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712_목요일_06:00pm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展
작가와의 만남 / 2018_0721_토요일_03:00pm
미술관 프라이빗 살롱 콘서트 / 2018_0720_금요일_08:00pm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대구문화예술회관 DAEGU ARTS CENTER 대구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201 Tel. +82.(0)53.606.6114 artcenter.daegu.go.kr
대구문화예술회관(관장 최현묵)은 김결수, 김동광, 박철호, 방준호, 이지현 작가를 초대해 올해의 중견작가전을 개최한다. 『올해의 중견작가전』은 지역미술계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40~60대 중견작가들을 초대해 전시를 열어주어 그간의 작품 활동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전환점과 동력을 마련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근작 공간을 활용한 설치작품으로 7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6-10실에서 열린다. ● 이번 전시에서 김결수는 '노동-효과'를 주제로 우리 시대의 노동과 삶을 담은 오브제를 제의적 형식으로 고단한 삶의 내러티브를 제시한다. 또 올해 병환으로 작고한 김동광의 경우 한지 부조작업인 '삶' 시리즈를 전시하고. 못다 이룬 작가의 꿈을 추모하는 의미로 작가의 미완성작을 전시한 코너를 만들었다. 박철호는 '순환' 시리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조형언어를 추상적인 기호로 판화기법과 공간설치로 보여준다. 방준호는 이번 전시에서 오래된 향나무를 제기하고,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는 작업 '묵시'를 보여준다. 이지현은 가상의 인물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화한 설치작업 'J에게'에서 애틋한 감정과 그리움을 두드리고 해체한 옷의 물성과 대상화된 오브제로 제시한다. ■ 대구문화예술회관
Labor & Effectiveness(노동&효과) ● 작가 김결수의 오브제들은 '세상으로부터 세상에 버려지고 던져진 것들'이다. 즉 그것은 발견된 오브제라고 하는 '피투(被投)의 존재들'로 그에 의해서 마치 신으로부터 피조(被造)된 존재들처럼 존재의 주체로 간주된다. 김결수의 오브제란 대상(object)이 아닌 또 다른 주체(subject)처럼 간주되는 셈이다. ● 작가 김결수는 이와 같은 '발견된 오브제'로부터 세월의 흔적과 어떠한 사건의 내러티브를 읽어낸다. 칼집이 무수하게 각인되어 있는, 한 포장마차로부터 발견된, '나무 도마'로부터 그는 그것의 원소유주가 일상처럼 벌였던 반복된 칼질의 흔적을 대면하면서 그 소유주의 삶을 읽고 그 오브제를 둘러싼 소유주의 처연한 삶의 내러티브를 전해 듣는다. '나무 도마'의 피부 위에 새겨진 흔적들이 전하는 무언의 발화 행위와 그것의 내러티브! 김결수는 발견된 오브제를 '만들어진 오브제(objets créés)'로 변형, 변주하는 자신의 조형 언어 안에 그것을 한데 껴안는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할 것은 이러한 작업 과정 속에서 작가 김결수만의 해체와 재전유의 방식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 오브제의 원소유자의 이야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지만 그것의 본래적 의미를 은폐하거나 소멸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브제의 원래적 의미를 가져오는 전유로부터 자신의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것을 다시(re)라는 접두어로 접속시켜 원전의 의미를 재고(再考)하는 재전유를 귀결점으로 삼는다. (중략) ● 방사형 가지들을 펼친 서낭나무 혹은 서낭당처럼 설치된 구조물, 버닝 프로젝트에 출품한 커다란 새둥지를 품은 제단과 같은 설치, 격자형 가설 철봉에 매달린 투과형 철제 육면체들이 그것들이다. 이와 같은 재전유의 조형 언어와 형식도 그러하지만, 붉거나 푸른 조명 역시 그의 작품에서 제의성을 강화한다. ● 이러한 조형적 결과물은 그가 자신의 미학의 본질을 이미지 표층의 껍데기가 아닌 오브제의 심층 혹은 질료적 내면으로부터 발견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동양적 선문답(禪問答)에 가까운 조형적 태도로부터 기인한다. 달리 말해 그의 작품은 '오브제의 내면을 재전유하는 지난한 육체적/정신적 노동'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하겠다. ●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작가 김결수를 가히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잇는 샤먼(shaman) 혹은 발견된 오브제로부터 만물 속에 잠자던 정령을 깨우는 '예술적 영매(靈媒)'라 부를 만하다. 아울러 그가 창출하는 작품들은 발견된 오브제를 만들어진 오브제로 변환하는 영매의 기술을 통해서 지금과 과거를 매개하고 '사물로서가 아닌 또 다른 주체'로서의 오브제와 그것의 '옛 존재'로서의 삶을 위무하는 현대의 제의적 진혼곡이라 할 만하다. ■ 김성호
