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525_금요일_05:00pm
후원 / 한국예탁결제원 KSD갤러리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주말 및 공휴일 사전 예약시 관람 가능
KSD갤러리 KSD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4길 23 한국예탁결제원 1층 Tel. +82.(0)2.3774.3314 www.ksdgallery.kr
한국 금융의 중심지인 여의도에 위치한 KSD갤러리는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시 공간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가 속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눈과 마음에 휴식을 취하게 하고 예술을 통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장소로 2009년부터 자리해왔습니다. ● 또한, KSD갤러리는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며 한국 미술계의 발전에도 미약하게나마 일조해온 곳입니다.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색과 형을 찾아가고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하여 선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와 함께 깊은 사유를 통해 작품의 깊이와 두께를 더해가고 있는 중견작가를 초대하여 작가와 작품 세계를 소개해왔습니다. ● KSD갤러리에서 열리는 김인하 작가님의 『間隙』展은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하여 끊이지 않는 열정과 집념을 가지고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펼쳐온 작가님과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김인하 작가님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인 '간극'에 대해 한 번 더 살피고 헤아려 볼 수 있는 기회로, 관람객들로 하여금 모든 관계들과 상호 간의 소통의 문제까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작업을 위한 작가로서의 태도, 진정한 노력 과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KSD갤러리
斷想 ● '織造機위의 비단과 같다.' 시인 '워즈워드'는 "시인이란 죽음의 잠으로부터 감각을 일깨우고, 헛되고 텅빈 것을 고상한 황홀로 채우는 능력으로 바깥 세계를 可視的 實在로 만든다." 라고 했다. 實在라는 것은 織造人이 한 올 한 올 색실을 짜 엮어 이미지를 조금 씩 조금 씩 드러나게 하는 것이며, 시인의 언어이다. 물론 언어나 이미지의 소통에는 지성이 담보 되어야 할 일이다.
間隙 ● 근년에 '間隙'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이어 왔다. 나의 오랜 친구 漢學者 허권수 교수는 나의 작업 '間隙'을, ● 간극(間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틈'이라 할 수도 있고, 구별을 지어주는 막(膜)이라 할 수도 있다. 틈에는 구체적인 것도 있고, 추상적인 것도 있다. 공간적인 것도 있고, 시간적인 것도 있다.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형상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우리의 정신세계에도 간극이 있다. 간극은 어디에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드시 적절(適切)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간극은 너무 좁아도 제 기능을 못 하고, 너무 넓어도 제 기능을 못 한다. 적절하게 맞추는 데는 깊은 생각과 오랜 경륜이 필요하다. ● 모든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모든 일과 일, 모든 사물과 사물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상호간에 간극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소통도 이루어진다. 간극의 역할을 가장 적절하게 잘 하는 것을 예를 들면, 엔진의 원통과 피스톤, 집의 문과 문틀, 수레의 바퀴와 축 사이의 관계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한다. 라고 설명했다. ● 나는 지금, 작업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큰 화폭은 제쳐두고, 아주 작은 종이 화면을 앞에 놓고 근심 중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형상 하나 하나의 절대적 위치를 추적 중이며, 요소요소의 語法을 탐색 중이다. 그 '틈'과 '막'의 근원을 자연 또는 자연 현상에서 차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쩌면 유기적인 상상력의 依託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미 익숙해진 그 형상으로부터는 해방되고 싶다.
逍遙 ●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의 뜻이다. '散慮逍遙'라는 말이 있다. 세상 일 잊어버리고 자연 속에서 한가하게 즐긴다는 뜻이다. 작업 중 가끔 한껏 설레게 하는 일은 무심결에 마주치게 된 흔적이나 자연현상에서의 예기치 못한 조형요소들이다. 그것이 인위적이든 아니면 우연이었던 내가 발견한 직관적 즐거움은 불확실한 작업 과정의 촉매가 된다. 무심코 마주한 남해의 多島海가 그러했고, 그저 의미 없이 흩뿌려진 붓질과 흩날린 물감의 방울방울이 그러했다. 作爲的이지도 意圖的이지도 않는 그 결과물에서 나는 상상한다.상상력으로 언어가 형상화되고, 감정이 상징화되고, 직관이 구체화되는 그런 작업이 그립다. '허버트 리드'에 의하면 '창조'라는 빌미로 탄생되는 소산물의 이미지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세계로부터 취해 온 것이라고 했다. 자연 아니면 자연현상에 기인된 그 원형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세계 속에서의 특성과 시대정신의 표출이다. 단지 개인의 개성과 자아의 독자성만이 형태를 해방시켜, 자유로운 '逍遙'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沈默 ● 피카소는 유언 중에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 낱 어릿광대일 뿐이다'라고 했다. ● 결국 '예술'임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한 존재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빵'의 필요성을 재빨리 인지한 현실의 이해일 수도 있다. 의사소통의 한 형식으로서의 예술, 또한 소통 거부된 현대의 구조에 이르러 획일화, clone화 아니면 동일성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비인간성에 대한 항의로서 그 명맥을 이어왔으며 잔존한 유일한 인간적 존재가 아닌가 생각 된다. ● 그렇지만 참 고통스럽다. 합리적으로 관리된 사회, 보편성의 폭력, 그 앞에 남은 개별자 – 그러나 쉽게 표현할 수 없는 형식, 그래서 참 힘이 드는 작업의 연속이다. 결국은 침묵할 수밖에 없고 이 침묵의 미메시스를 통해 항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괴테는 예술가들에게는 침묵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 언어 예술가들의 곡예, 주관적 변용 그러나 너무 많은 해석들로 물리적 구조가 아닌 관념적 해석들의 변용으로 작품이 완성되어지는 현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평범한 것의 변용, 그 변용 해석의 대상이 되어 질 때 작품으로 가치가 부여되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 곁에 부치고, 마주하면서 원리가 보태지고, 경험의 차용이 축적됨을 체험하며, 그 원리에 조형성이, 색채계획이 중첩 누적되어 새로운 원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법칙을 형성해 나아가야 했다. 결국은 他者가 아닌 나 자신의 外化로 거듭되어 지는 것이다. ● 작업을 위한 진정한 노력은 현실의 충직한 증언이 아니라 구체화되지 않은 현실을 표현하는 힘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에 있다. 결국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관념적 해석을 통한 변용으로 작품은 완성되어져 나아가게 된 것이다. ● 나 자신만을 위한 공헌일지라도 결국은 사회를 위한 것이기에 나는, 변명컨대 포기의 동정심을 거부한다. ■ 김인하
Vol.20180525f | 김인하展 / KIMINHA / 金鱗河 / painting