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디아트플랜트 요 갤러리 THE ART PLANT Jo Gallery 서울 중구 명동길 74 (명동2가 1-1번지 명동성당) 명동 1898광장 B117호 Tel. +82.(0)2.318.0131
다양한 페르소나를 지닌 고양이 ● 곡식이나 과일, 누에 등을 지키거나 쥐를 잡기 위해 옛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다고 한다. 더구나 밤에 활동하는 동물이라 영물이라는 주술적 의미가 합쳐서 벽사의 기능도 갖고 있었다. 악물과 영물의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춘 것이 바로 고양이다. 고양이는 민첩한 동작과 매서운 눈매, 우아한 몸체와 털, 그리고 사람의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로 기억된다. 인간과 적당한 거리 속에서 기품을 유지하는 동물이다. ● 김은아는 그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일련의 고양이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고양이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의 형상을 빌어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그림이다. 특히 자아가 강하고 타자와 동등한 관계를 원하는 고양이의 속성을 작가 자신의 자아와 동일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고양이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매개가 된다. ● 김은아의 그림 속에는 인간은 부재하고 그 자리를 대신해 고양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고양이기도 하지만 실은 인간이란 존재를 은유 하기도 한다. 고양이가 짓고 있는 다양한 행동, 습성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 기반 한 그림이다. 단독으로 혹은 여러 마리가 어우러져 있는데 대개 소파와 의자 주변에 놓여 있거나 건물과 현실풍경을 배경으로 부유하면서 그려져 있다. 화면 속 고양이는 실루엣으로, 납작하고 평면적인 영역으로 채워져 있다. 색 면으로 칠해진 배경과 줄무늬, 점 등은 패턴화 된 공간을 암시한다. 구체적인 묘사가 지워지고 평면적인 표면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붓질이나 일련의 회화적 제스처로 마감되어 있지 않고 플라스틱 재질로 이루어진, 작은 구슬을 연상시키는 돌올한 부조의 구조물로 성형되어 있다. 특이한 물질로 만들어진, '랩핑'된 그림이다. 화면을 투명하고 두툼한 물질, 무광 우레탄 도료로 덮어나가면서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보여주는 표면처리는 기존 화면과는 상당히 다른 감각을 안겨준다. 그것은 매끄럽고 고급스러우며 한없이 반짝인다. 소비사회의 매력적인 관능과도 같은 인공의 미감으로 코팅되어 있다. 그리고 다분히 입체적인 회화이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실내가구나 풍경 역시 그러한 물질과 점들로 마감되어 있어서 매우 촉각성이 강한 표면을 만들어 보인다. 점(dots)으로 촘촘히 뒤덮인 표면은 손으로 쓰다듬고 매만지고 싶은 유혹을 자아낸다.
화사한 색상들로 채워진 화면위에 올라와 고착된 투명한 물질이 고양이의 형태감을 연상시켜주는 그림이다. 그것은 고양이란 존재의 유연한 형태, 날렵하면서도 조심스럽고 신중한 몸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연출이자 동시에 평면의 색으로 칠해진 배경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순간 배경 속에 묻혔거나 얼핏 둘의 경계가 지워지는 착각을 접한다. 따라서 조심스레 화면을 응시하면서 배경 속에 파묻힌 고양이의 몸을 빼내야 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르면 그 고양이는 작가 자신의 분신에 해당한다. 주어진 배경화면은 현실세계이고 고양이는 그 현실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인 셈이다. 고양이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수시로 보호색, 이른바 캐모플라주camouflage로 위장되어 있다. 보호색이란 환경에 따라 생물의 색깔뿐 아니라 행동도 맞추는 숨기기를 말하며 이는 시각적으로 교란을 일으켜서 자신의 정체와 위치를 은폐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고양이의 형상을 빌려와 사회라는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나름 보호색을 발동시켜야 하는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다. 사실 이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생존술이다. 생명체의 절대명제는 살아남아서 목숨을 유지하는 일이고 이를 유전하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의 목숨을 위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공포를 근간으로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면서 생을 보존하는 일이 삶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러한 생명체의 자기보존능력이나 보호색을 통한 생존에 대한 단상을 고양이와 캐모플라주 장치를 이용해 선보이고 있다. ● 또한 그 고양이들은 다양한 공간에 구체적인 물질, 조각으로 위치해있기도 하다. 부양하는 고양이는 흡사 현실계를 떠도는 존재에 대한 은유, 다양한 삶을 모색하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설치된 고양이들, 그러니까 여러 색상으로 칠해진 고양이는 무수한 페르소나(가면)를 지닌 체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은유한다. 바라보는 이의 시선의 방향, 관점에 따라 고양이들은 다르게 다가온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보이는 고양이들은 실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다. 이는 여러 삶의 상황에 놓인 인간 존재를 은유하기도 하고 매 순간 특정한 관계의 망 속에서 저마다 페르소나(자아, 정체성)를 달리 해야 하는 삶의 은유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는 특정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따른 다양한 가면, 자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내 얼굴은 수많은 역할에 따라 다르게 표상된다. 따라서 나/자아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내 안에는 무수한 내가 있어서 여러 종류의 다채로운 얼굴/가면을 쓰고 있다. 자아가 단일하다고 혹은 불변하다고 믿는 것, 나아가 자아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나란 과연 실재하는가?