삶-오래도록 기억될 이야기 ● 김동광의 예술적 반영은 줄곧 '삶과 이야기', '삶과 세상보기' 등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 작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현상과 삶 속에 내재하는 행복한 감정들을 자아내는 인식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에 전념하였고, 이들 논제를 전제로 한 작가적인 예술적 반영이자 표현에 매진하였다. 이들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 스스로는 작가 자신이 표출해내고자 하는 내면의 삶에 대한 작가적 심성과 인위적이면서도 작가적인 조형적 언어들을 통한 예술적 장치들을 구축해 나갔다. (중략) ● 김동광은 이미 주어진 정형화된 조건하의 한지라는 틀을 뛰어 넘어 질료적으로 한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십분 이용한 '한지 죽'을 이용한 조형성 구축을 시도할 수 있었고, 이들 질료적 특성을 작품제작에 이용함으로써 작품제작 과정이나 그 결과에서 모나거나 격하지 않은 부드러움과 유연함 그리고 다정다감한 감성을 자극하는 특성을 지닌 작품, 즉 독특한 조형적 특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양산할 수 있었다. (중략) ● 이렇게 탄생한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의 표현적 대상들이 지니는 미적이자 예술적 소재들은 너무도 일상적이며 민예적 속성을 제공한다. 그런 만큼이나 작가가 바라는 작가적이자 예술적 욕망과 함께 하는 행복이란 소박함을 낳았다. 아름다운 감정, 다시 말해 삶에 대한 과하지 않은 정겨운 감정을 자아내는 행복한 삶의 영위들로 꽉 채워진 형상을 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드레 핀 꽃과 그 꽃 주변을 찾아든 벌과 나비, 그 한 곁 오두막에서 한가로이 자연을 공유하면서 자연과 담소하고, 또한 자신과 더불어 하는 각종의 동물인 생명체들, 그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곁에 두고 차 한 잔으로 여유로운 작가적 삶을 영위해 가는 자신과 또한 그 이웃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도 아름다운 목가적 구성체로 엮어나갈 수 있었다. 작가의 최근의 작품은 작가의 미적이자 예술적 관심과 작품제작에 따른 작품의 제작방법이자 수단 및 재료의 접목과 집적을 통한 결과물이다. 전제한 작품들은 작가의 미적이자 예술적인 인식과 표현적이자 제작적인 경험의 작가적 발현을 통해 얻어낸 통시적이자 통합적 결과물인 것이다. ● 애석하게도 이제 작가의 예술적 기원은 '바람'만을 남겨 놓았다. 더 이상의 작가적 바람은 예술적 욕망으로 잔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작가의 작가적인 예술적인 정신이자 예술적인 제작적 태도는 사적으로 끊임없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으로 가치를 부여받게 되었다. ■ 홍준화
순환 (Circulation) ● 단색조의 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점을 조금 끌어당기면 선이 된다. 물감의 정도와 물의 양이 점과 선을 중심으로 번져나가면서 처음 시도했던 점, 선을 벗어난다. 벗어나서 생기는 경계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재료, 물성의 특성에 따른다. 병치하듯 여기저기 찍고 그었던 선들은 물과 염료와 바탕의 성질이 서로 호응하면서 연결되고, 떨어지고 번지면서 진행된다. 더 이상의 가필도 없이 그것으로 완료된다. 작가의 의지를 넘어서는 이미지들이 화폭에 드러난다. 점, 선, 운동이 이어지면서 번짐이 생기고, 행위가 담아내는 얼룩이, 얼룩이 만드는 면이 서로 밀고 당긴다. 얼룩에는 번진 자국과 함께 의도된 선 긋기가 중첩되어 있다. 자료 자체의 자율성이 생성하는 임의적인 형상과 색채 효과는 계획된 공정에서 드러나는 예견된 효과와는 다른 감수성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는, 자신의 손아귀 안에 놓였던 의식이나 매체가 이탈하면서 조우하게 되는 세계다. 