금 여기를 가리키면서도 의도에 의한 미적인 구성이 아닌 동시에 예술 제도에서의 전시라는 짓거리에 대한 파타포적 오해로의 유발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는 지나치게 진지했거나(메타피지컬한 ‚이해'로의 욕망?), 조금은 무거운 블랙코메디("쉬십시오, 쉬십시오, 부디정신이여"_에른스트 카씨러 Ernst Cassirer)로부터 결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파타피직을 위하여 모든 현상은 절대적으로 기체형태이다. 이러한 인지조차도 방귀와 가려움의 의식조차도 의미없는 성교도 어떤 경우에도 진지하지 않으며...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인식, 등등, 목적 없이, 영혼 없이, 말없이 그리고 스스로의 상상으로 그럼에도 불가피한 이것이 파타피직적인 파라독스의 꾸밈없는 작렬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파타피직스Pataphysics)
'은유(metaphor)' 대신에 '파타포(pataphor)'라는 것은 가상과 현실의 중첩인데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는 "가상성으로 기술되는 대상의 속성들을 그것들의 용모(lineament)와 상징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으로 파타피직스 Pataphysics를 '상상적 해결의 과학(the science of imaginary solution)'으로 보았다. 이는 전시 큐레이팅 실천과 직접적인 부분이었다. 화이트큐브는, 창문이 없는 벽으로 시간, 계절, 주변상황을 차단한다. 관객들은 훨씬 쉽고 빠르게 공간이 가지고 있는 목적과 기능에 적응된다. 이렇게 창문 밖의 세상을 인식할 수 없을 때, 화이트 큐브는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공간이 되버리며 지금 이 작품과 행위가 유일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는데 작가는 화이트큐브라는 관념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에 있어 건축공간 조성은 건축과 사물이 평평한 지형학으로 만나 출렁일 수 있도록 구성되는 것이어야 함을 의식하고자 했다. 전시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조성되었기는 하지만 그것들의 용모와 상징적으로 조화하고 출렁이는 세계로의 구성은 미흡했다. 작가는 파타피직을 예감했지만 그것을 전시의 포지셔닝으로 취했는지는 모호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작가의 발화가, 그의 예감과 물질들로 일으켜지는 전시건축 안에서의 사물들과 물질의 정동들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벗어나야 할 것은 작업의 물질계 자체가 아니라 그의 언어론적 전회linguistic turn였다.
인간중심주의적(Anthropocene)관념에 끊임없이 포획당하는 대상으로서의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를 비인간-전회(non-human turn)로 제안한다는 것은 화이트 큐브에 오브제나 설치 작품이 가진 배경을 결여하는 '대상화'로부터 얽히고 짜여지는 사물성으로 –거기에는 인간에 의한 감상을 위해 친절하게 놓여지는–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건 작가가 인간의 의도라는 인과적 사슬로 만드는 것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x,y축의 기계적 전회를 통해 산출되는 입체 도형 그래픽 이미지 작업에서 예감하는 즉 "예상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닌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설은 형태들이 주는 이 정서"에서 예감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는 그것을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일수도 있고 새로운 정서를 갖고 있는 공간일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 브루노 라투르 Bruno Latour는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서구인은 비인간/인간, 객체/주체, 자연/문화의 이원론을 신봉해왔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비인간이 결합된 수많은 하이브리드 또는 이질적 연결망을 아무 성찰이나 규제 없이 양산하는 모순을 저질렀다고 하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지구적 생태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생태위기의 해결을 위해서는 비인간=객체 vs. 인간=주체로 보지 않고 모든 존재들의 행위성( agency)을 인정하는 비근대적 차원의 존재론을 통해 하이브리드들에게 적절한 존재론적 위치를 부여해주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홍장오 작가에게 비인간 전회와 비인간 행위성 (non-human agency)을 말하는 것은 곧 '행위성'의 능력(즉 전시라는 사회세계를 생산하는 행위들)은 인간 행위자를 넘어서 비인간과 무생물에게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작가라는 인간들만의 역량을 의미했던 '행위성'대신에, 한 어셈블리지 안의 모든 상이한 물질성들이 다른 어셈블리지들에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받는 역량을 지닌다고 간주하는 것이다.(Deleuze, 1988) 한 어셈블리지 안의 정동들이 나타내는 집합적 '경제'(Clough, 2004)는 그 어셈블리지(및 그것을 구성하는 인간 및 비인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이렇게 행위하고 상호작용하거나 느끼는 역량들은 관계의 내재적이거나 본질적인 속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관계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창발된다(Barad, 2001 ; DeLanda, 2006). 어떤 관계(그것이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생물이든 비생물이든)가 지닌 역량의 폭은 그것이 행하는 정동적 상호작용들의 풍부함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홍장오 작가는 『우주 정경 Cosmic Scenery』전시를 계기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 "저에게 있어서는 우주는 무지의 공간이고 여전히 저한테는 관념적인 대상이거든요 실질적인 대상이라기 보다는 무지의 대상으로서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물리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시각화했을 때 반응은 어떨 수 있을까."고 말했다. 그의 작업들은 인식론(그러한 사물들을 어떻게 관찰자가 알 수 있는가)과 관념론(세계는 인간 구성의 산물이라고 간주하는)과 구별되는 존재론(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종류에 대한 관심)과 물질이 무엇이냐 그리고 물질이 무얼 행하느냐에 대한 사회학적 가정들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 최재원
Vol.20180805d | 홍장오展 / HONGJANGOH / 洪暲旿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