그림은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위장하고 보호하는 일이다. 작가의 이념, 감각과 세계관, 욕망 등이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는 작업은 일정정도 타인의 눈을 의식하면서 이루어진다. 미술계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미술행위는 그 영역 안에서의 다양한 활동과 그 활동에 대한 인정과 투쟁, 승인과 거부 등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작가란 존재는 자신의 미술계 공간 안에서 어떻게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해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모색과 방안, 광의의 보호색을 마련해야 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른바 생태계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작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구체적인 삶에서도 동일하다. 삶 또한 다양한 페르소나를 지니고 살아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여러 관계 속에서 그에 맞는 자아, 페르소나를 만들어야 삶은 가능하다. 그러니 고양이의 형상을 빌은 김은아의 작업은 몇 겹의 의미를 두르고 있는 그림이자 일종의 자화상에 해당한다. ■ 박영택
단색으로 균질하게 칠해진 평면의 캔버스위에 아크릴로 이루어진 반원형의 작은 오브제를 빼곡히 부착했다. 물감과 붓질을 대신해 요철의 물질이 입체적으로 융기해 올라와 있는 화면은 부조/조각적 화면이 되었고 이내 촉각적인 감각을 발생한다. 동시에 그 원형의 아크릴 물질은 물방울을 연상시키고 볼록거울이 되는가 하면 투명한 화면이 되어 그 앞에 자리한 관자의 신체를 역상으로 비춘다. 이미지의 표면에 부착된 작은 원형의 공간/화면이 스스로 찾아온 불특정한 관자, 투명한 원형 공간/ 화면을 찾아와 그 앞에 직립한 이의 얼굴, 몸을 비춰준다. 결국 이 회화는 관자의 개입으로 인해 완성되는가 하면 복수화된 무수한 신체를 보여주면서 분열된 자아상을, 단일한 하나로 귀결될 수 없는 인간의 존재를 은유하기도 한다. 자아가 단일하다고 혹은 불변하다고 믿는 것, 나아가 자아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나란 과연 실재하는가의 질문을 던진다. 고정되지 않고 미리 선험적이지도 않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화면은 우연적이고 우발성의 회화를, 근접해서 유심히 들여다보아야만 판독 가능한 미시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이한 시각체험 또한 안겨준다. 본인의 회화 작업은 이러한 여러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 나의 작업은 고양이를 매개로 한 위장과 사회적 관계형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어쩌면 이중적이고 양가적인 존재며 경계위의 존재일 수 있다. 페르소나가 사회에 내어준 제도적 주체라고 한다면, 아이덴티티는 그 제도적 주체 뒤에 숨는 진정한 자기를 의미한다. 자기분열, 막막함, 불안함 등의 불확실성은 사회적 제도와 주체성의 관계에서 괴리감을 만들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어져 끝없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개인이 사회와의 융화와 일체감을 보여주는 자기 방어 적 표시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이 시대의 청춘들의 모습은 사회적 제도와 문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가치, 태도, 판단, 행동 등의 많은 부분은 타인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어 개인의 자아를 인지하기도 이전에 주체성은 상실되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고 있는 타인과의 사회적 물리작용은 ,개인의 자아 주체성의 확보는 도태되고 상실된 자아는 끝없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간다. 인간은 어쩌면 이중적이고 양가적인 존재며 경계 위의 존재일 수 있다. ■ 김은아
Vol.20180708c | 김은아展 / KIMEUNA / 金恩兒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