그것은 자신의 규제가 아니라 물질과 공간이 만나서 드러내는 생성이다. '그대로 두기' 혹은 '의미의 배제'로서 번짐을 방법과 내용으로 전환하는 작가의 민감함이자 순발력이다. ● 우리에게 드러난 형상은 작가의 의지로서 점과 선, 색상이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면서 생기는 형태와 색상이다. 자신의 행위에 염료와 물, 바탕의 천이라는 타자(매체)의 의지가 개입되고 그 타자가 작품을 마무리한다. 그 마무리된 형상은 본래의 형태와 색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주위를 싸고도는 또 다른 형태와 색상으로 이중화된다. 일종의 내재화된 순환적 논리다. 잠재된 것들의 드러남이자 잠재된 것들 안에서 작가의 의지를 담아내는 틀이기도 하다. 사방이 개방된 공간에 작품이 걸리면서 벽면에 부착된 수동적인 공간이나 일정 방향의 시선은 산개된다. 대신 공간 자체가 작품 일부분으로 수용된다. (중략) ● 벽면부착 방법에서, 천정에서 아래로 내리는 방법에로의 변화는 흔들림을 주된 속성으로 한다. 흔들림은 삭제와 생성을 반복한다. 관객의 움직임에 화폭은 미미하게 흔들리며 호응하고, 그 흔들림은 원래의 크기와 형상에서 비정형의 가변적 성격을 드러내게 한다. 이 가변성은 선과 점 주위에 번지는 효과의 흔적처럼 자신을 이탈하는 변주이며,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드러남이다. 매체의 물성 자체가 관객의 흐름에 호응하면서 시간과 운동, 시선이 일체화되는 순간이다. 그 드러남은 언제나 순간적이고 임의적이며 가변적이다. ● 박철호의 작업은 잠재의 가변성과 자기규제의 양면성을 방법론적으로 확장한다. 관객과 작품이 만드는 공간의 연출이 드러내는 세계의 잠재성은 그의 작업 정향을 전환시킨 지점이다. 우연과 필연, 행위의 행간을 흩어진 점과 선, 병치된 임의의 선들에서 면으로 번지는 효과는 새로운 전체를 생성하는, 평면을 흔들어 잠재된 3차원의 공간과 시간, 배타적 전체가 아니라 서로 「순환」하는 가역과 비가역의 일렁임을 느닷없이 만나게 한다. ■ 강선학
묵시 (Inner View) ● 이번 전시는 방준호에게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 기회다. 전환점이란, 그 자신의 삶과 예술의 간극을 녹여내는 방법적 변화 혹은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노정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청년시절 노끈으로 공간의 경계를 제시하거나 옷에 물성을 첨가해 인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던 시도에서도 그렇지만 목재나 석재에 미풍이나 강풍을 나무형상에 불어 넣고 시각적 의미를 구체화한 「Wind」 역시 그 간극의 한 부분이다. ●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가야하는 예술, 창작활동 중에 그 순간을 인식하게 되는 시간은 짧다. 찰나생멸사이에서 번득임으로 왔다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작가는 향나무를 사서 작업장 한쪽에 놓아두고 있었다. (중략) 이번 전시는 작가 스스로에게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향나무를 설치하는 방식은 시각뿐 아니라 후각을 통해서도 향나무만의 존재감을 살려내겠다고 한다. 크고 작은 열여덟 개의 향나무 그리고 긴 시간 무심히 바라보던 순간들 속에서 가장 그 나무다운 모습을 찾아내겠다는 생각으로 향나무를 불사르고 있다. 나무와 불이 만나는 순간 변하는 것과 그 변신 속에서 찾아내는 깊은 숨결은 은은한 향으로 엄숙한 정화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계획이다. ●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주제에 담긴 '묵시'의 의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적 감성이 투영된 작가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현대인은 자연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온 도시환경 속에서도 크고 작은 재난에 대한 공포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청년시절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을 투영했던 '묵시'가 중년인 현재의 삶에서는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일까. 이번 전시를 통한 그의 작업적 의미는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시각에서 재생산될 것이다. 동일한 주제로 20대에 가졌던 작업적 의미가 50대인 지금의 삶 속에서는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 주목하게 된다. ● 세계가 초연결망으로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는 시대에 작가가 감각하는 시대적 의미가 어떻게 향나무를 통해 투영되고 있는지, 「묵시」라는 전시 주제가 주는 무게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다.(중략) ● 현재의 삶은 온라인 접속으로 지구반대편까지 실시간 접속 가능한 초연결의 시대다. 초고속 네트워크는 감각보다 더 빠르고 넓은 연결망으로 전(前)감각적인 시스템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감각유령'을 만들어 간다. 긴 기다림 속에서 찾아낸 이번 방준호의 「묵시」는 몸이 전제된 감각의 현전으로 삶의 고유한 존재를 감각하게 하는 공감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될 것이다. ■ 김옥렬
J에게 (Dear J) ● 옷은 옷 이전에 천이다. 물성이다. 전작에서의 책 작업이 책 이전에 종이의 물성을 드러냈듯이 옷 이전에 천의 물성을 강조한다. 책이라는 기호를 해체해 종이라는 물성을 드러내고, 옷이라는 기호(사회적 기호 그리고 문화사적 기호 그리고 어쩌면 계급적인 기호)를 해체해 천이라는 물성을 강조한다. 그렇게 어쩜 기호화된 사물대상, 기호에 가려진 사물대상의 본성(그리고 본질)을 복원하는 과정이며 행위일 수 있겠다. 그리고 옷은 인격의 일부이며 감정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바로 너덜너덜해진 옷이 상처를 암시하고 삶을 상기시키는 것이 그렇다. 어떤 서정적인 느낌(이를테면 분노와 증오 그리고 그리움과 같은)을 환기시키는 것이 그렇다. 너덜너덜해진 옷은 말하자면 존재론적 상처의 표상이며 물화된 형식일 수 있다. (중략) ● 그리고 대구작업에선 의상 디자이너의 컬렉션 드레스를 협찬 받아 작업한다. 한 사람은 옷을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은 옷을 해체한다. 한 사람은 옷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혹 옷이 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를 상처를 부각한다. 한 사람에게 옷은 우아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다른 한 사람에게 옷은 상처 때문에 아름답다. 얼핏 아름답고 우아한 드레스가 상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아름다움은 상처와 관련이 깊다. 서양으로 치자면 바니타스 전언이 그렇고, 동양의 경우에는 화무십일홍의 전언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나같이 덧없는 아름다움을 겨냥하고 있고, 아름다움은 어김없이 상처를 내재화한다. 하나의 꽃이 아름다운 것은 속절없이 지는 것 때문이고, 하나의 옷이 아름답다면 그건 옷에 내재화된 상처 때문이다. 내면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작가는 옷을 해체시키는 과정을 통해 내면을 외화 하는, 내면에 형상을 찾아주는 고유의 방법론을 발명했다. ● 그렇게 작가에게 옷은 애틋하고, 옷을 해체시키고 복원하는 과정은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옷을 매개로 익명적인 누군가와 맞닥트리는 경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대구작업에 해당할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 애틋하고 설레는 마음을 또 다른 형태와 경우로서 풀어낸다. 직접 여자 옷을 사러 다니고, 그렇게 사 모은 옷들을 일일이 해체하고 복원한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이며 작업을 J에게, 라고 부른다. 작가에게 J는 그리운 장소와 대상을 의미한다. 대구에 대한 연고와 그리움의 대상을 의미한다. 작가의 사적인 속사정과 허구적인 서사를 반영한 것이지만(혹 대구시절 작가에게 애틋하고 설레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여자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J는 익명적인 누군가에 해당하고, 그런 만큼 작가의 작업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나름으로 감정이입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다. 인격을 대신하는 사물대상(오브제)을 페티시라고 한다. 작가가 보기에 옷은 상처를 내재화한 인격이다. 애틋한 것도 상처고, 설레는 것도 상처고, 그리운 것도 상처다. 그렇게 작가는 하나의 옷에 내재화된 애틋한, 설레는, 그리운 상처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렇게 페티시를 사용하는 다른 방법을 예시해준다. ■ 고충환
Vol.20180715b | 2018 올해의 중견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